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든 휴대전화를 싸게 사고 싶어 안달이 난 소비자들의 구매과정은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암어를 주고받은 뒤 이뤄지는 소비자와 판매점의 거래는 더욱 은밀하다. 소비자가 현장에서 ‘페이백’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해도 거래는 불발된다. 혹시나 있을 폰파라치에게 적발될까 우려해서다. 사진이라도 찍히는 날엔 판매자는 1000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지난 11월1일 저녁 발생한 '아이폰6 대란'에서도 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일부 휴대전화 판매점에선 새벽부터 소비자들이 늘어서 불법 보조금 지급 현장이 들통나고 말았다. 들키면 벌금을 낼 게 뻔하지만 판매점 입장에선 이른바 ‘스팟’(이통사들이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이 일시적으로 큰 폭으로 상향 조정되는 시점)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은밀한 거래가 이뤄지는 '불법 현장'을 취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 신분을 밝히면 열이면 열 입을 굳게 다물거나 문전박대하기 일쑤다. 심한 욕설을 들을 땐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소비자와 판매점·대리점을 범법자 혹은 범죄 방조자로 몰아세운 세력에 언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스팟과 단말기 대란이 알려지면서 언론은 일제히 “‘호갱님’을 만들었다”며 이통시장 과열경쟁에 당장이라도 큰 일이 날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누가 이들을 범법자로 내몰았냐'는 질문에 언론도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이통사들이 지난 2012년 '스팟 정책'을 꺼내든 이후 정부의 규제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모두가 ‘호갱’이 되는 길을 택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등장했다.
별다른 고민없이 무더기 법안을 통과시킨 국회나 줏대없이 휩쓸린 정부, 혼란을 부채질한 언론까지 모두가 영세자영업자나 시민을 범법자로 내몬 공범인 것이다.
단통법을 취재하면서 만난 한 판매점 사장이 기자에게 "단통법 좋은 점은 없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머뭇하던 기자는 이런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단통법이) 저도 호갱인 걸 깨닫게 해줬네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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