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XX 정신 나갔네”
“화끈하게 ㄱㄱ(gogo)”“위 뚫리고 사망잼(죽을 것 같다)”
한 인터넷 개인방송의 BJ(Broadcasting Jockey)가 컵라면에 매운 소스 수십개를 부어 먹는다. 순식간에 채팅창은 온갖 욕설과 폭언으로 도배됐다.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BJ에게 경쟁적으로 별풍선을 쏜다. BJ는 구토직전의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별풍선을 선물한 시청자에 대한 나름의 보답이다.
이런 광경은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일부 BJ는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노출과 선정적인 언어를 선택하고 스스로를 가학한다. 지나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켜도 크게 손해볼 게 없다. 논란에 휩싸일수록 해당 BJ는 유명해지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비난과 환호를 동시에 받으며 별풍선도 따라온다.
1인 콘텐츠시대가 성큼 찾아왔다. 1인 미디어 플랫폼은 급속도로 대중들과 가까워지고 있다. 다양한 성향을 가진 시청자들의 방송 프로그램 소비 욕구를 방송사가 아닌 1인 미디어가 채워주는 것이다. 아프리카TV 등의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생산이 수월해지면서 1인 콘텐츠의 영향력은 기존 콘텐츠 소비구조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해졌다.
대중의 관심이 커지는 만큼 부작용도 만만찮다. 개인이 가지는 권한의 크기는 더욱 커지는 데 반해 책임의식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인터넷방송은 일부 BJ의 인기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유해방송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를 감독해야 할 정부당국은 별다른 해결책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유의 딜레마, ‘선정·폭력적’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BJ 역시 마찬가지다. 온라인화폐 개념의 별풍선만 받는다면 못할 게 없다. 신체 노출부터 막말, 자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위가 이곳에서 방영된다. 요구르트 90개를 한번에 마시고 매운 소스 30개를 먹는다. 간장을 온 몸에 뿌리고 고추장으로 세수를 하며 식용유로 샤워를 한다.
시청자 역시 익명성을 방패삼아 채팅창에 성적 비하, 욕설 등을 올린다. BJ에게 ‘더한 것’을 재촉하고 “미친놈”이라고 욕하면서 별풍선을 선물한다. 별풍선이 터지면 BJ는 격한 리액션을 보여준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한번 더 가학적 행위를 보여주는 식이다.
1인 미디어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TV에서는 20만명 이상의 BJ가 다양한 종류의 방송을 한다. 저마다 콘셉트가 뚜렷해야 살아남는다. 기존 지상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엽기적인 소재가 눈에 띄는 이유다.
자극적이고 엽기적일수록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시청자가 많이 몰릴수록 이윤을 얻는다. 아프리카TV의 수익구조는 ‘별풍선’이라는 인터넷캐시를 현금으로 환전하는 방식이다. 별풍선 구입가는 1개당 110원(VAT포함)이며 BJ는 70원 정도를 가져간다. ‘별풍선 거지’, ‘별창녀’, ‘별창남’이란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꼭 수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부작용을 동반한다. 인터넷 개인방송이 사람들의 개인적인 욕구와 스트레스 등이 분출되는 통로로 작용하면서 일부 BJ는 음란물과 동물학대 장면 등을 가감없이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채팅창은 욕설이 난무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인방송 사이트의 선정성을 규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규제의 사각지대를 틈타 인터넷 실시간 개인방송사이트에서는 무책임한 내용이 여과 없이 방영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수많은 개인방송을 일일이 관리하고 제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방송통신심의위 관계자는 “인터넷 실시간방송은 규제하기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며 “정보가 살아있다면 직접 규제할 수 있지만 인터넷방송은 끝나면 사라지는 휘발성 방송인 데다 24시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막장 콘텐츠’에 대한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관련 서비스제공업체 측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 처분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아프리카TV 측은 “50명의 요원이 365일 24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한다”며 “단순히 경고 또는 제재에 그치지 않고 전화나 상담 등을 통해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BJ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시간 신고기능을 도입해 유해 콘텐츠에 대한 검색어 차단도 병행한다”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방송규제항목도 지속적으로 다듬고 있다”고 강조했다.
◆“법 개입 부작용 유발” vs “강력한 규제 시급”
전문가 사이에서 1인 미디어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씩 엇갈린다. 이창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걸린 만큼 법적인 개입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가 성매매 특별법을 강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성매매를 더욱 음지로 퍼지게 한 것과 같은 원리다. 이 교수는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규제보다는 스스로의 자정작용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규제 사각지대에서 패륜과 막장을 넘나드는 1인 방송에 대해 강력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한 연구원은 “현재 시청자가 보내주는 아이템으로 수익을 얻는 구조라서 BJ가 관심을 끌기 위해 자꾸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계속 묵인하고 허용한다면 처음에는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관련 미디어업체 모두 공멸할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서비스제공업체 측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 처분수위를 높이고 제도권의 법률적인 통제 아래로 들어와야 한다”며 “콘텐츠산업의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진단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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