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 중동지역은 대규모 투자로 다수의 에탄크래커(에탄 분해설비)를 증설했다. 이후 중동지역 에탄크래커에서 생산된 에틸렌 가격은 나프타크래커에서 생산된 에틸렌보다 30~40% 내려갔다.
미국을 비롯한 북미지역은 최근 본격적인 셰일가스 생산에 들어갔다. 2017년 이후에는 북미지역 에탄크래커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한 북미지역의 에틸렌 가격경쟁력 확보도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위협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자국의 풍부한 석탄자원을 활용해 에너지 자급을 위한 석탄크래커 증설에 나서고 있다. 유가가 배럴당 90달러 이상일 경우 석탄크래커는 나프타크래커 대비 10% 이상 원가경쟁력을 지닌다. 이 역시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제품 수출경쟁력 하락
국내 석유화학제품의 수출비중은 60%가 넘는다. 이 중 50%가량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을 만큼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중국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이 같은 상황에 2008년부터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동 에탄크래커 신증설 물량의 출하가 시작되고 있다. 이들 물량이 중국으로 유입되면서 중국시장 내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실제 중국으로 수입되는 중동산 폴리에틸렌 수입단가는 운송비와 기타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국내산보다 10~20%가량 낮다. 이로 인해 지난해 국내 업체들의 중국시장 내 폴리에틸렌 점유율은 2008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여기에 중동의 신규 증설규모에 버금가는 북미 에탄크래커가 2017년 본격 가동되고 중국 석탄화학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국내 석유화학산업에 미치는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세계 석유화학산업 내 환경변화가 국내 석유화학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원가경쟁력이 높은 에탄크래커 확대로 기존 나프타크래커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지난 2~3년간 유럽과 일본의 30~40년 이상 된 노후 나프타크래커의 설비 폐쇄가 잇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나프타 기반의 석유화학 제품 공급능력은 위축되고 있다.
중국시장 내 중동의 추가적인 점유율 확대 역시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생산을 제한하면서 수반 가스의 공급이 부족해 중동 에탄크래커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연합(EU) 경기가 개선되고 EU 지역으로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중동산 제품의 아시아 유입도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중국 수출은 다시 회복세로 전환되고 있다.
중국은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자비용과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내 예정된 석탄화학설비 증설이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저가 원료 기반의 화학설비 신증설 확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미 에탄크래커 증설 물량이 본격 출하되는 2017년까지는 오히려 공급 공백기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유럽과 중국 및 신흥국 중심으로 석유화학 수요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 석유화학 수요증가분이 공급증가분을 상회해 글로벌 수급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위한 대응책 마련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최근 2년간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진 지속과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경쟁력 약화의 이중고를 겪으면서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2011년까지 10% 이상을 기록하던 주요 업체들의 합산영업이익률은 2012년 이후 5% 수준으로 떨어졌다.
향후 2017년까지 석유화학제품의 공급 공백이 예상됨에 따라 그동안 약세를 보였던 기초유분,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세가 점쳐지면서 석유화학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도 당분간 약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주요제품의 스프레드는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부진이 지속됐던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도 2014년부터 회복세로 전환될 전망이다.
다만 최대 수요국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대로 둔화됐고 석유화학 제품의 자급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2000년대 중후반과 같은 폭발적인 수요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은 더 이상 과거 호황기와 같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단기적 업황은 안정 국면에 머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위기가 잠시 연기된 것에 불과하다. 2017년 이후 에탄가스, 석탄과 같은 저가 원료 기반의 석유화학크래커의 대규모 증설에 따른 위협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저가 중동제품의 중국 유입으로 인한 국내 석유화학제품의 수출경쟁력 하락이 문제였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저가의 북미, 중국의 화학제품과도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과거 석유화학 강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기 안정기를 기회로 삼아 장기적인 생존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에탄크래커와 석탄크래커의 생산수율이 낮은 C4, C6 제품의 경우 장기적으로 공급부족이 예상된다. 따라서 이들 제품의 생산능력 확대가 요구된다. 또한 저가 석유화학 제품 유입 확대에 대비해 가격 경쟁 강도가 낮은 EVA, 엘라스토머, 슈퍼플라스틱 등의 비중 확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에탄가스 등의 저가 원료를 확보할 수 있는 해외로 직접 진출해 생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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