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유적
전쟁에 적합한 장소가 따로 있나? 차낙칼레(Çanakkale)가 그런 곳이었나 보다. 신들의 격전지 트로이였고 역사적인 갈리폴리전쟁이 벌어진 곳이다. 차낙칼레에서 신화는 실화가 된다.
◆신화, 흔적을 남기다
전쟁이 길었던 만큼 축제도 성대했다. 10년 동안의 긴 전쟁 동안 영웅들은 스러져갔고 트로이와 그리스 모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들은 전쟁의 피로와 울분을 술과 음식으로 달래며 취기와 함께 흥도 올랐을 것이다. 그리스 군대가 물러간 곳에는 커다란 ‘신의 선물’이 있었다.
패전군의 배와 무기로 만들어 진 목마는 트로이군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전리품이었다. 목마는 승전가와 함께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 광장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모두가 조용해진 밤. 최후의 전투가 시작됐다. 실로 오랜만에 편한 잠에 빠져들었을 트로이 군사는 목마에서 나온 그리스 군대의 기습으로 대파됐다. 이 전투에서 그 유명한 신의 아들, 아킬레스가 전사한다.
‘미(美)의 논쟁’이 이런 피를 흘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당초 그리스 여신인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최고 미녀의 자리를 두고 다툼을 벌였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시험에 들고 말았다. ‘누가 가장 아름답냐?’는 질문에 그는 요령도 없이 아프로디테를 택했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 왕자에게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선물로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루아침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가만있을 리 없다. 그리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해 트로이로 쳐들어갔다. 아내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길고 지루했던 전쟁…. 그리스는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전쟁을 끝냈다. 이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기록돼 있다.
신의 다툼으로 시작된 신화인 줄만 알았다. 영화 <트로이>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생긴 배우들이 이 전쟁을 더욱 더 신화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터키에 ‘트로이 유적’이 있다고 한다. 놀랍게도 트로이는 실존했던 나라였다.
차낙칼레항구의 트로이 목마
제9층 로마시대 흔적
◆아홉 층, 아홉개의 시대
슐리만은 신화를 믿은 사람이었다. 그는 전설속 이야기로서 신화를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역사를 확신했다. 독일 사람이었던 하인리히 슐리만은 어렸을 때 트로이 전투를 묘사한 한장의 그림을 보고 반드시 그 유적을 찾아 내겠다고 결심했다. 1870년 4월에 발굴을 시작했고, 1873년 6월에 드디어 트로이유적을 발견했다. 황금잔과 왕관, 목걸이 등의 유물을 발견함으로써 이 도시가 전설 속의 트로이라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발굴 결과 이 유적은 크게 아홉개 층으로 이루어진 복합유적이었다. 제 1층은 B.C 3300년부터 시작해 제 9층이 로마시대까지 이어졌다. 5000년 전부터 시작된 실제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이층들은 그 동안 우리가 알 지 못하는 수많은 역사와 문화를 돌무더기 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것은 성벽의 모습이다. 흙벽, 조개가 들어있는 벽, 돌벽, 벽돌 등이 각 층의 시대를 말해주고 축성방법, 건축기법, 건축 양식 등도 각 시대마다 다르다. 이 중 제 2층인 B.C 2500년부터 B.C 2200년까지의 유적에서 견고한 성벽과 웅대한 성문이 있는 ‘메가론식’ 건물 흔적이 발견됐다. 슐리만은 처음에 가장 큰 제 2층을 호메로스의 ‘트로이’라고 단정했는데, 이후 제 7층인 것으로 밝혀졌다.
트로이전쟁의 무대인 제 7층은 B.C 1275년부터 B.C 1100년까지의 유적이다. 이렇게 시대가 여러 번 바뀌는 동안 도시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도시가 이어졌다는 것은 이곳의 입지가 상당히 좋았음을 의미한다. 트로이는 미케네 문화권에 속했고 주변의 해협을 지배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여서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지금은 항구로부터 차를 타고 30㎞를 달려야 하고 언덕에서 바다 까지가 6㎞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때는 요새 가까이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실제로 이 언덕에서 바다가 멀리 보였다고 한다.
놀라운 발굴 뒤에는 아쉬운 사건도 이어졌다. 고고학 전문가가 아니었던 슐리만은 ‘트로이전쟁’의 유적만을 염두에 두고 발굴했기 때문에 B.C 2000년 이후의 유적을 파괴하고 말았다. 알렉산드로 대왕도 다녀갔다는 그리스 이후의 유적은 보존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또 최초에 발견한 장신구와 보물을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여기며 베를린으로 밀반출했다.
