사진=류승희 기자
"이보다 심한 갑의 횡포가 있을까요?" 박기용씨는 원래 고급 커텐, 침구류 등을 생산·납품하는 중소기업 '미페'의 사장이었다. 서울시내와 지방의 백화점 등 미페 제품이 들어가 있는 곳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모자랐다. 80여명의 직원을 두고 30억원의 연매출을 올리던 회사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롯데마트와 손을 잡으면서부터다.
박씨는 1998년부터 롯데마트와 거래를 시작했다. 롯데마트 29곳에 납품을 하며 모든 것을 롯데마트에 맞춰왔던 박씨는 2011년 일방적인 납품 중단 통보를 받았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매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다 매장 철수 통보를 받은 박씨는 경영난에 봉착했고, 결국 폐업과 함께 주변 채권자들에게 모든 재산을 압류 당했다.
경기도 성남의 한 공장에서 박씨를 만났다. 그는 기존에 있던 자신의 사무실과 집, 자동차와 물류배송을 위한 차량 일체를 몰수당한 상태였다. 박씨는 처자식은 처갓집에 맡기고 자신은 지인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 철저한 갑을논리로 협력사에 횡포
박씨는 사무실에 앉자마자 A4상자 하나를 꺼내보였다. 상자에 가득한 서류들은 모두 롯데마트와 거래한 계약서, 세금계산서, 영수증 등이다. 박씨가 보여준 자료들은 언뜻 봐도 상식선에서 납득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롯데마트와 거래하며 혹시 몰라 하나둘 모아 둔 거예요. 경리직원들에게 거래내역과 이메일 등 각종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남겨두라고 지시했었죠."
롯데쇼핑은 높은 수수료율로 악명이 높다. 박씨가 보여준 자료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롯데마트의 수수료율은 매년 1%씩 높아졌다. 2002년 22%로 시작한 수수료율이 박씨가 롯데로부터 매장 철수 통보를 받을 즈음엔 35.5%로 껑충 뛰었다. 그나마도 나중에 협력업체들이 항의해 매년 인상하는 수수료율을 0.5%로 낮춘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협력업체로부터 30%이상의 높은 수수료율을 떼어가면서 각종 명목으로 추가비용을 청구했다. 신상품 촉진비와 장소대여료, 광고비 등이 그것. 신상품 촉진비는 상품을 출시하지 않았음에도 롯데마트가 임의로 청구한 것이다. 2002년과 2006년 신상품 촉진비 명목으로 떼어간 돈은 각각 5591만원과 1223만4318원이다. 그렇게 10년간 신상품 촉진비만 3억원 이상이 됐다. 신상품 촉진비는 받아갔지만 정작 롯데 측에서 박씨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롯데마트 본사 MD의 요청으로 마트 귀퉁이에 커텐과 침구류 등 인테리어를 꾸며놓으면 롯데 측은 또다시 광고비 명목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미페 제품을 전시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광고효과를 본다 한들 광고비 책정문제에서 '을'인 미페는 아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저 롯데가 발행한 세금계산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2006년 10월에는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남은 중국산 대나무발을 떠넘겼다. 롯데마트 측은 박씨에게 "트럭을 가져와서 재고를 처리하라"고 지시했고 박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상품을 가져와야 했다. 롯데마트로부터 넘겨받은 재고는 이미 녹슬거나 깨져서 팔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롯데는 이 제품을 소비자가로 매겨 박씨에게 548만원을 청구했다.
심지어는 계약 시 사용하는 도장 역시 롯데마트 수중에 넘어가 있었다. 빈 계약서에 도장만 찍혀있고 숫자만 적어 넣으면 계약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눈뜨고 코 베이는 격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박씨는 이렇게 수모를 겪으면서도 왜 롯데마트에 남기를 고집했을까. 박씨는 롯데마트에 입점할 당시 들어갔던 초기투자비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비용 등 초기투자비용이 상당해요. 그걸 포기하고 그만두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게 바로 갑의 횡포죠."
할인행사를 진행할 때도 횡포는 계속됐다. 할인율과 행사기간을 일방적으로 정해 통지한 것이다.
"30~50%로 할인율을 정해버리면 협력업체에게 남는 돈은 없습니다. 힘들게 제품을 팔아봤자 빚만 남게 되는 거죠."
이벤트로 진행하는 상품권 증정행사도 협력사가 떠안아야 했다. 10만원당 1만원 상품권을 증정하라는 롯데 측의 요구가 있었다. 롯데 측은 반반씩 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상품권을 부담한 건 미페였다.
명절 때 몇백만원어치의 선물세트를 사라고 강요받는 건 예삿일이었다. 수백개의 선물세트를 쌓아두고 '누굴 줘야 하나' 고민해야 했다. 뿐만 아니다. 제품을 포장하고 포장가방을 만드는 것도 롯데마트 MD가 제시한 디자인과 색깔대로 미페가 담당했고, 반년 후에는 또다시 디자인이 바뀌어 새로 제작해야 했다 .
"말로만 상생을 부르짖으면 뭐합니까. 롯데는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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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8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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