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외환은행 통합에 대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발언은 건조했다. 임 위원장의 태도는 과거 농협금융지주 회장 시절 ‘구조조정의 칼’을 휘둘렀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시계추를 지난해로 돌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아닌 임종룡 농협금융 회장을 떠올려보았다. 지난해 6월 임 회장은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등 우리투자증권 패키지를 인수하면서 농협금융의 몸집을 불렸다. 그가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아비바생명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자회사로 들어온 우리투자증권과는 노사상생협약을 맺은 반면 우리아비바생명 직원들에게는 희망퇴직이라는 명목으로 구조조정 칼날을 들이댔다. 희망퇴직 대상은 입사 1년차 이상 직원으로 사실상 전 직원에 해당됐다. 1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임 전 회장은 희망퇴직으로 우리아비바생명을 흔들어 가볍게 만든 뒤 DGB금융지주에 되팔았다. 불과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임 회장이 그렇게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을 줄 미처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모든 상황이 임 전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결국엔 버리고 싶던 것을 버리고 원했던 것만 깔끔하게 얻었다. 온화함과 결단력을 겸비한 외유내강형 리더라는 이미지도 함께 얻었다.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그가 금융위원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농협금융 회장 시절의 후광이 컸다. 어찌 보면 임 위원장은 우리아비바생명 직원들의 상처를 안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금융위원장 자리에 오르면서 그는 몸을 사렸다. 특히 지난 10일 금융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밝힌 하나·외환은행 합병에 대한 입장은 노사 모두를 실망시켰다. 양쪽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원론적인 답변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간 신 전 위원장의 갈팡질팡한 태도에 외환은행은 소중한 시간을 잃었고 이는 하나금융 전체 힘을 갉아먹었다. 많은 금융위원장들이 이런 식으로 시류에 휘둘려 어떤 문제도 매듭짓지 못하고 떠났다. 금융위원장은 말 그대로 금융당국의 수장이다. 권위를 자랑하는 금융감독원도 그의 감독을 받는다. 그래서 금융권의 관심은 임 위원장 입에 쏠릴 수밖에 없다.
임 위원장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돌파구를 마련할 것인지, 제대로 상생할 것인지 결단하고 선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추진력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임 위원장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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