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부는 ‘핀테크’(Fin-Tech) 바람이 뜨겁다. 정부도 올해 상반기까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등 핀테크 활성화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면서 금융과 IT의 융합속도를 높이는 분위기다.

핀테크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이 허용되면 약 10년 후 시장규모가 47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인터넷전문은행은 수익성 악화로 고심하는 은행권에서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금산분리규제 완화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금산분리규제 완화에 대한 정치권과 학계 등의 의견이 엇갈려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설립 준비태세 갖춘 은행권

인터넷전문은행은 일반은행과 달리 핵심 영업망이 온라인 지점이고 365일 24시간 영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금리 및 수수료 우대가 가능하고 소매금융에 특화할 수도 있다. 금융위원회과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등이 지난 1월8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간 것도 이 같은 비전을 내다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강한 의지를 보이자 시중은행들도 서둘러 준비태세를 갖추는 분위기다. 특히 은행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통해 수익구조를 다각화하고 채널비용 절감은 물론 창구영업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신한금융그룹은 핀테크시장의 활성화 방안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가안을 만들었다. 신한금융은 이를 위해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인터넷전문은행 형태로 운영을 시작한 BNP파리바의 해외 인터넷뱅킹시스템인 ‘헬로뱅크’를 벤치마킹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하나금융도 외환은행의 캐나다 법인을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형태의 뱅킹시스템인 ‘원큐뱅킹’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기반의 P2P(비대면 채널을 통한 개인 간 금융직거래)가 가능하다. 온라인에서 원격으로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형태다.

NH농협은행은 ‘스마트금융센터’를 구축하는 중이다. 스마트금융센터는 인터넷뱅킹과 달리 고객별 특성에 따라 자체적으로 선별한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제시하고 지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온라인상담시스템을 갖춘다.

IBK기업은행은 오는 6월 인터넷전문은행 수준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뱅킹 통합플랫폼인 ‘IBK 원(ONE)뱅크’를 선보일 예정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을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다만 현재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밖에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전초 과정인 스마트금융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핀테크'와 관련해 머리 맞댄 금융권, 기업 관계자들.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인터넷은행, 신성장동력 될까

시중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준비태세에 들어간 것은 저성장과 저금리시대에 인터넷전문은행이 은행권의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또한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존 은행업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은행들은 자구책 마련을 위한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최진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단순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에 큰 위협이 될 수 없다”며 “중소기업의 신용리스크는 정량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관계형 금융을 통해 오랜 기간의 리스크 관리 노하우가 축적돼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 특화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전국은행연합회도 같은 맥락의 전망을 내놨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성공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막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다만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되려면 금산분리규제 완화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기존 제도나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 같은 변화가 생기면 은행 효율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지점의 역할 정립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원은행들의 이해관계와 정책당국 중간에서 양방향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게 은행연합회의 역할”이라며 “지금까지는 한쪽 방향이었지만 양방향의 흐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산분리 완화, 의견 엇갈려

이 같은 상황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금산분리규제다. 금융당국은 산업자본이 금융회사 지분참여를 제한하는 금산분리정책이 국내 핀테크산업 육성에 역행한다며 규제완화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금산분리규제 완화는 찬반 의견이 크게 엇갈려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금산분리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동양사태가 보여 준 도덕적 해이 문제에서 접근한다. 동양그룹이 금융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부실계열사의 기업어음(CP)을 무리하게 판매해 발생한 금융사고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 동양사태 이후 대기업이 금융계열사를 자금조달 창구로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해 금산분리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대기업에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사금고화 등의 문제는 반드시 재벌이나 대기업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다. 소규모 IT회사 등에서도 비슷한 문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금융권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만을 위해 금산분리규제 완화를 추진하기엔 부작용과 폐해가 우려된다”며 “대기업을 배제하더라도 다른 관련 기업들이 이를 자금조달 창구로 악용할 가능성을 모두 차단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금산분리규제 완화를 찬성하는 이들도 있다. 금산분리규제라는 장벽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금융권에 진입조차 못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핀테크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디지털시대에 맞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다만 대기업이 은행을 지배해 사금고화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달린다.

이처럼 금산분리규제 완화에 대한 이견이 충돌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15일 “핀테크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인데 늦었다”며 “늦은 만큼 더 열을 내서 핀테크기업의 진입을 막거나 새로운 IT기술 적용을 막는 규제가 없는지 살펴 디지털시대에 맞도록 체계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갖가지 해석을 낳았다.

한편 인터넷전문은행 TF 관계자는 “금산분리규제 완화는 TF의 핵심 논의사항”이라며 “아직은 해외의 금산분리규제 현황과 인터넷전문은행 제도를 연구하고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