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9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3차 양적완화(QE3) 종료를 발표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된 미국경기를 구하기 위해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막대한 규모의 돈을 풀었다. 제1차 양적완화가 시작된 지난 2009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Fed는 MBS(주택담보채권), 국채, 연방정부기관채 등을 매입해 시중에 대략 4조1970억달러를 쏟아냈다. 이후 취임한 재닛 옐런 현 FRB 의장은 이날 드디어 3차 양적완화가 종료됐음을 선언했다.


이렇게 지난 6년간 이어졌던 글로벌 돈잔치가 끝난 것처럼 보인 순간 곧바로 일본이 나섰다. 지난 10월31일 일본은행은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했다. 이미 돈을 조금씩 풀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조만간 미국처럼 대대적인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시행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시작한 파티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일본과 유럽은 화려한 조명과 음악의 스위치를 올리며 말한다. “파티는 끝나지 않았다”고.

◆ 일본, “양적완화 이제부터 시작”

지난달 31일 일본중앙은행(BOJ)은 연간 자산매입 규모를 현재보다 30%가량 늘려 최대 80조엔(원화 약 763조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본원통화 공급량을 지금의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장기 국채매입액을 50조엔에서 80조엔으로 ▲ETF(상장지수펀드)와 REITs(부동산투자신탁)의 매입액을 기존 1조엔, 300억엔보다 3배 늘린 3조엔, 900억엔으로 확대키로 했다. BOJ는 이외에도 보유 중인 국채의 잔존만기를 현재의 7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할 방침이다.

BOJ의 발표 직후 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일본의 공적연금펀드(GPIF)는 향후 일본채권 투자비중을 지금의 60%에서 35%로 낮추는 대신 일본주식과 외국주식 투자비중을 지금의 12%에서 25%로, 외국채권 비중을 11%에서 15%로 상향하는 내용의 포트폴리오 개편안을 발표했다.

일본이 갑작스레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CB의 양적완화 움직임, 일본의 경기둔화, 국제유가 하락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취임 이후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경기부양책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ECB 또한 돈을 풀며 양적완화를 시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유로화 환율의 약세를 견인하며 엔저를 통한 일본수출경기 부양의 효과를 낮춘다.

엔저현상을 통해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은 확보했지만 대신 일본의 경기가 둔화된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의 아베 정부는 지난 4월 재정건전화를 목적으로 소비세율을 기존의 5%에서 8%로 인상했다. 내수는 위축됐고 일본의 경제지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9월 일본의 소비지출은 전년대비 5.6% 감소하며 6개월 연속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일본 통화정책에 기준이 되는 신선식품 제외 소비자물가가 3.0% 상승했지만 소비세율 인상분을 제외하면 0%대”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유가의 움직임 역시 BOJ가 추가 양적완화를 시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안기태 우리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유가가 하락하면서 양적완화에 따른 물가 부담이 약화된 것이 BOJ의 양적완화 추가 확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엔화약세는 일본의 원유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디플레이션 우려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그동안 BOJ는 추가적인 양적완화를 진행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물가부담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

일본의 양적완화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안 이코노미스트는 “10월의 깜짝 추가 양적완화는 완결이 아니다”며 “내년 1분기에 BOJ는 본원통화를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는 “일본은 내년 10월 소비세율 인상을 올 연말 결정지어야 하며 4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최근 아베 내각의 추문이 잇따르며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데 일본정부가 경기부양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돈 더 풀까 고민에 빠진 유럽

돈을 풀고 있는 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ECB는 침체된 유로존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난 10월말 커버드본드(금융기관의 담보부채권)를 17억400만유로(약 2조2714억원)어치 사들였다. 이는 지난 10월20일 매입한 2500만유로(약 333억원)의 68배가 넘는 금액이다. ECB는 매주 월요일 커버드본드의 매입규모를 밝힐 계획이다.

또한 11월부터 자산유동화증권(ABS)도 매입하기로 결정하고 프로그램을 이행할 아문디앤아문디 인터미디에이션과 도이체에셋앤웰스매니지먼트 인터내셔널, ING 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스테이트스트릿 글로벌 어드바이저스 등 4곳의 자산운용사를 선정했다. 아울러 ECB는 오는 12월 저금리로 은행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2차로 진행할 계획이다.

ECB가 조만간 장기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자금을 푸는 FRB스타일의 양적완화를 도입할 가능성도 높다. 유럽의 경기둔화를 타파하기 위해서다. 지난 4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2%에서 0.8%로 하향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7%에서 1.1%로 내렸고 물가 전망치도 올해와 내년 각각 0.5%, 0.8%로 수정했다. ECB가 양적완화는 아니더라도 조만간 자산매입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를 지탱해왔던 미국의 양적완화가 끝났지만 세계적인 돈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종료했지만 저금리 기조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ECB의 양적완화가 이어지며 강달러와 엔저 현상은 내년 이맘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JP모건은 지난달 31일 일본의 추가 양적완화가 발표되자 미국과의 금리격차 확대로 엔저가 심화될 것이라며 내년 3분기의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종전 달러당 110엔에서 120엔으로 올렸다.

덕분에 우리나라와 중국 등 경기회복이 더딘 나라들은 앞으로 글로벌 통화전쟁에 휘말릴 개연성이 높아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한국수출입은행이 주재한 경제혁신장관회의에서 “선진국 간 통화정책이 차별됨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 가능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밝힌 이유이기도 하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