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새로운 기준인 ‘뉴노멀’(새로운 표준)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경제는 여전히 적절한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지난 10월21일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체(APEC) 재무장관 회의에서 한 말이다. 같은 날 발표된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7.3%로 5년 반 만에 최저치를 기록해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리 총리가 “우리는 중국 경제에 대해 자신감으로 가득 차있다”고 자국 경제의 건전성을 역설했지만 세계는 리 총리가 언급한 ‘뉴노멀’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저성장이 세계 경제의 뉴노멀로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성장엔진 역할을 해온 중국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중국 경제를 진두지휘하는 리 총리가 직접 시인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30년간 두자릿수를 기록한 중국의 성장률이 2020년대엔 3%대로 뚝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 3분기 성장률 ‘뚝’… 7.5% 목표 달성 불투명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21일 올해 3분기 GDP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3%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시장전망치인 7.2%를 소폭 상회했지만 1분기(7.4%), 2분기(7.5%)로 이어지던 성장흐름이 깨지고 연중 최저치에 그쳤다.


3분기 성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성장률이 추락했던 2009년 1분기 6.6% 이후 5년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치라는 점에서 중국의 경기둔화가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라이윈 국가통계국 대변인은 “1~3분기 중국의 경제는 총체적으로 안정을 유지했지만 국내외 환경이 여전히 복잡하고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부동산경기 및 소비 둔화가 성장률 하락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관칭요우 민셩증권 연구원 부원장은 “주택매매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전체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었고, 3공 예산(공무원 접대비·해외출장·관용차구매) 감축과 반부패 정책으로 소비가 줄어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4분기에는 성장률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성장률 목표치(7.5%)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정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중국의 올해 연간 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내린 7.3% 안팎으로 조정했다. 칭화대학 경제연구센터도 성장률을 7.6%에서 7.4%로 낮췄다.

중국의 연간성장률은 1990년 이후 줄곧 7.5%를 넘었다. 올해 7.3% 내지 7.4% 성장에 머문다면 1989년 톈안먼사태 유혈진압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로 3.8% 성장에 그쳤던 1990년 이후 최저치가 될 것이다.

 


 
◆ 中 경제성장 마지노선 7% 뚫리나

내년 전망은 더욱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성장둔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내년 GDP가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7.1% 성장에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 역시 전력소비, 철도화물량, 신용확장 등 다른 성장지표들도 최근에 모두 부진한 양상이라며 이는 중국의 성장률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고 지적했다.

웬디 첸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경기상황에 따라 중국정부가 내년 성장률 목표를 7.0%로 낮출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세계은행은 오는 2016~2020년까지 중국 평균 성장률이 7.0%, 2021~2025년에는 5.9%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경제 싱크탱크인 콘퍼런스보드는 중국의 미래를 좀 더 암울하게 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콘퍼런스보드는 중국의 성장률이 2015~2019년에는 연평균 5.5%, 2020~2025년에는 3.9%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는 연간 1000만개의 일자리 창출 등 중국사회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필요한 최소 성장률인 7.2%에 못 미치는 것이다. 7% 이하로 성장률이 떨어질 경우 실업사태, 지방정부 재정악화 등으로 중국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중국정부는 인위적 경기부양이 없다는 공식 발표와는 달리 경기활성화라는 명분 아래 각종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최근 두차례나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 금리를 인하하고 5대 국영은행에 5000억위안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경기부양을 주도했다.

경기부양의 단골 메뉴인 인프라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지난 22일 하루 동안 철도·공항 건설 프로젝트 8개를 최종 승인했다. 치엔장-장가계-창더를 연결하는 치엔장창노선과 류저우-우저우를 잇는 류우노선, 그리고 정저우에서 완저우에 이르는 정완노선 등 3개 철도노선을 건설하고 지린성 쑹위안공항, 칭하이성 궈뤄공항 등 5개 공항을 신설하기로 한 것. 이들 8개 프로젝트의 총 투자규모만 1500억위안(약 25조87000억원)이 넘는다.
 
◆ 부동산 규제 풀어 꺼진 내수경기 살린다

중국정부는 특히 부동산경기를 살리는 데 경기부양의 초점을 맞췄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과도한 버블(거품)을 우려했지만 이제는 부동산 경기냉각이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인민은행은 최근 두번째 주택 구매자에 대한 주택대출 규제를 폐지했다. 주택 한채를 보유한 사람도 처음 집을 사는 사람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민은행이 주택대출 규제를 완화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라며 “중국정부가 부동산 침체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중국 내 주요 47개 대도시에서 시행되던 주택 구매제한 정책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지됐다. 이에 힘입어 부동산거래가 10월부터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지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1주일 동안 20개 주요 1, 2선도시의 주택거래면적을 조사한 결과 전주보다 45% 늘었다.

하지만 부동산 규제완화, 인프라 건설 등의 고전적인 경기부양이 식어가는 중국 경제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콘퍼런스보드는 중국이 성장세 둔화 충격을 완화하려면 근본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에 힘을 실어줘야 하지만 개혁을 실천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과감한 개혁은 단기성장세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정치적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에 중국 지도부가 이 같은 부담을 떠안고 개혁을 지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데이비드 호프만 콘퍼런스보드 중국 책임자는 “시장에서 중국정부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며 “정부가 오히려 혁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