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으로부터 안전할까. 정부는 신규발전소가 추가된 데다 지난해보다 덜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따라 정전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에도 정부는 '문제 없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그리고 그해 9월15일 정부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전력대란으로 전국이 어둠에 휩싸였고 국민과 기업들은 재산 및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올여름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전력난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고 보장하기엔 이르다. 이에 <머니위크>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전력대란 공포에 대해 짚어봤다. 원전의 안전성과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신재생에너지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전력낭비의 현장을 고발하고 우리나라 전력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양수발전소를 찾아봤다. 아울러 전기료를 아끼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엄마, 오늘은 너무 더운데 에어컨 좀 켜면 안돼요?"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됐다. 유치원을 다녀온 7살 딸아이가 이마 위의 땀을 훔치며 엄마 나몰라씨(37)에게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단호하게 "안돼"라고 말한 뒤 자리를 피하는 나씨. 이는 비단 나씨네 가족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에어컨 켜는 것을 망설인다. 비싼 전기요금도 무섭지만 또다시 전력대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돼서다. 고속성장 속에서도 전기의 질과 양만큼은 안정적인 나라로 꼽혀왔던 대한민국이 이제 전기가 끊기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초라한 나라로 변해버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구조적인 문제가 몫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전력공사 /사진제공=뉴스1
한국전력거래소 /사진제공=머니투데이

◆1898년 설립된 '한성전기회사'가 기원
전력산업 구조의 문제점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역사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기원은 1898년 고종황제 때 설립한 '한성전기회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자본의 한국에 대한 투자확대와 전력수요의 증가에 힘입어 남성전기(1927년)와 조선전업(1943년) 등 전력회사들이 차례로 설립됐다.

하지만 광복과 더불어 가동률 저하, 과다한 전력손실, 만성적자 운영 등 분리운영에 따른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전기회사의 통합론이 대두됐다. 결국 1961년 3개의 전력회사는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 신설됐다. 한국전력주식회사는 1982년 정부전액출자의 공사로 탈바꿈하면서 현재의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전을 중심으로 발전과 송전, 배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전력산업의 구조는 또다시 개편됐다.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촉진법이 통과되면서 2001년 발전부문이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서부발전, 동서발전, 중부발전, 남부발전 등 6개 자회사로 분리된 것.

이후 정부는 발전부문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면서 사실상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다. 경쟁을 통해 가격인하 등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한전의 6개 자회사를 비롯한 민간발전회사들이 전기를 생산하고,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를 구입한 한전이 국민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구조다. 국내 민간발전회사는 포스코 등 기업이 소유한 발전소에 개인소유 발전소까지 합치면 무려 400여개에 달한다.

이 같은 전력구조 개편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기는 상품이 아닌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필수 공공재"라며 "전력산업의 민영화는 이익보다 위험요소가 크다"고 지적했다.

 


 
◆전력대란의 주범은 정부가 만든 '전력거래소'
"9·15 전력대란은 전력거래소의 수요예측 실패 때문이었습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2011년 9월18일, 전력대란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 장관은 전력대란의 주범으로 전력거래소를 지목했다. 전력계통을 운영하는 전력거래소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에 따라 설립된 전력거래소. 과거 한전이 맡았던 전력계통 운영과 수급관리 기능을 떼어낸 것이다. 이 또한 전력산업 구조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됐다.

전력계통 운영이란 전국에 퍼져 있는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력계통망을 실시간 감시하며 공급을 지시한다. 실질적으로 전국의 모든 발전소와 한전의 송배전망을 통제하는 셈이다. 사실상 전력산업의 두뇌다.

이와 관련해 전국전력노동조합 관계자는 "전력산업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것은 '조정'의 기능"이라며 "전력거래소 설립으로 한전은 그 조정기능을 잃어버렸고 정작 그 역할을 해야 할 전력거래소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9·15 전력대란 이후 한전과 전력거래소의 통합 논의가 시작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2011년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이던 정태근 의원(당시 한나라당)은 전력거래소의 계통 운영 기능을 한전으로 이관·통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과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판매부문을 보유한 한전에 계통 운영권을 부여하면 전력시장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반대의견이 제기됐고 결국 법안은 공방만 난무한 채 18대 국회가 문을 닫으며 자동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전력계통을 제대로 관리하기만 해도 전력난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효율적인 소통과 상황 대처로 전력수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의 등장 이후 전력가격도 해마다 급상승하고 있다. 민간발전회사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계통한계가격 방식을 적용한 탓이다. 실제로 2006년 20조원이던 전력 구입 비용은 2012년 38조원으로 치솟았다. 경쟁구도를 통해 전력가격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의도와는 사뭇 다른 결과다.

대한민국의 전력산업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민간발전회사로부터 구입하는 전기의 단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반면 전기요금은 정부정책에 의해 묶여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작정 발전소를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며 "전력산업의 통합과 전력거래제도 개선 등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 용어설명
◈계통한계가격(SMP; System Marginal Price)= 거래시간별로 일반발전기의 전력량에 대해 적용하는 전력시장가격(원/kWh). 실제 전력을 생산한 일반발전기 중 변동비가 가장 높은 발전기의 변동비로 결정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