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세 후계경쟁에서 질주하는 모양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난 8일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 갑작스럽게 해임됐다. 앞서 신씨는 지난 5일 롯데(부회장), 롯데상사(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이사) 등 3개사 임원자리에서 해임된 바 있다.


일본 외신은 일본롯데홀딩스가 지난 8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신씨가 전격 해임됐다고 보도했다. 일본롯데상사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신씨의 후임으로 츠쿠다 다케유키 일본롯데홀딩스·롯데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신씨는 일본 롯데 임원직에서 모두 손을 떼게 됐다. 신씨의 해임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이 담긴 문책성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신씨를 해임할 정도의 파워를 가진 사람이 그의 아버지뿐이라는 해석에서다.


 

/사진=머니위크 DB

◆후계구도 어디로… 신동빈 회장 사실상 승리


신씨가 물러나면서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승계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신씨와 신 회장은 그간 경영권 바통을 잇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물밑 경쟁을 펼쳐왔다. 결국 후계구도에서 장남이 밀린 만큼 한일 롯데의 수장으로  차남인 신 회장이 꼽힐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렇다면 신씨의 해임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그룹 측이 함구하고 있어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그동안의 정황에 비춰 볼 때 어느 정도의 예측은 가능하다.

우선 형제의 지분다툼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1년간 신씨는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이며 신 회장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였다. 롯데제과는 롯데칠성음료와 롯데리아 같은 식음료 계열사를 갖고 있다. 또 롯데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에서 12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신씨가 롯데홀딩스 부회장 당시 롯데제과 지분은 3.96%로 신 회장(5.34%)보다 적지만 고작 1.38%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신씨는 또 한국 롯데제과가 이미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장 공략에 나서며 한국 롯데제과와 경쟁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 신 총괄회장이 동생에게 선제공격을 한 신씨를 못마땅하게 여겨 이번 기회에 해임 인사를 냈다는 설이 나온다.

신씨가 맡았던 일본롯데의 실적 부진이 해임 사유라는 시각도 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롯데 매출(83조 원)은 일본롯데(5조7000억 원)의 약 15배다. 그러나 최근 나타난 실적부진이 해임할 만큼 큰 사항은 아닌 것으로 재계는 해석하고 있다. 결국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사안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일각에선 때를 기다린 신 회장이 명분을 만들어 뒤늦게 아버지와 이사회를 설득해 형에게 반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린다.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아버지 이어 한·일 셔틀경영?

신씨가 롯데홀딩스 부회장 자리에 물러난 것은 재계에서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당초 신씨가 일본롯데의 일부 계열사에서 해임된 당시 재계에선 문책성 인사로 끝날 것으로 예측했다.

롯데홀딩스 부회장만 유지한다면 언제든 그룹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놓치면서 롯데그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멀어졌다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일본롯데의 경영권이 신 회장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씨의 퇴진으로 신 총괄회장에 이어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넘버2'로 떠올라서다. 특히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그대로 역임한 만큼 그는 한-일 롯데그룹 경영에 관여할 명분도 찾게 됐다.

신씨와 신 회장에게 롯데홀딩스는 어떤 곳일까.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각 계열사 등으로 이어져 있다. 이 중 후계구도의 핵심은 롯데그룹 지주사 격인 롯데홀딩스. 비상장사인 이 회사의 오너는 신 총괄회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롯데홀딩스는 일본 36개와 해외 1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롯데 전 계열사의 '넘버 3'인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다.

호텔롯데는 롯데제과와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롯데그룹 42개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즉, 롯데홀딩스가 호텔롯데를 통해 롯데그룹 전체를 직·간접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셈이다.

장녀 신영자 사장이 '캐스팅보트'에서 후계자로?

신동주씨가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신격호 총괄회장의 맏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그동안 후계구도에서 소외돼 동주-동빈 형제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씨가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3곳의 롯데 계열사 임원 자리에서 해임되면서 신 사장이 새로운 후계자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재계에선 신 사장이 신 회장과의 경쟁에 나선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신 씨가 롯데경영에서 물러난 만큼 신 사장이 신 회장을 도와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선 그가 가진 지분을 통해 신 씨와 신 회장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다면 캐스팅보트 역할만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보다는 한단계 올라 그룹 경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다만 복잡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상 단순 지분 비교만으로 경쟁구도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신 사장은 롯데쇼핑 지분 0.74%를 보유 중이다. 신 사장이 총괄하는 롯데장학재단도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의 지분을 각각 8.69%, 6.28% 보유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