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볼트. /사진제공=한국지엠
◆전기오토바이·전기차… EV·PHEV 경계에 선 차차차
이달 초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 28회 세계전기차 학술대회(EVS28)에서 가장 주목받은 차량은 르노의 ‘트위지’와 GM의 ‘볼트’. 이미 유럽에 출시돼 많은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내에는 관련법이 존재하지 않아 출시 시점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트위지의 경우 그동안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던 1~2인승 전기차로 이륜차와 사륜차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일단 4개의 바퀴가 있지만 좌석은 1열이고 최대 2명이 탑승할 수 있다. 디자인도 이륜차와 사륜차의 경계에 있다.
사륜차의 형태로 스티어링휠까지 갖춘 트위지는 최고 속도 80㎞/h다. 한번 충전으로 100㎞까지 갈 수 있다. 차체가 작아 승용차 1대가 주차하는 공간에 트위지 3대를 세울 수 있다. 전기차지만 별도의 충전시설 없이 가정용 220V 콘센트로 바로 충전 가능한 점도 획기적이다.
업계에서는 차체만 작을 뿐 엄연히 도심에 최적화된 초단거리용 차량이라고 평가한다. 현재 유럽에서는 이륜차와 사륜차 사이의 ‘L7e’라는 등급을 부여받았지만 국내에는 이와 같은 별도의 등급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트위지와는 다르지만 GM의 ‘쉐보레 볼트’도 국내법상 애매한 위치에 있다. 볼트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가솔린 내연기관을 탑재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에 속하지만 기존의 PHEV와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GM 측은 볼트를 주행거리연장전기차(EREV)라고 소개했는데 보통의 PHEV가 내연기관을 동력으로 전환하는 반면 볼트의 엔진은 전기를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EREV는 휘발유 ‘발전기’를 장착한 전기차(EV)라고 보면 된다. 일반적인 PHEV와 비교했을 때 차이는 엔진에 있다. 엔진이 동력성능을 직접 전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구조가 간단하고 가볍다. 이를 통해 전기차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볼트의 경우 완전충전 시 전기모터만으로 80㎞ 수준을 주행할 수 있다. 교통안전공단 조사 결과 국내 자동차 운전자의 일 평균 주행거리가 33㎞로 나타난 것을 고려하면 볼트는 일반 출퇴근 용도로 운행할 때 내연기관을 이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를 근거로 GM은 볼트가 국내법상 전기차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지엠 측은 “볼트는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시장에서 사용자가 가질 수 있는 ‘방전의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자동차”라며 “순수한 EV와 비등한 전기 주행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의 범주에 넣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르노삼성 트위지. /사진제공=르노삼성
토요타 i-ROAD. /사진제공=토요타
◆‘사륜 전기차’에 편중된 보조금… “새 기준 필요”
이렇게 국내법상 규정하기 애매한 자동차들을 두고 각 제조사가 ‘사륜 전기차’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보조금’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민간공모사업을 통해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한다.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다. 지자체별로 진행하는 전기차 민간보급사업과 병행하면 최대 20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전기차는 아직 가격이 비싸 이러한 정부의 보조금이 아니면 판매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위지의 경우 사륜차가 되느냐, 이륜차가 되느냐에 따라 보조금 차이는 엄청나다. 올해 서울시 전기차 민간 보급사업 내용을 살펴 보면 사륜전기차에 대해서는 1500만원의 국비에 최대 500만원의 지자체 지원이 추가된다. 하지만 이륜전기차는 국비 125만원, 지자체 125만원이 고작이다.
볼트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친환경차 지원 기준은 EV와 HEV로만 나뉘어 있어 기존 하이브리드에 비해 배기가스 배출량이 확연히 적은 PHEV의 경우 100만원 수준의 하이브리드 지원금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최근 PHEV의 보조금 규정을 새로 제정하겠다고 했으나 이 경우 볼트와 같은 EREV차량의 보조금이 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애매한 기준의 차량들을 모두 4륜 전기차로 인정해 현재와 같은 보조금을 주는 것도 무리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전문가들은 “자동차 분류와 보조금 제도의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이미 초소형차에 대한 기준을 마련한 상태”라며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1~2인승 자동차가 나올텐데 하루빨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우 이륜과 사륜 자동차 사이의 전기차에 대해 L1e부터 L7e까지 세부 등급을 마련했다. 모터를 부착한 자전거부터 전기 바이크, 3륜차, 4륜차 등 세부적으로 등급을 나눠 다양한 친환경 이동수단을 장려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지난 2012년 이미 초소형 차 도입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또한 볼트를 EV로 인정하느냐 등의 문제에 대해 김 교수는 “HEV와 PHEV로 나눠 일률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보다는 연비와 배기가스 배출량, 주행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세부기준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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