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파티는 끝났다. 방만 경영을 금지하기 위해 과다한 복리후생 예산낭비 사례를 면밀히 조사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지난해 11월 현오석 부총리의 공공기관 조찬간담회 발언 내용 중)

"차관급 이상에게만 제공하도록 한 정부의 차량운영지침 권고에 맞춰 공단 자체규정을 두고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기관장 외 임원에게도 전용차량이 제공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한국철도시설공단 모 처장의 답변)


공기업의 대규모 부채와 방만경영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부채 해결 등을 위한 자구책을 내놓고 실천하는 공기업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방만경영의 꼬리표를 단 채 별다른 개선책을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도 후자에 속한다. 17조원대의 부채를 떠안은 만년 적자 공기업이자 공룡화된 부실기관으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철도시설공단은 타 공기업이나 공단처럼 자산 매각이나 다른 사업을 통해 적자를 메울 수 있는 마땅한 방법도 찾지 않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월 취임한 강영일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은 고속철도 역사 등 시설규모를 최적화해 사업비를 절감하고, 업무추진비 등 관리비도 적극 절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 준비뿐이고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임종철
◆ 자중지란에 빠져 '답답한 공기업'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정부의 경영 정상화 방침에 답답하기만 하다. 대부분이 정부가 주문한 사업으로,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팔 수 있는 자산이 많지 않아서다. 현재 부채 증가 속도를 볼 때 자구노력에 한계가 있어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철도시설공단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수익원인 선로사용료 인상 문제는 형제 공기업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불가 방침을 밝히며 대립하고 있어 이를 통한 수익구조 개선도 쉽지 않다.

실제로 철도시설공단은 주 수익원인 선로사용료 수입이 낮아 재정악화가 심화되고 있다.이로 인해 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359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또한 역사나 선로 공사 등으로 투입된 자금에 대한 이자로 지출되는 비용인 4243억원까지 떠안아야 했다. 결국 빚내서 빚을 갚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부채로 쌓이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철도시설공단의 부채는 2004년 6조3097억원에서 매년 평균 1조2000억원씩 늘어 지난해 말 17조3406억원으로 154% 가량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선임한 부이사장을 놓고 공단과 노조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경영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철도시설공단이 자구노력 등을 통해 강도 높은 부채 감축 계획을 실행해야 할 시점에 기관장을 비롯한 임원진들과 노조의 갈등은 공단의 응집력에 마이너스 요인임은 분명하다.

◆ 임직원들, 방만경영 심각성 모르나

국토부 산하기관 가운데 '부채과다 중점관리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LH,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등 5개 기관이다. 이들 기관의 부채금액이 국토부 산하 전체 기관 부채의 98%를 차지할 정도다. 현재 이들 5개 산하기관의 부채는 총 208조9000억원에 달한다. LH가 138조1000억원, 도로공사 25조3000억원, 수자원공사 13조8000억원, 철도공사 14조3000억원, 철도공단 17조3000억원 등이다.

하지만 철도시설공단을 제외한 타 기관들은 보유토지 매각, 사업구조 변경, 자산매각 등을 통해 어느 정도 부채를 줄여나갈 여지가 있다. 철도시설공단만 유일하게 자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업무추진비 등 관리비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중 가장 현실적인 부채 해결방안으로는 차량 유지부분의 절감이 꼽힌다. 현재 철도시설공단은 총 102대의 차량을 렌트해 사용하고 있다. 연간 차량 렌트비용으로만 약 5억6000만원의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여기에 차량 운영비까지 더해지면 그 금액은 더 늘어난다.

시설 규모를 최적화해 사업비를 절감하겠다고 밝힌 강영일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작은 사진) 그러나 실행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사진제공=뉴스1 박정호 기자
특히 이사장, 부이사장, 감사 등의 임원은 전용차량으로 지난해까지 3600cc의 '체어맨' 차량과 함께 전속 운전기사를 두고 운영해 왔다. 이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얼마 전 논란이 된 차관급 차량 운영지침에 따라 현재 3300cc 급의 차량을 '제네시스'로 변경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공무원 차량운영 지침에 따르면 전용차량은 차관급 임원까지만 지급하게 돼 있다. 엄밀히 따지면 공단 이사장에게만 지급돼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채 해결 등을 위한 자구책을 내놓고 실천하는 공기업들은 대부분 정부지침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실제로 교통안전공단의 경우 현재 이사장에게만 전용차량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절감을 통해 공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측은 “그런 공기관이 있냐.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방만경영 척결에 대한 임직원들의 의지부족은 앞으로 철도시설공단의 미래를 보여준다.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공기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정부가 공기관 방만경영에 대한 칼을 빼 들었으면 최소한 하는 척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겠냐”며 “이러한 반응은 싹수가 안 보인다”고 말했다.

'싹수'가 안 보이는 철도공단. 방만경영을 향후 어떻게 해소해 갈지 관심이 가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2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