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우리 증시는 황소처럼 달렸다. 연초 1800선에 머물던 코스피지수는 2200선 턱밑까지 치솟으며 투자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글로벌 유동성 장세는 우리 증시를 끊임없이 위로 들어 올려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달려 힘이 빠진 것일까. 코스피지수는 지난 4월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불거지고 잘나가던 중국증시가 대폭락을 경험하며 국내증시도 출렁거리기 시작한 것. 세찬 외부의 풍파와 더불어 국내에서는 메르스 영향, 수출기업들의 실적부진, 조선업의 대규모 손실 등 굵직한 이슈가 터지며 증시를 짓눌렀다. 대내외 악재에 속절없이 가라앉고 있는 국내증시는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외국인이 쥐락펴락한 코스피
연초부터 지난 4월까지 코스피지수는 15%가량 상승했다. 국내증시의 주된 상승동력은 글로벌 유동성이었다. 유럽의 양적완화(QE)와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시중에 엄청난 자금을 풀었고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상승을 견인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오는 2016년 9월까지 매달 600억유로씩 총 1조1400억유로(약 1481조원)를 시장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는 지난 2012년 일본 총선에서 승리하며 공약으로 내세운 무제한 금융완화를 실행하면서 엔화가치의 절하를 이끌었다.


이처럼 세계 금융시장에 돈이 풀리자 위험자산 선호심리가 커졌고 여타 신흥국 대비 상대적으로 저평가 돼있던 국내증시에 자금이 몰렸다. 지난 4월24일 코스피지수는 2189.54를 기록하며 4년래 최고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때만 해도 시장에서는 지수가 2200선을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시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며 위축되기 시작했다. 중국증시가 변동성을 확대하면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감이 커진 점도 지수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순매수세를 기록하던 외국인이 빠져나가며 국내증시도 하락 반전 추세에 접어들었다. 연초부터 지난 4월까지 7조8000억원을 사들였던 외국인은 지수가 4년래 최고가를 경신했던 지난 4월27일부터 지난 10일까지 1조3000억원을 팔아치웠다.

김정현 IBK투자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미국의 9월 기준금리 인상과 중국증시 변동성 확대 및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며 “또한 조선업종의 어닝 쇼크와 함께 자동차, 철강 등 대형주의 이익 모멘텀이 부진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코스피지수는 지난 11일 심리적 지지선인 2000선을 내주고 말았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 현대차 등 시가총액 상위 수출주와 화학, 정유 등 경기민감주가 하락을 이끈 모양새다. 다만 이들 틈에서도 경기방어주 성격의 음식료 업종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음식료품지수는 지난 11일 6404.76을 기록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시간 필요한 코스피… 선별적 접근 ‘유효’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내외 악재에 코스피지수가 당분간 박스권 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을 주도하던 수출위주의 대기업이 위축되며 특별한 상승 모멘텀을 찾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김효진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7개월 연속 수출 부진이 지속되고 더딘 내수 회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밑돌기도 했지만 주가 수준은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이라며 “8월 둘째주 어닝시즌 막바지로 서머랠리 가능성은 약화됐지만 지난 1년 동안 국내 기준금리는 4차례에 걸쳐 1%를 인하했고 이제 그 정책효과를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달러화 강세 흐름을 같이 할 수 있는, 원·달러 환율 상승에 의한 수출 회복 기대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 및 종목의 단기적인 성과가 양호할 것”이라며 “최근 과매도세를 보인 IT, 자동차, 정유, 화학업종 공략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낙폭과대를 보인 대형주 중에서도 선별적으로 외국인의 매수세가 유입되는 종목은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시장이 우려하는 기업들의 실적도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을 제외하면 오히려 시장 컨센서스를 3%이상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성진 현대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지난 2013년 이후 삼성, 현대, GS 등 전통적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성과가 저조했다”며 “반면 콘텐츠, 소프트웨어, 음식료 등 비제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CJ그룹주들은 돋보이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현재 대형주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9배에 불과하고 코스피지수대가 확정 PBR 1~1.1배 수준으로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가 제한적이나 상승 반전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셀트리온이 2분기 추정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발표한 이후 고밸류 종목들의 투자심리가 안정세를 되찾고 있음을 감안할 때 다시 성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에 따라 국내증시도 움직일 것으로 예상돼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위원들 사이에서도 금리인상에 대한 의견이 9월과 12월로 엇갈리고 있다.

변준호 HMC투자증권 스트래티지스트는 “Fed 총재들의 매파적인 발언이 신흥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야 한다”며 “앞으로 브라질, 말레이시아, 터키, 러시아 등 주요 신흥국들의 신용등급 추이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