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채권운용회사 ‘핌코’의 최고경영자인 무하마드 앨 에리언은 그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2008년)에서 ‘뉴노멀’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뉴노멀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부상한 새로운 경제질서를 뜻한다. 주로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 고위험, 규제 강화, 미국 경제 역할 축소 등이 뉴노멀의 요소다.


세계 경제는 지난 몇 년간 미국 서브프라임발 모기지의 충격에서 살아남는 데 집중했다. 성장 위주에서 생존으로 경제질서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판은 바뀌고 있다. 그간 '회복'에 무게를 두던 각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한번 판을 짜고 있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은 지난 10월30일 양적완화(QE)의 종료를 발표했다. 파티의 주인공 자리는 일본이 옮겨받았다. 일본은 바통을 터치하듯 같은달 31일 추가 부양책을 발표했다.

중국은 위안화 세계화를 추진하며 아시아 기축통화 자리를 위안화가 차지할 수 있도록 각국과 협력에 나서고 있다. 후강퉁 제도를 도입해 그간 막아뒀던 금융시장의 '문'도 일반 투자자에게 조금씩 열고 있다.


덕분에 글로벌 증권시장은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해외증시 흐름을 놓고 봐도 그렇다.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지난 9월16일(현지시간)부터 12월9일까지 총 60거래일 동안 1만7131.97포인트에서 1만7801.20포인트로 3.91% 올랐다. 같은 기간 나스닥 종합지수는 4552.76포인트에서 4766.47포인트로 4.69% 상승했다.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500지수 또한 60거래일간 총 3.04% 뛰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아시아권의 증시는 폭등세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의 니케이225지수는 최근 60거래일간 총 9.45% 급등했다. 상하이종합지수는 27.18% 뛰었다.

이 같은 글로벌 시장의 축제에서 한발짝도 아니고 아예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있는 나라도 있다. 한국이다. 코스피 지수는 최근 60거래일간(10일 종가 기준) 3.52% 떨어졌다.

먼 바다 건너의 미국은 차치하더라도 바로 근처에 있는 중국과 일본은 왜 ‘잘 나가고’ 있을까. 그리고 ‘박스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 뜰 수밖에 없는 中·日

중국 증시가 최근 강세를 나타내는 배경에는 중국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있다. ‘후강퉁’에 따른 투자자들의 관심도 있지만 중국 인민은행의 금리인하와 유동성 공급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중국 증시가 강세를 보인 이유는 통화당국이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라며 “중국 통화당국은 지난 3분기말부터 각종 조치 등을 통해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9월부터 중국 인민은행은 ‘중기유동성지원조치(Medium-term Lending Facility)’를 통해 9월과 10월에 각각 5000억위안과 2695억위안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은행에 공급했다. 이 규모를 달러로 환산할 경우 각각 813억달러와 438억달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3차 양적완화(QE)가 시행될 당시 매월 매입했던 국채의 규모와 비슷하다. 시장에서는 사실상 중국판 QE라고 여길 정도다.

더불어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1월 말 정책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단기 유동성 500억위안을 공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최근 유동성을 일부 공급하는 등 시장에 돈을 붓고 있는 상태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성을 딴 이른바 ‘시리노믹스’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 전망도 나쁘지 않다. 전종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중국 주식시장의 단기 반등은 다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시진핑 성장개혁의 강화, 2015년 상반기 주택경기 바닥 통과, 개인·기관·외국인 수급의 긍정적 유입이 지속된다면 향후 2~3년에 걸친 주가의 레벨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 증시의 상승 또한 유동성 공급, 즉 양적완화 정책으로 설명 가능하다. “윤전기를 돌려서 일본은행으로 하여금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게 하겠다”는 말 한마디로 설명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인위적 엔저를 통한 수출증대-경기부양이다. 말 그대로 돈을 찍어내 풀어버린 것이다. 아베 총리 집권 당시 1만선대였던 니케이225지수가 현재 1만7000선대까지 올라서는 데 1등 공신은 아베노믹스, 즉 일본판 양적완화다.



◆ 박스피 벗어날까

코스피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양적완화가 없기 때문일까. 한국에서도 경기부양책은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제 정책을 말하는 ‘초이노믹스’다.

현재까지 드러난 초이노믹스의 골격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공조를 통해 내수를 부양하고 경제혁신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일단 진행된 면모를 보면 부동산 경기와 주식시장의 활성화가 주를 이룬다. 문제는 초이노믹스가 시작된지 5개월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으로 드러난 실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권가의 시장 전망은 밝지 못하다. 최승용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주식시장을 ‘불확실성’ 한마디로 정의한다. 최 센터장은 “구조적 제약 요소들이 거의 치유되지 않고 있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아직 낙관론을 말할 때가 아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펼쳐질 정책적 불쏘시개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그 후유증과 더불어 내수부문의 하강 압박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내년 코스피 증시의 등락 범위는 제한적이 될 것이라며 올 수준의 박스권이 유지될 것으로 분석했다.

박성현 한화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또한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내년에는 1분기 수급과 심리 개선에 따라 주가지수가 반짝 단기 강세를 보이다가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는 2분기와 3분기 수급 불안정으로 박스권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내년 코스피 예상밴드는 1880~2150포인트로 예상했다.

박 팀장은 “1분기에 수급과 심리가 개선되며 주가지수가 추가적인 강세를 보일 수는 있겠다”면서도 “기업실적 등 본질적 변수의 개선이 없기 때문에 주가가 ‘눌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