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 5개 완성차 회사 가운데 현대·기아자동차를 제외한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한국지엠 등 3사는 외국계다. 프랑스 르노, 인도 마힌드라그룹,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각각 그 주인이다. 외국계 자본유입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지만 ‘쌍용차 사태’와 같은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머니위크>는 세 자동차기업이 외국계 자본에 팔린 이유를 알아보고 ‘제2의 쌍용차 사태’의 위험성은 없는지 짚어본다.
무역장벽이 허물어진 세계화 시대에 수많은 초국적 기업들은 국경 너머로 자신의 시장을 경쟁적으로 넓힌다. 국가 입장에서도 초국적 기업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다. 해당지역의 고용이 살아나고 고용이 늘어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그토록 외국자본 유치를 바랐던 이유다.
르노는 IMF 위기 당시 법정관리 신청 후 청산 위기에 있던 삼성자동차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제2의 쌍용차 사태’가 르노삼성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나온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삼성자동차 대표이사가 QM3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인철 기자
◆실패한 ‘자동차 마니아’의 꿈
지난 1999년 6월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동차 마니아’인 이건희 회장의 의지로 10년 넘게 준비해 지난 1998년 첫 모델을 출시하며 자동차사업에 뛰어들었던 삼성이 채 2년도 되지 않아 경영을 포기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 자동차산업 진출을 모색하던 삼성은 자동차 합리화업종 지정해제를 계기로 1990년 닛산 디젤과 제휴해 대형상용차 생산을 위한 기술도입 신고서를 냈지만 정부의 반려로 무산됐다. 이후 지난 1992년 720억원을 투자해 상용차업계에 진출한 삼성은 1994년에는 승용차시장 진입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상용차에서 닛산과 제휴를 체결했던 삼성은 승용차에서도 자연스럽게 닛산과 손을 맞잡았다. 자동차산업은 절대적으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처음 발을 들이기 위해서는 선진 자동차기업과의 기술제휴가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 자동차업계는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현대차는 미쓰비시로부터, 기아차는 마쓰다에서 기술을 넘겨받았다. 현재 외국회사에 인수된 대우자동차와 쌍용자동차도 각각 미국의 GM, 카이저사와 기술제휴를 맺은 바 있다.
이러한 과정 끝에 지난 1995년 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삼성차는 1996년 부산 신호공단에 자동차공장을 완공하고 삼성전기가 부품을, 판매·서비스는 삼성물산이 맡았다. 드디어 1998년 닛산의 세피로(맥시마)를 본따 만든 삼성의 첫 승용차 SM5가 탄생했다.
하지만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에게도 자동차산업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특히 IMF를 겪으면서 국내 자동차시장은 1997년 115만대 규모에서 1년 만에 56만대 규모로 반토막 나고 말았다. 자동차업계에 첫 진출한 삼성차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삼성차는 SM5 한 차종만으로 4만대 이상의 판매성과를 거뒀다.
고전을 거듭하던 삼성은 1999년 6월 삼성차의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당초 청산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삼성은 매각으로 삼성차의 진로를 바꿨다. 부산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삼성은 인수 의사를 밝힌 르노에 '삼성'이란 이름을 빌려주는 대신 영업이익이 발생할 때 매출의 0.8%를 로열티로 받기로 결정했다.
르노삼성이 로열티를 주면서까지 '삼성 브랜드'를 고수한 이유는 국내에선 인지도가 낮은 ‘르노’의 브랜드 네임을 내세우는 것보다 국내 최대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삼성’이란 이름이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 ‘먹튀’, ‘현지판매법인화’… 말 많은 르노삼성
‘쌍용차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외국자본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다. 르노도 이러한 '먹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산 ‘삼성차공장’을 구해낸 르노지만 먹튀의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10월 부산의 시민단체들은 르노삼성차 타기 범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부산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 르노삼성차의 성장은 필연"이라며 "부산이 불러오고 살려낸 르노삼성차를 애용해 더 큰 부산을 만드는 데 함께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지난 9월 서병수 부산시장은 관용차를 르노삼성차로 바꾸기도 했다. 부산시민들은 르노삼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런 시민운동을 벌여왔다.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전국 평균 등록률을 살펴보면 르노삼성의 전국 평균은 5.7%에 그치지만 부산에서는 8.1%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부산시민들의 르노삼성 사랑에도 불구하고 르노는 언제든지 짐을 쌀 채비를 갖추고 있다. 르노삼성은 최근 부산의 공장부지 5만9400㎡를 매각했다. 부산시로부터 공장용지로 3.3㎡당 50만원에 매입한 땅을 170만~200만원씩에 판 것이다. 회사 측은 “매각한 땅은 공장부지가 아닌 부대용지”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르노삼성의 ‘먹튀’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르노삼성이 모기업 르노의 현지판매법인으로 변질돼 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삼성차가 르노에 인수된 이후 르노삼성차로 개발된 차량이 단 한대도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르노삼성이 판매 중인 모든 차량은 르노그룹과 공동개발한 차량들 뿐이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QM3 역시 스페인 바야돌리드공장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차량이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얼라이언스 회장은 QM3의 국내 판매량이 월 평균 4000대를 넘어서면 부산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엄청난 인기로 물량부족을 겪고 있음에도 국내 생산 소식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올해 11월까지 르노삼성의 내수 판매실적은 6만9640대로 전년(5만2101대) 대비 33.7% 상승했다. 하지만 올해 판매실적에서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전량 수입하는 QM3(1만4864) 판매량을 제외하면 수치는 비슷하다. 실상은 수입차인 QM3를 르노삼성브랜드로 포장해 팔고 있는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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