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오름


여행(travel)은 고생(travail)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고생’을 잊는 여행이 필요하다. 되도록 많이 보고, 잘 먹고, 잘 쉬면 되지 않을까? 제주에서 하룻동안 ‘고생’ 없는 여행을 즐겨보자.

◆제주의 1/4, 군산에서 본다


제주에 군산이라? 제주에서 ‘군산’은 군산오름을 말한다. 산방산과 함께 남제주의 대표적 오름으로 원래 이름은 굴메오름이고 군산은 ‘굴메’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해발 334.5m의 원추형 기생화산인 이 오름은 생김새가 군막과 비슷해서 군산오름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제주사람들은 이곳을 상당히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고려 목종 7년에 화산이 폭발했는데, 상서로운 산이 솟아났다고 하여 서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자리가 워낙 명당이라 서쪽 경사면에는 상예공동묘지가 있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우선 태평 포구 쪽으로 오르는 도보 등반길이다. 길은 어렵지 않은 편이다. 숲으로 산책로와 나무 계단이 있고, 한번씩 뒤를 돌아보면 태평리의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약수터인 구싯물, 일제가 파 놓은 진지동굴, 사자바위, 애기업은돌 등을 지나면 곧 정상에 다다른다.


다른 하나는 안덕계곡 쪽에서 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정상부까지 길이 포장돼 있어서 차에서 내려 5분이면 정상에 도착한다. 게으른 여행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정상에서 보는 풍경은 한마디로 감탄이다. 산으로 말하자면 모슬봉, 송악산, 수월봉, 산방산이 보이고 날씨가 좋을 때는 한라산 백록담이 깨끗하게 보인다. 서귀포 중문관광단지부터 용수리, 모슬포항에 이르는 제주 남쪽 마을을 훤히 다 볼 수 있고, 이를 따라 제주 남쪽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군산오름 정상에서 제주의 4분의 1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일출과 일몰 또한 장관이어서 매년 1월에는 굴메오름 일출제가 열린다.


사계해안에서 본 산방산과 한라산
사계해안에서 본 형제섬

◆형제섬과 사계해안도로

이제 군산오름에서 본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올레 10코스는 화순항에서 모슬포항으로 이어지는 15.2km의 해안도로로 군산오름에서 산방산 쪽을 바라볼 때 펼쳐진 길이다. 특히 10코스 중 사계해안도로는 제주 명품 7대 도로로 사계 포구로부터 송악산까지를 말한다.

사계항은 조선시대에 흙으로 만든 토기를 배로 실어 나르면서 토기포구, 토끼포구 등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계항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굴메오름도 그렇고 원래 불리던 이름이 참 예쁜데 어려운 한문 이름으로 바뀐 지명들은 아쉬움이 있다.

사계해안도로를 대표하는 것은 형제섬이다. 군산오름은 물론 해안길 어디에서나 바다로 눈을 돌리면 형제섬이 보인다. 해안으로부터 1.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는 날씨에 따라 가깝게도 멀게도 보인다.

기분탓인가 싶지만 밀물과 썰물 때문이라는 분명한 착시의 이유가 있다. 얼핏 보면 두개의 섬이 마주 하고 있는 것 같고, 큰 바위가 두개로 쪼개진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 섬은 8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렇게 신기한 섬에서 낚시 한번 해 보고 싶은 것이 낚시꾼의 마음. 낚시를 할 수 있고, 낚싯배는 사계항에서 출발한다. 게다가 이곳은 제주 남부 연안에서 출조 어항이 가장 좋은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사계항을 출발해 움직이다 보면 펼쳐지는 풍경이 다채롭다. 때문에 자꾸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어디서는 용머리 해안 너머 한라산이 보이고, 어디서는 산방산 너머 하늘이 푸르다. 또 운이 좋으면 남방돌고래를 볼 수 있다. 지질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서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해안가를 만나는데, 출입 제한 지역이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송악산에는 3가지 옵션이 기다리고 있다. 10코스를 조금 더 걸을 것인지, 송악산에 오를 것인지, 배를 타고 마라도에 갈 것이지…. 선택은 자유다. 아, 한가지가 더 있다. 여기서 멈추고 맛있는 식사와 함께 내 몸에 휴식을 주는 것. 선택에 앞서 송악산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방목중인 말들이 평화로운 그림을 선사할 것이다. 해 지는 오후라면 조금 기다렸다가 노을 지는 바다에서 예쁜 사진 한 장을 남겨보자.


사계해안도로
짜이다방

◆제주 갈치로 충전, 온천으로 휴식

사계 해안도로에는 갈치와 옥돔 집이 많다. 특히 상을 가로지르는 엄청난 크기의 갈치는 이곳의 명물이다. 갈치라는 말이 ‘칼’에서 왔다고 하는데, 마치 장검 하나가 상위에 비장하게 놓인 것 같다.

