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에 떠도는 ‘카더라’ 통신에 우왕좌왕하다 겨우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한다 → 독수리 타법으로 회원 가입을 한 뒤 주문자 정보를 입력하고 결제를 누른다 → 플러그인을 설치하고 액티브X도 설치한다 → 공인인증과 인증 앱도 설치완료 → 카드번호를 입력하고 CVC번호를 확인한다 → 보안카드를 찾아 번호를 입력한 뒤 결제 버튼을 클릭한다 → ……로딩중…… → 한참을 기다렸더니 ‘결제실패’ 팝업창이 뜬다 →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자 정보부터 다시 입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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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좀 해봤다는 달인반. 지름신(가명)씨의 쇼핑법>
아이 용품부터 생활용품까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주문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 필요한 상품을 선택해 결제하기를 누른다 → 기존에 등록해뒀던 간편결제시스템 ‘OO페이’를 클릭한다 → 등록된 카드 중 결제할 카드를 터치하고 비밀번호를 누른다 → 3초 후 결제완료
달라도 너무 다른 왕초짜씨와 지름신씨의 쇼핑법.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다. 간편결제는 비밀번호나 패턴을 입력하는 것만으로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 불과 1년 전만 해도 온라인상에서 대금결제 시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절차들을 최소화해 시간을 단축했다. 이른바 ‘3초 결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 뜨겁게 달아오르는 ‘OO페이’ 시장
과거에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결제와 관련한 서비스는 모두 신용카드사와 은행의 몫이었다. 이들이 주도해온 결제 패러다임에 변화가 감지된 것은 ‘핀테크’(Fintech·금융과 IT를 결합한 서비스)라는 생소한 용어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할 무렵.
정부는 핀테크 활성화의 일환으로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등 각종 규제를 폐지했다. 또 카드정보를 저장해 결제를 대행해주는 PG사의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금융업계뿐만 아니라 IT, 유통, 제조사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도 결제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게 했다.
‘페이’라는 이름을 앞뒤로 단 수많은 간편결제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10월 패턴으로 결제가 가능한 ‘페이나우’를 선보였고 약 한달 뒤 다음카카오도 ‘카카오페이’를 출시했다.
카카오페이는 국민 모바일메신저인 카카오톡에서 커피, 쿠폰 등을 선물할 때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을 취했다. 현재 음식배달서비스인 배달의민족, 영화관, 학원 등 200여개 가맹점과 제휴를 맺은 상태다.
온라인쇼핑 중심의 오픈마켓, 소셜커머스업체들도 자체 결제서비스를 내놓고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소셜커머스업체인 티몬과 위메프는 ‘티몬페이’와 ‘케이페이’를 선보였고 G마켓과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도 SMS인증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스마일페이’를 출시했다.
게임업체로 알려진 NHN엔터테인먼트는 최근 간편결제서비스 ‘페이코’를 내놨다. 신용카드를 비롯해 체크카드, 휴대폰결제, 바로이체, 무통장입금, 쿠폰, 포인트 사용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상점에서도 QR코드를 읽어 결제할 수 있는 것이 특징. 페이코는 현재 온·오프라인 가맹점 수 20만개를 확보하면서 제휴업체 수 1위에 올랐다.
오프라인 매장을 주력으로 움직이던 백화점업계에서도 간편결제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23일 가장 먼저 SSG페이를 선보이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SSG페이는 국내 최초로 선불식 결제와 후불식 결제가 동시에 가능한 결제서비스. 신세계 전계열사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신세계 측은 2100만명의 신세계포인트 회원과 유통채널을 기반으로 간편결제시장에 조기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롯데그룹도 롯데백화점·롯데마트 등 주요 계열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엘페이’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질세라 현대백화점도 간편결제와 관련된 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SK플래닛의 ‘시럽페이’, 네이버의 ‘네이버페이’, 삼성전자의 ‘삼성페이’ 등도 이미 출시했거나 준비 중이다. 네이버페이의 제휴업체는 5만6000여개로 간편결제업체 중 온라인 가맹점 수가 가장 많다.
◆ 1년 새 2배…몸집 불리는 모바일결제시장
이처럼 기업들이 업종을 막론하고 너도나도 간편결제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국내 모바일결제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새로운 먹거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국내 모바일결제 규모는 5조7200억원 수준. 지난해 같은 기간 3조1930억원보다 2배 가까이 확대됐다. 쇼핑 거래액도 증가세다. 지난 6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동기대비 26.6% 증가한 4조443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2년 이후 가장 가파른 성장세인 동시에 월간 기준 역대최대치다. 같은 기간 모바일쇼핑 거래액 역시 1조978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79.8% 증가했다.
기존 계열사와의 시너지도 노려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주 사용처에서 간편결제를 이용한다면 충성고객을 확보하고 매출이 함께 늘 것이라는 계산이다. 예컨대 SSG페이는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에서, 시럽페이는 11번가에서, 스마일페이는 G마켓과 옥션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주 사용처 외에서는 해당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제휴업체가 얼마나 많은지가 향후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간편해지는 만큼 커지는 보안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가 ‘3초 결제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IT업계 관계자는 “간편결제시장의 춘추전국시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하반기에는 사용처가 가장 많고 보안이 강화된 서비스 1~2개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갑 없이도 쇼핑할 수 있는 시대. 일단 편리한 결제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핀테크가 몰고 올 변화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어쩌면 핀테크는 지금의 금융관행을 뿌리째 바꿀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변화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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