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류승희 기자
창간 6주년 특별대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기업들 투자여건 만들면 고용창출… 증세없는 복지는 안될 말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진 지난 2008년. 부동산시장이 추락하면서 미국의 금융위기로 번졌고 이는 곧 일본과 유럽까지 확산됐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불패'(不敗) 신화의 대명사로 불린 부동산시장이 고꾸라졌고 5%대에 이르던 기준금리도 절반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저금리 터널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국내외 전문가들의 전망은 더욱 암울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재연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듬해인 2009년 2월. 어려운 위기 속에서 한국경제 사령탑을 맡은 인물은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그는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그해에 0.3%의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에는 6%대 성장을 이뤘다. 외신에서는 그에게 '교과서적인 회복'이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년4개월 동안 경제수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이제는 자연인의 신분으로 돌아간 윤 전 장관. 그는 지금의 한국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또 위기극복을 위해 어떤 알약이 필요한 것일까.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윤(尹)경제연구소에서 그를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 한국경제가 불안하다. 국민들은 우리도 일본처럼 장기침체를 겪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 하고 있다.
▶ 경제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의존도가 이미 100%를 넘었다. 국제환경을 무시한 채 우리만 좋아질 수 없다는 의미다. 대외환경이 개선되면 우리경제도 자동적으로 개선된다. 다만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는, 지속가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이 정치다. 요즘 '미국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위험)는 워싱턴DC'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큰 흐름에서 보면 경제는 효율성을, 정치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다. 따라서 정치·경제가 합치면 이해관계에 따라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국회가 경제민주화 도입을 위해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인들에게 굉장히 부담이 될 수 있다. 정치와 경제의 복합적인 것들을 하나로 만들어 같이 갈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체제에 대해 평가한다면.
▶ 현오석 부총리가 취임한 지 아직 1년도 채 안됐다. 지금 평가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다. 다만 (현 부총리가) 경제정책에 대해 좀 더 과감하게 대시했으면 한다. 국민들은 시장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경제정책 방향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이슈를 보면 성장도 해야 하고 일자리도 늘려야 한다. 여기에 복지공약과 경제민주화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다보니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할지 헷갈릴 수 있다. 현 부총리가 지금의 상황을 빨리 정리할 필요가 있다.
- 만약 윤 전 장관이라면 어디에 중점을 두겠는가.
▶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을 둘 것이다. 꼬인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의 주역은 기업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명제다. 공공기관에서 일자리 창출을 늘린다면 지속가능성은 있을지 몰라도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투자를 해야 성장할 수 있다. 성장을 하면 이를 통해 조세수입이 늘어나 자원확보가 가능하다. 세금이 늘어나면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또 일자리가 늘어나면 사회도 안정화 될 것이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 국민들이 복지와 부동산정책에 대해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 우리나라는 고속성장을 하면서 속도(스피드)경영을 해왔다. 그래서 참거나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속도보다)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공석으로 있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수장 인사부터 마무리해야 한다. 정부는 혼자 일할 수 없다. 공기업 수장들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그런 만큼 수장이 없는 공기업의 경우 원활한 업무가 이뤄지기 힘들다. 그동안 장외투쟁을 벌이며 사이가 벌어진 야권과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 이런 것들부터 우선 하나로 매칭(일치)이 돼야 국민들도 불안감을 떨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부동산정책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방향의 문제인가.
▶ 부동산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아킬레스건(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국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현재 건설과 요식업, 숙박서비스 등 부동산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사람이 200만명에 달한다. 국토는 좁은데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최근에는 전셋값 급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바꿀 수 있는 부동산 관련 대책안을 두번이나 내놨는데도 국회에서는 하나도 입법화하지 않았다. 분양가상한제만 봐도 그렇다. 국회가 왜 부동산상한제까지 관여하는지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부동산산업도 수요과 공급에 따라 움직이도록 시장에 맡겨야 한다. 국회는 감시·감독을 잘 하면 된다. 전문적인 분야는 행정부에 맡겨야 한다.
전세가격이 오르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택이 소유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주거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이 집 매매에 관심이 적다보니 전세에 몰리는 것이다. 행정부가 이러한 패러다임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지금 상황에서 부동산 문제의 책임을 행정부에만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 정부의 금융규제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은행이나 증권, 카드사 등 금융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야 할 것 같은데.