이 막대한 양의 보물은 2차 대전 시 소련군의 침공 과정에서 소실되고 말았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발굴 당시 아내 소피아가 착용한 사진 뿐이다. 그는 아내를 ‘헬레나’라 칭송하며 장신구를 몸에 두른 사진을 찍었다. 위대한 발견의 탐욕스런 몰락이었다.
다르다넬스 해협
에체밧 역사기념공원
◆또 다시 전쟁, 갈리폴리 전투
트로이유적은 차낙칼레에 있다. 차낙칼레는 갈리폴리(Gallipoli) 반도와 접해 있다. 그리고 갈리폴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매우 중요한 전투가 치러진 곳이다. 갈리폴리는 터키어로 겔리볼루(Gelibolu)로 ‘겔리볼루 전투’, ‘차낙칼레 전투’라고 불린다. 트로이 전쟁이 있은 지 수천년이 지난 후 또다시 이곳에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1차 대전 중 영국 연합군은 지중해의 지배권을 잡기 위해 이곳 갈리폴리에서 상륙작전을 벌였다. 전투는 치열했다. 연합군 측 사상자가 무려 25만2000명이었고 터키군 사상자도 25만1000명이 됐다. 터키는 죽기를 불사하고 이곳을 지켜냈고, ‘상륙작전은 상륙군에 불리하다’는 정설을 낳았다. 이 전투에서 터키가 보여준 처절한 정신과 의지는 이후의 전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군을 물리친 점,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지도력, 200년 가까이 서구열강에게 밀리던 오스만 제국에 승리를 안겨준 점 등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군대에게 늘 전설 같이 회자되고 있다.
갈리폴리 반도의 에체밧에는 기념공원이 있다. 갈리폴리 지역의 역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 했는데, 2520㎡ 면적에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을 잘 살려 놓은 점도 특별하다. 공원 너머로는 다르다넬스(Dardanelles) 해협이다. 건너 보이는 차낙칼레는 아시아, 그리고 이쪽편 에체밧은 유럽이다. 그 사이를 흐르는 물은 폭이 고작 2㎞로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을 가른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은 이곳을 가만두지 않았나 보다. 이제 이곳은 여행자의 간식거리를 노리는 갈매기 소리만 들릴 뿐 고요하고 평화롭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한 차낙칼레 언덕과 전쟁의 무용담만이 여행자를 이끌고 있다.
● 여행 정보
☞ 한국에서 터키 차낙칼레 가는 법
여행자들이 터키로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항공을 이용해 이스탄불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으로 터키에 입국한 후, 고속버스를 이용해 에체밧(Eceabat)이나 차낙칼레(Canakkale)로 간다. 터키는 버스 여행이 잘 발달돼 있어서 시외버스터미널에 각지로 가는 버스가 있다. 운송회사마다 주요 운행지가 다른데, 트로이 지역으로 운행하는 버스사는 ‘TRUVA’다.
TRUVA 여행사 http://www.truvaturizm.com
☞ 차낙칼레에서 트로이유적(트루바) 가는 법
차낙칼레 항구 근처에서 ‘돌무쉬’라는 그 지역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현지여행사의 트로이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트로이 유적의 경우 층별 각 시대의 특징을 알고 보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에 가이드 안내를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미리 책을 읽거나 유적지 게시판을 주의 깊게 읽어보길 권한다.
☞ 트로이 유적
입장료: 20리라
관람시간: 오전 8시 ~ 오후 5시(겨울)
사이트: http://www.muze.gov.tr/troia-en
< 음식 >
Iekele Doner: 차낙칼레 항구 앞에 있는 매우 캐주얼한 캐밥전문점이다. 현지 젊은이들이 부담 없이 즐기는 집으로 새벽 한시 반까지 영업을 하며 배낭여행자들에게도 소문난 집이다.
http://www.facebook.com/pages/Iskele-döner / +90-286-213-7323
< 숙소 >
Anzac Hotel: 차낙칼레 항구와 버스터미널에서 가깝고, 주변에 다양한 레스토랑과 쇼핑거리가 있다. 깨끗한 객실과 친절한 직원, 아침식사도 좋은 편이다.
http://www.anzachotel.com
Crowded house: 에체밧에 위치한 호텔로 여행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항구에서 가깝고, 아침식사를 제공하며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http://www.crowdedhousegallipoli.com/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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