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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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프랑스 유명 로드바이크(사이클)인 '라피에르 센시움 200'으로 자전거를 바꿨다. 그 전에는 로드바이크와 자전거 종류가 다른 픽스드기어바이크(fixed gear bike, 고정기어자전거)를 타고 한강 '마실'을 즐겼었다. 요즈음 이 로드바이크를 타고 다니면서 자전거 종류의 변화만큼 라이딩 스타일의 변화도 찾아왔다. 픽시(픽스드기어바이크 줄임말) 탈 때는 전혀 몰랐던 나의 단점들이 전부 수면 위로 하나씩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픽시는 기어가 단 하나. 로드바이크처럼 기어 변속이라는 선택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평지나 오르막 또는 내리막을 만났을 때, 오직 하나의 기어로 페달을 꾹꾹 밟아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반면에 로드바이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르막을 올라가다 힘이 부치면 내가 원하는 기어비율을 선택하여 보다 편하게, 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다. 픽시는 다운힐에서 쳇바퀴 굴리듯 쉴 틈 없이 발을 굴려야한다. 로드바이크는 자전거 뒷바퀴 허브에 래칫(ratchet,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톱니 장치) 때문에 페달링을 하지 않아도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가며 발을 쉬거나 기어를 조금 올려서 더 빠르게 달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나에게는 '독 아닌 독'이 되어버렸다.
언덕을 만나면 항상 나만 뒤쳐졌다. 로드를 타기 시작하던 연초에는 기어가 하나뿐인 픽시를 오랜 기간 동안 탔기 때문에 기어 변속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남들보다 잘 타지는 못하더라도 뒤쳐져서 함께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는 자전거 마니아들을 따라 서울 유명 자전거 업힐 코스를 경험하고 쫒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변속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픽시 타고 46(앞 체인링)에 17t(코그)로 올라갈 수 있었던 오르막들을 로드바이크의 같은 기어비로는 올라가지 못 한다는 것. 로드바이크에는 편하고 쉬운 '변속'이라는 지름길이 있는데 굳이 무거운 기어비로 끙끙거리면서 언덕을 올라가야 만하는 이유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언덕만 나왔다하면 기어를 무조건 '풀이너'로 변속하거나 평지와 다운힐에서는 무조건 '풀아우터'를 걸고 있었다. 나와 함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내 사전에 자전거 기어 변속이란, 풀이너와 풀아우터 밖에 없다며 나를 놀렸다. 앞으로 로드바이크를 정말 잘 타고 싶다면 변속하는 방법이나 라이딩 스킬을 배우기 전에 마음의 자세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 같았다. 지름길만 찾고 쉬운 길로 돌아가려하는 내 삶의 라이프가 본의 아니게 로드를 통해서 낱낱이 들통 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로드바이크는 타는 사람의 내면까지도 반영한다. 로드바이크 주행 중인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다른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키보드를 두들일 때나, 술에 취했을 때 나타나는 모습과도 매우 흡사한데, 평소에는 차분하고 조심성 있던 사람이 로드만 탔다하면 과감한 코너링을 보여준다거나, 리더십 있고 '돌직구' 같던 사람이 다운힐에서는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나는 로드를 타면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까. 적어도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언덕길을 만났을 때만큼은 풀이너로 주행 하거나 힘들다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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