▶ 금융규제도 국회와 연관이 있다. 금융기관이란 관치금융 시절에 나온 단어다. 금융회사를 공공기관으로 보고 정부가 관리·감독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지 않았나. 금융기관이 아니라 금융회사가 맞다. (금융회사의) 수수료 문제도 그렇다. 기업이 상품을 팔아 수수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많이 받는지 묻는 것은 국회나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수수료는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은행이 돈을 많이 번다고 지적하는데 이것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융은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금융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 금융을 독자적인 사업으로 대우해주고 키우겠다는 생각이 필요한 것 같다. 또 필요 없는 규제는 다 풀어줘야 한다.
- 한국은행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수차례 엇갈리고 있다. 중앙은행의 금융정책을 평가한다면.
▶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이 요즘 고민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표적인 것이 금리다. 금리를 올려야 할 타이밍인데 금리인하 정책을 쓰거나, 과감히 낮춰야할 타이밍에 머뭇거리면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 중앙은행의 고유역할은 근대적으로 볼 때 물가안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용과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주는 역할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물가안정의 파수꾼이라는 전통적 임무에서 벗어나 고용과 성장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중앙은행도 현재 잘 적응해가고 있지만 미국의 흐름을 좀 더 세심히 지켜봐야 한다. 또 정부정책과 보조를 맞춰 움직여야 한다.
- 현 정부가 화두로 내세운 '창조경제'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평가가 많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필요한 것이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이다. 창조경제가 이러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좋은 품질의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필요하다. 따라서 누가 더 많은 창의성을 발휘하느냐에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관련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만 정부가 굳이 창조경제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면 된다.
사진=류승희 기자
-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 그렇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나도) 요즘 강의를 다니면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자주 거론한다. 통계학적으로 고령화는 총 3단계로 분류된다. 전체 국민 중 65세 이상인 국민이 7%를 넘어서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라고 말한다. 전세계에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1970년대에 6%를 넘었고 36년(2006년)만에 20%를 넘었다.
일본은 현재 65세 이상인 국민이 24%가량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12% 수준이다. 5000만명을 기준으로 보면 600만명이 노인인 셈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우리나라가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기간은 불과 26년으로 예상된다. 일본보다 10년 앞당겨 초고령화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제대로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은 초고령사회 대비에 실패한 국가로 꼽힌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후 사회의 역동성이 없고 개방과 다문화를 창출하지 못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개방문화가 폐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다문화와 교육, 인구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을 불러 명확한 해답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민정책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 복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세금을 늘리지 않고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 증세 없이 복지하겠다는 사람은 책임 있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국민을 현혹하면 안된다. 정치 지도자는 정직해야 한다. 복지재원 마련은 국민세금이나 경제성장을 통해 마련돼야 한다.
복지수준을 세제수입에 맞춰야지, 세제수입을 복지수요에 맞추면 경제가 파탄날 수 있다. 정부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증세와 차입, 빚 등 3가지로 꼽힌다. 정부가 증세의 개념을 명확히 전달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한 예로 지하경제를 양성화 해 세금을 받고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서 세금을 받는 것. 이는 명확히 증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말한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면 이는 명확한 세금이다. 지금처럼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증세를 하기란 쉽지 않다. 복지공약을 수정하거나 속도를 줄여야 한다고 본다. 복지를 늘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 동양·STX·웅진그룹 등 중견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경제에 불안요소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 중견기업이 부실화되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는 곧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기업이 부실해지는 것은 사전에 내부적 구조조정을 소홀히 했거나 경기불황을 이기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진 두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경기침체가 5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대외적인 환경이 기업부실로 이어진 것이다. 부실기업이 발생하면 우선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 역할은 아마도 기업들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안타까운 것은 중견기업들의 부실이 소비를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경기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시장의 불안감을 조성하면 투자가 위축된다. 이런 악순환이 지속되면 건실했던 기업들도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알 수 없다. 정부가 나서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투자심리를 부추기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 프로필
▲1946년생 ▲경남 마산 ▲서울고 ▲서울대 법대 ▲미국 위스콘신대학원 ▲재무부 국제금융과장, 은행과장, 금융정책과장, 금융실명제실시준비단장, 세제실 심의관, 증권국장, 금융국장 ▲재정경제원 금융총괄심의관, 세제실장, 금융정책실장 ▲세무대학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김&장법률사무소 고문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기획재정부 장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0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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