그러니 상이 차려지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저마다 카메라를 꺼내 그 동안 봐왔던 갈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이 진풍경을 담기에 바쁘다. 큰 갈치는 퍼석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수입산 갈치가 만든 편견이다.

우선 갈치구이로 깐깐하게 갈치 자체의 맛을 음미해 본다. 고소하면서 탄력이 있다. 역시, 제주 갈치다. 그런데 걱정이다. 최상급을 맛 보았으니 앞으로 제주산이 아니면 갈치를 먹게 될 것 같지가 않다. 이번엔 조림 차례. 야들야들 고소한 갈치살이 비법 양념장과 어울려 쑥 들어간다. 이것이 진정한 밥도둑이구나!

잘 먹었으니 이제 좀 쉬어야겠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온천이 있는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산방산에는 그냥 온천도 아니고 탄산온천이 있다. 탄산수가 올라와서 탕 위로 기포가 톡톡 튄다. 샤워를 한 후, 잠시 따뜻한 물에서 온 몸의 모공을 열면 온천 준비 끝이다. 이제 탄산수에 몸을 푹 담가 본다.

처음엔 피부가 따끔따끔할 수도 있다. 탄산 미네랄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점차 시원하게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야말로 릴렉스. 하루의 피로가 탄산 기포와 함께 떨어져 나간다.

‘여행’(travel)이라는 말은 ‘고생’(travail)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어원을 거슬렀다. 어렵지 않게 제주 남부를 눈에 넣었고, 아름답고 평탄한 길을 걷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온천욕까지 했다. 이런 게 고생이라면 매일이라도 하겠다. 한번씩 꿀 같은 여행이 있어 길 떠나는 맛이 난다.

여행 정보

☞ 제주 공항에서 군산오름 가는 법
[승용차]
공항입구에서 ‘중문, 한림, 신제주’ 방면으로 우회전 - 공항로 - 신제주 입구에서 ‘중문, 한림’ 방면으로 우회전 - 도령로 - 동광IC에서 ‘중문, 상창, 중문관광단지’ 방면으로 좌측방향 - 평화로 - 상창교차로에서 ‘저지, 산양’ 방면으로 우회전 - 중산간서로 - 좌회전 - 상창중로 - 감산삼거리에서 우회전 - 일주서로 - 안덕계곡삼거리에서 ‘대평’ 방면으로 좌회전 - 대평감산로

[대중교통]
제주국제공항 정류장 – 500번 승차 – 제주한라병원 정류장 하차 – 780번 승차 – 창천리남당물동산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군산오름: 검색어 ‘군산오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564
사계해안도로: 검색어 ‘형제해안로’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 주요 정보 >
군산오름
064-760-2912, 064-710-6073

제주올레(올레 10코스 정보)
064-762-2190 / http://www.jejuolle.org

제 5회 제주올레 걷기축제
올레 걷기 축제는 아시아 워킹 페스티벌(Asia Walking Festival)과 함께하는 글로벌 축제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참가 신청을 받는다.
주제: 함께하자, 이 길에서
시간: 2014. 11. 6~8
장소: 제주올레 17~19코스
참가 신청기간: 2014. 7. 1 ~ 9. 30
참가비: 2만원
문의 및 참가신청: 064-762-2190 / http://www.jejuolle.org

제주특별자치도 관광정보
http://www.jejutour.go.kr
제주관광공사: 064-740-6000

< 음식 >
형제도식당: 송악산과 사계해안의 이름난 식당으로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이 맛있다. 무한리필로 유명한 옥돔 요리도 인기메뉴다. 식당에는 ‘제주산이 아닐 경우 1억원 보상!’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멘트가 눈길을 끈다.
통갈치 구이, 조림 각 3만5000원~6만5000원 / 옥돔조림(1인당) 3만원
064-792-3401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87-5

짜이다방: 산방산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곳에 인도식 다방이 있다. 짜이와 라씨를 맛볼 수 있으며 인도에서 공수해 온 액세서리와 옷도 구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늘어지게 앉을 수 있는 편안한 자리가 매력적이다.
짜이 4000~4만5000원 / 베트남커피 3500원 / 아메리카노 3500원 / 라씨 5000원
010-8993-3453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934-3

< 숙소 >
산방산온천게스트하우스: 산방산온천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도미토리로 숙박할 경우엔 이 온천을 2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저렴한 숙박료가 아니더라도 온천을 이용하기 위해 묵어가는 손님들이 많다.
도미토리: 2만원(온천 2회 포함) / 도미토리 마라도형: 3만2000원(숙박, 마라도 1회 왕복)
2인실~6인실: 6만~20만원
예약문의: 064-792-2544
http://www.sanbangsan.co.kr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2019-1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