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살렌토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눈이 부시게 푸른 해변으로 유명한 이태리의 빼어난 휴양지, 살렌토와 이름이 같다.
둘 다 아름답고 멋진 마을이지만, 다른 점은 콜롬비아의 살렌토가 해발 2,400m에 위치한 고산마을이라면 이태리의 살렌토는 해발 0m의 해안마을이라는 것이다.
살렌토로 가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수도, 보고타의 북쪽터미널에서 아르메니아행 버스를 타고 10시간 가까이 간 후에 다시 살렌토 행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40여 분을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도로의 상태다. 도심을 벗어나면서 마주치는 고산의 구불구불한 산길은 버스에서 한 순간도 몸을 고정시킬 수 없을 만큼 흔들림이 잔인하다. 더욱이 밤에 출발하는 차라면 한 숨도 못 자고 밤을 꼬박 새울 각오를 해야 한다.
해발 2,400m에 위치한 마을답게 기후가 시시각각 변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다가도 어느 새 구름이 하늘을 덮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이 맑게 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항상 공기가 촉촉하고 맑아서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도시의 매연으로 찌든 폐가 깨끗하게 청소되는 느낌이다.
마을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사람들의 탈 것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아이부터 머리가 하얀 백발의 노인까지 말을 타고 다닌다.
아이들조차 말을 부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태권도, 피아노, 영어학원 등을 다니느라 어른보다 바쁠 아이들이건만, 이들은 한가로이 동물과 자연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광장 북서쪽 한편에는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커피하우스가 있다. 인테리어는 심플한 탁자와 의자 외에는 딱히 없었으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수동식 1세대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얼핏 보기에도 백 년은 됨직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은 이태리 토리노 지방에서 만든 ‘라 파보니’머신으로 백 년 가까이 된 것이라고 한다. 커피 책에서만 보았던 것을 직접 마주하게 되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머신이 아직까지 멀쩡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설적인 이 머신으로 추출한 까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동 그라인더가 없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주인장은 커피통에서 미리 갈아놓은 커피가루를 한 스푼 떠서 포터필터에 담았다. 탬핑도 하지 않고 바로 머신에 장착하고는 손으로 레버를 내린다.
이윽고 추출되는 진한 갈색의 에스프레소는 보기만 해도 그 향과 맛이 전해지는 듯하다. 머신이 구형이라 비록 크레마는 두텁게 추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깨를 타고 허리까지 매끈하게 흐르는 군더더기 없는 이태리 남성 정장 같은 깔끔한 쓴맛과 각선미 좋은 여성의 검은 색 긴 치마 아래로 보이는 가늘고 하얀 발목 같은 신맛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다음에도 위(胃)에서부터 코까지 치고 올라오는 기품 있는 노년의 잔향까지. 바로 이 맛을 찾았었다.
바로 바닥을 보인 커피가 아쉬워 카푸치노 한 잔을 더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위에 데운 우유와 거품을 얻은 카푸치노는 특유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무엇이 맛의 차이를 내는 것일까 자못 궁금했다.
커피 산지에서 생산되는 원두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최상이겠지만, 우유는 목장에서 기르는 젖소의 원유를 공급받아 사용하는지 아니면 시제품을 사용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내 스페인어가 일천하고 카페 주인장의 영어가 부족하여 그저 관찰만 할 뿐 그 답은 얻지 못했다.
닷새 동안 살렌토에 머물면서 하루에 세 번 이상 쌍둥이 형제가 운영하는 까페에 들렀다. 형과 동생이 어찌나 닮았는지 정말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둘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흘쯤 지나니 그 둘이 나를 알아보고 내가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침에는 카푸치노, 점심에는 에스프레소, 저녁에는 카푸치노를 내왔다. 이래서 단골이 좋은가 보다.
살렌토에서 마신 커피 맛은 지금까지 눈, 코, 혀를 통해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요즘도 한가로이 커피를 마실 때면 때때로 살렌토의 쌍둥이 커피하우스를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