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 마니아인 중국인 왕마오띠엔씨(여·32)는 지난 11월 세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에도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여행사를 통해 처음 방문한 2년 전에는 서울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눈과 코, 안면윤곽수술을 받았다. 수술결과에 만족한 그는 지난해 다시 한국을 찾아 가슴성형과 힙업성형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국인 친구 5명과 함께 방문해 피부레이저와 스킨케어, 보톡스시술을 했다. 이마에 보형물도 넣었다. 왕씨는 세번의 한국 방문으로 5000만원에 가까운 돈을 성형의료비로 지불했지만 만족도는 그 이상이라고 말한다.

성형외과가 밀집한 서울 압구정역이나 신사역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다보면 왕씨와 같은 중국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성형수술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고 다닌다고 해서 '붕대족'으로 불린다. 다시 말해 한류를 '성형수술'로 체험하는 이들이다. 최근 1년 새 정부의 의료관광 활성화정책과 한국드라마 열풍에 힘입어 중국인 '붕대족'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성형에 대한 진료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용덕 기자

◆한류열풍 타고 성형 붕대족 증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외국인환자 유치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성형외과를 찾은 중국인은 1만6282명이다. 전체 외국인환자(2만4075명) 10명 중 7명(67.6%) 꼴이다. 다음으로 많은 일본인(1376명)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반면 일본을 포함한 미국, 러시아 환자의 비중은 최근 몇년간 정체상태다.

중국의 '성형한류' 열풍은 지난 2010년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지난 2009년만 해도 성형을 위해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791명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약 5년 만에 20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성형외과를 찾는 외국인환자의 1인당 평균 진료비는 약 345만원으로 지난해(330만원)보다 약 15만원 증가했다. 국내 성형외과가 중국인환자로부터 벌어들이는 돈만 한해 562억원이 넘는다.


강남에 위치한 D성형외과 이모 원장은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중국인환자가 하루 1~2명꼴이었지만 지금은 1년에 2000명을 훌쩍 넘는다"며 "여성이 70~80%를 차지하고 그중에서도 20~30대 젊은 여성이 대부분이지만 이들의 씀씀이가 남다르기 때문에 주요 고객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성형외과들도 중국인 붕대족을 잡기 위한 마케팅에 힘을 쏟는다. 중국어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고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코디네이터는 물론 간호사까지 두며 다양한 맞춤서비스를 늘리고 있는 것.

실제 중국인환자 유치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압구정 J성형외과는 총 15명의 코디네이터 중 4명을 중국인으로 배치했다. 이들은 환자와의 원활환 소통을 도우면서 진료상담부터 수술 후 관리, 퇴원에 이르기까지 밀착서비스를 한다.

성형외과 관계자들은 중국인환자들은 한번 방문으로 여러 부위의 수술을 동시에 받기 때문에 비교적 시술부위가 적은 국내 환자 10명을 수술하는 것보다 중국인환자 2~3명을 수술하는 것이 수익이 더 높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 등 한류문화 열풍을 타고 국내 연예인처럼 되기 위해 유입되는 중국인환자 수가 상당한 편이다.

S성형외과 상담실장은 "중국인환자들은 대부분 상담받을 때 한국연예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한다"며 "특히 최근 중국인이 가장 원하는 '워너비 페이스'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이 역을 맡았던 전지현"이라고 말했다.

중국인환자들이 국내 병원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세가지다. 미디어를 통하거나 친구가 성형한 곳을 소개받는 것, 그리고 중국 현지 브로커를 통하는 것이다. 대부분은 브로커를 통해 병원을 선택한다. 국내 성형외과도 서비스 질을 높이고 해외환자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네트워크 측면에서 앞서는 중국 브로커를 이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왕서방' 브로커 수수료가 90%

중국브로커는 현지에서 환자를 모은 뒤 병원을 지정해주고 단체로 항공권을 예매해주는 한편 수술 후 묵을 호텔까지 잡아준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들이 중국인환자를 유치해주는 대가로 국내 성형외과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총 수술비의 30~70%. 최근에는 성형외과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브로커가 수수료 명목으로 90%를 떼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이 병원규모도, 의사의 실력도, 업계 평판도 아닌 수수료라는 점이다. 이들은 단 1%라도 수수료를 더 주는 곳으로 향한다. 심지어 환자가 원하고 필요한 수술이 아니라 단가가 높은 가슴성형수술, 양악수술 등을 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물론 소규모 병원 입장에서는 브로커가 없다면 해외환자 유치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형 성형외과의 경우 자본력과 규모를 바탕으로 해외환자 마케팅에 열을 올리지만 소규모 병원은 수수료를 많이 떼 주더라도 브로커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럴 경우 의사들의 선택은 두가지다. 환자에게 정확한 가격을 받고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애초 수술비용을 부풀려 환자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강남의 한 병원 실장은 "100만원 수준의 성형수술을 한 중국인에게 1000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의료질서를 망치는 불법 브로커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해외환자의 발길도 머잖아 끊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의료업계 한 관계자는 "늘어난 의료관광객 만큼 바가지요금이나 성형부작용 등을 호소하는 중국인 성형환자가 크게 늘었다"며 "불법 브로커에 의한 수수료 폭리와 허술한 의료사고 배상시스템 등은 결국 한국의료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어 외국인환자에 대한 적절한 구제수단과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