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명대사다.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독백으로, 햄릿이 삶과 죽음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뇌하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삼촌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상황에서 오해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의 아버지를 죽이게 되자 가혹한 운명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햄릿은 살아서 거대한 고통의 소용돌이를 견디는 것이 옳을지, 자신이 죽음으로써 이 모든 고통을 근절하는 것이 더 나을지 심도 깊은 고뇌에 빠진다. 이에 따라 햄릿처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결정력 장애를 '햄릿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특히 선택지가 많아진 현대인들은 매번 고뇌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물론 삶과 죽음의 고뇌보다는 훨씬 더 휘발성 있는 고민이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은 "점심 뭐 먹지?"이고 주부의 가장 큰 고민은 "오늘 저녁 뭐 해먹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다. 그나마 '뭐 먹지'란 고민은 의식주와 직결되기라도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중요치 않은 매순간마다 결정을 머뭇거리기 일쑤다. 불안한 시장상황 속에서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하는데 넘치는 정보가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옷을 살 때 꼭 친구나 엄마가 동행해 어울리는지 여부를 말해줘야 마음이 놓인다. 식사하러 갈 때도 맛집을 검색해 검증 받은 곳을 가야 더 맛있는 것 같다. 물건을 사더라도 이미 써본 유저들의 평가를 꼼꼼히 읽어봐야 믿음이 가고 영화를 볼 때도 평점을 비교하면서 점수와 호응이 높은 영화를 선택한다. 이처럼 본인이 스스로 결정하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다 보니 참고할 수 있는 의견이 없으면 소비가 두려워진다.

 


 
◆전문가가 제품 추천 '매출 급증'

여기에 기인해서 개인컨설팅업체나 쇼핑 시 취향에 맞게 상품을 추천해주는 '큐레이션'(curation)이 뜨고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일정한 주제에 맞춰 선별하고 전시하는 큐레이터가 쇼핑에 접목된 것이다. 큐레이션쇼핑몰은 소비자가 좋은 제품을 찾는 노력을 대신해 신뢰할 만한 전문가가 제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G마켓이 지난해 4월 업계 처음으로 큐레이션 쇼핑몰 'G9'을 선보였는데 모바일 매출이 급증했다. 가장 인기를 끈 품목은 e쿠폰. 예컨대 '갈릭치킨 반+매운치킨 반+콜라 1.25L'(1만7000원)로 구성하는 식이다. 이런 큐레이션서비스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모바일에서는 소셜커머스가 오픈마켓을 눌렀다. 오픈마켓의 월 거래액이 소셜커머스의 2배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모바일에서의 약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큐레이션서비스는 더욱 다양하고 특화되는 추세다. 화장품전문큐레이션 커머스업체는 이미 경쟁이 치열해졌고 신진 디자이너의 개성을 담은 셀러브리티 큐레이션서비스 '바이박스'나 해외직구 상품에 특화된 큐레이션커머스 '미스터쿤' 등도 등장했다. 육아전문큐레이션 '엄마의 지혜'에는 엄마들이 구매한 상품정보와 평가내용이 랭킹으로 반영돼 커뮤니티의 기능까지 갖췄다. 동네 인기 빵집의 빵을 배달해주는 큐레이션커머스 '헤이브레드'의 경우 지난해 월 평균 20%씩 성장을 거듭했다. 이외에 여행과 레저를 전문으로 하는 큐레이션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출판계는 지난 2013년 기준 하루 평균 118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와 같은 책의 홍수 속에서 북 큐레이션 서비스가 뜨고 있다. 아마존은 온라인 도서추천서비스 '셸퍼리'(Shelfari)를 운영하다 지난해 3월 북 큐레이션서비스인 '굿리즈'(Goodreads)를 1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북플'을 비롯해 '북맥', '썸리스트' 등이 등장했다. 사용자가 선택한 관심도서 분야에 대한 추천은 기본이고 이후 사용자의 관심도서를 분석해 도서를 자동으로 추천한다. 사용자들끼리 서평과 관심도서 등을 공유할 수도 있다.

◆아이디어 좋으면 대박 날 수도

정식 큐레이션서비스의 앞선 형태는 '파워 블로거'가 아닐까 싶다. 지난 1990년대 말 인터넷 보급이 본격화된 후 200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 블로그다. 과거에는 전문적인 매체가 상품소개나 분석을 담당했지만 이젠 수많은 독립적인 블로거가 정치·사회·예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특정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전문적인 리뷰 및 비판을 내놓는다. 물론 파워 블로거의 힘이 커지면서 오히려 그 자체가 권력이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나와 꼭 맞는 성향의 블로거를 찾는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큐레이션서비스가 없는 셈이다.

이제는 상품 큐레이션을 넘어 사용자에게 딱 필요한 정보만을 모아주는 '콘텐츠큐레이션'에 주목해야 할 때다. 수많은 매체나 블로그, SNS에서 쏟아지는 콘텐츠 중 나에게 딱 맞는 내용만을 정리해서 시시각각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면 얼마나 편할까. 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주요 정보전달의 핵심기반으로 성장하면서 콘텐츠큐레이션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관련업계의 인수합병이 늘어나는 것을 봐도 사업의 성장성이 크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지난 2010년 밴쿠버 UBC대 학생들은 뉴스큐레이션 앱 'ZITE'를 개발했다. 뉴스를 선별해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아이패드 전용 앱이었다. 이 앱은 출시 첫주에 10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으며 2년 만에 CNN에 2000만달러를 받고 팔았다. 지난해에는 콘텐츠큐레이션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플립보드가 6000만달러에 이를 사들였다. 큐레이션은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소위 대박이 날 수도 있는 사업인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