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 팀장 신경 좀 써줘. 열심히 하고 괜찮은 친구야. 인사 때 적극 반영했으면 좋겠는데…."

지난해 6월쯤이었을까. A공사 한 임원이 △△은행 임원에게 전화통화로 한 말을 우연히 엿들었다. 공공기관과 은행의 인사청탁이 기자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A공사는 OO은행의 대주주다. 관리·감독기관이기 때문에 OO은행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금융권의 구태다.

인사청탁이 어디 이뿐이랴. 사실 금융권 CEO조차 구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피아가 사라진 자리에 '서금회'가 활개치고 있다. 신관치 금융이다. 이렇다보니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보다 라인타기에 급급하다. 어느 라인을 탔느냐에 따라 직위와 연봉이 달라진다. 탄탄한 동아줄만 잡으면 복잡한 은행업무보다 편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는 동안 한때 아시아 금융허브를 꿈꿨던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다. 게다가 저금리·저성장이 겹쳐 순익마저 고꾸라졌다. 위기의 연속이지만 말로만 위기를 외칠뿐 외형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금융은 흔히 무형으로 불린다. 공산품처럼 고객이 상품을 만져보고 품질을 따져보는 유형과는 성질이 다르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금융상품이 개발되고 소멸된다. 하지만 몇년째 금융권의 '허니버터칩' 같은 상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창조금융도 외형적으로만 화려할 뿐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 역시 점점 추락하는 추세다. 지난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이 서로를 물고 뜯는 내분이 벌어졌고 개인정보 유출사태도 계속해서 터졌다. 최근엔 계좌 무단인출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은행들은 모든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기 급급하다. 계좌 무단인출사태는 일부은행에서 다른 시중은행으로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일부은행은 해외에서 망신을 당했다. 일본 도쿄지점 부당·불법대출 사고로 해당은행 지점장 등 일부 직원들이 검찰에 구속된 것. 후진국보다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사고가 금융권에서 잇달아 발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금융권에서 총체적 부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인사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리스크 없이 기업과 산업이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위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위기극복 능력을 갖춘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바뀐다. 지금처럼 내외부에서 인사청탁이 오거나 제3자가 개입할 때 이를 현명하게 막을 수 있는 지혜가 지금 금융권에서는 가장 필요하다.

조만간 금융권 인사시즌이 돌아온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이 있듯 만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선 현명한 인사가 우선돼야 한다. 다시 한번 동북아 금융허브를 목표로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당국, 금융회사가 서로 협력할 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