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국내 제과산업에 있어 굵직한 일들을 일궈낸 주인공이다. 제과산업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산증인이라 불리는 것도 그의 수완에서 비롯됐다. 윤 회장은 크라운제과 창업주인 고 윤태현 회장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이다.

윤 회장의 솜씨는 1995년 모기업인 크라운제과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됐다. 1997년 IMF 위기로 인한 부도사태를 조기 극복하더니 당시 제과업계 2위였던 해태제과까지 인수했다. 제과전문그룹으로 성장시킨 그의 경영능력을 재계가 인정하는 이유다.


그의 경영능력은 최근 ‘올해의 CEO 대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증명됐다. 한국마케팅학회는 지난 1월14일 창조적인 마케팅 경영을 통해 기업의 역량과 성과를 높이고 우리나라 마케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세운 경영인으로 윤 회장을 선정했다. 저출산과 장기적인 경제불황 등으로 더딘 호흡을 이어오는 제과시장에서 크라운해태제과가 매년 우수한 경영이익을 실현하고 있는 부분도 윤 회장이 고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다.

◆가로막힐 때마다 ‘묘수’ 꺼내

윤 회장의 행보가 항상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크라운해태제과가 지금의 대표 제과전문기업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몇번의 장애물이 그를 막아섰다.

1998년 1월에는 외환위기 폭풍을 정통으로 맞았다. 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화의신청까지 하게 된 것. 협력업체와 채권단의 도움으로 숨통이 틔긴 했지만 영업조직에 공급할 신제품이 없어 앞날이 막막했다. 이때 윤 회장이 꺼낸 카드가 ‘크로스 마케팅’(Cross Marketing)이다. 크로스 마케팅은 크라운제과가 가진 업종 특성을 반영한 제휴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그가 창안했다.


이 카드가 묘수이긴 했으나 크로스 마케팅을 국내에서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국내 중견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크로스 마케팅은 지지부진했다. 당시 윤 회장의 결단은 단호했다. 곧바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맛의 소비자가 있는 일본과 대만, 중국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과정은 쓰디썼지만 결실은 달디달았다. 2000년 6월 중국업체인 왕왕에서 수입한 쌀과자가 인기를 끌며 그해 800억원이라는 매출 실적을 거뒀다. 2003년에 이르러 크라운제과는 5년 만에 적자기업에서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크라운제과는 현재까지 꾸준히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2004년까지는 국내 시장점유율 4위에 불과했지만 다양한 히트상품과 독특한 마케팅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크라운제과의 성장 동력은 윤 회장이 우리나라 시장에 맞게 개발한 ‘루트(Route) 세일’이다. 1969년 처음 도입된 루트 세일은 제조업체의 유통사원이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의 구멍가게를 직접 찾아다니며 물건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도매상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소매상은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루트 세일은 다국적 제과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뚫지 못하도록 하는 방패막이 역할도 해냈다. 현재는 국내 제과 4사 모두 이 루트 세일을 영업의 기본 체계로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크라운제과의 독창적인 제품개발 역시 윤 회장의 솜씨다. 국민간식 '뻥튀기'에서 착안해 1972년 개발한 ‘죠리퐁’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스낵으로 지금까지 크라운제과 최고의 히트상품 자리에 올라있다. 지난해에는 중국 현지공장에서 생산된 죠리퐁이 중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큰 폭의 매출성장을 기록했다.

◆예술로 소통하는 ‘아트경영’

윤 회장의 경영능력에서는 ‘아트경영’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아트경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내면서다.

대금과 소금 연주는 정신이 피폐해져 있던 그를 국악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이후 고객우선주의를 강조하던 윤 회장은 국악공연을 준비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2004년부터 시작한 ‘창신제’ 공연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창신제는 현재 국내 문화계에서 유명한 행사로 자리 잡았다. 전문 소리꾼이 아닌 임직원 100명이 무대에 올라 북을 두드리며 ‘사철가’를 떼창하는 광경은 서양 종교음악의 대합창처럼 ‘우리 소리도 장엄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이겨낸 후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할 때도 윤 회장의 아트경영은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매각에 반대했던 해태제과 노동조합의 반발은 크라운제과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감정의 골마저 깊어진 두 회사 직원들을 융합하기 위해 그가 끌어낸 것은 미술공부였다.

그는 버려지는 과자상자와 포장지로 구조물을 만드는 ‘박스아트’를 두 회사 영업사원들에게 가르치면서 화학적 융합을 이뤄냈다. 크라운해태제과는 전국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 박스아트 작품을 설치하는 이벤트를 연간 5000회 이상 열고 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형마트 매출은 매년 15% 이상 성장했다.

윤 회장의 아트경영은 국악에서 시작해 조각과 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자도 조각품이라는 생각으로 과자에 아트를 접목시켰다. 실제로 매출이 오른 대표적인 사례가 ‘오예스’와 ‘쿠크다스’ 제품이다. 오예스 포장에 심명보 작가의 ‘백만송이 장미’를 그려 넣어 단순히 제품 진열만으로도 예술작품을 만들어냈다. 이어 밋밋한 과자였던 비스킷 ‘쿠크다스’에 초콜릿으로 물결 모양의 동세를 준 뒤 매출이 2배 이상 뛰어 올랐다.

그는 이러한 아트경영에 대해 ‘메세나’가 아니라 ‘마케팅’이라고 정의한다. 저출산 현상과 장기불황에다 웰빙열풍까지 불면서 성숙기에 이른 국내 제과시장에서 성장을 위한 돌파구로 예술을 선택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과자의 경우 고객들은 계획적인 구매가 아닌 매장에서 보이는 제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제품의 우수한 품질에 예술의 감성을 더한 제품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 바로 아트경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크라운해태제과의 아트경영은 실제로 수익성 향상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2013년 상반기 크라운해태제과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증가해 감소세를 보인 경쟁사들과 대조적이다.

윤 회장의 경영철학은 ‘고객행복’이다. 그는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감동·즐거움·재미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자주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엔돌핀을 주는 과자를 매개체로 삼아 직원과 고객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게 제과업계의 나아갈 길이라는 것이다.

☞ 프로필

▲1945년 4월29일 출생 ▲1968년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1969년 크라운제과 입사 ▲1971년 크라운제과 이사 ▲1973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1995년 크라운제과, 크라운스낵 대표이사 ▲2003년 석탑산업훈장 수훈 ▲2004년 한국경영사학회 CEO 대상 수상 ▲2005년 해태제과식품 대표이사 회장 ▲2009년, 2010년 서울오픈아트페어 조직위원장 ▲2012년, 2013년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조직위원장 ▲2013년 서울아리랑페스티벌 조직위원장 ▲2014년 한국마케팅학회 주관 올해의 CEO 대상 수상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설합본호(제315·3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