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해양플랜트 부실로 5조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조선 빅3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실적 쇼크로 인한 여파가 노사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형국이다.

문제는 역시 인력감축과 임금협상이다. 사측은 “회사의 존폐가 걸린 상황에서 노동자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노조 측은 “경영진의 잘못으로 벌어진 적자를 왜 노동자가 책임져야 하냐”며 맞선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전경.

◆사측 ‘자구안’ 발표에 노조 “인력감축 없다더니”
첨예한 갈등이 예고되고 있는 곳은 역시 2분기 조선 3사중 가장 큰 3조원대 영업손실을 드러낸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은 지난 11일 자구안 세부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전날 있었던 경영설명회에서 발표한 자구안에 대한 후속조치다. 그간 공공연히 밝혔던 비핵심자산 매각, 자회사 구조조정, 조직슬림화 등은 사실상 놀랄 부분이 없다. 문제는 인적 구조조정이다.

지난 3월 고재호 전 사장의 임기가 끝난 후 산업은행이 당시 정성립 STX조선 사장을 대우조선 사장직에 선임했을 때 노조의 반발은 거셌다. 산은 출신의 정 사장이 취임하면 산은의 요구에 따라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정 사장은 당시 이러한 노조의 반발에 ‘스킨십’으로 다가가 노조의 신뢰를 얻었다. 이 과정에서 “인력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구두약속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의 이러한 입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실적쇼크가 발발한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업계가 조선업계 역사상 최대규모인 단일분기 3조원대의 적자에도 인력감축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다.


하지만 지난 11일 나온 대우조선의 자구안 세부계획에는 결국 인적 구조조정안이 담겼다. 물론 책임에 따라 물러나는 인원은 계약직인 임원과 부장 이상의 고위직에 한정된다. 인사고과 등 객관적인 자료를 기준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은 임원 이하로 수석연구위원, 전문연구위원, 부장 순의 직급체계를 갖고 있다.

대우조선 측은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 등의 방법은 정해진 바 없으며 과장급 이하 직원들과 생산직에 대한 인력감축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 사장이 산업은행이 나서서 구조조정에 돌입하기 전에 자구적인 노력을 보여주기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시각이 주도적이지만 인적 구조조정 불가 방침에 변화가 생긴 터라 노조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2분기 1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삼성중공업도 지난 13일 박대영 사장을 포함한 임원 110여명 전원이 거제조선소에 모여 워크숍을 가졌다. 박 사장은 보고된 내용을 다듬어 빠르면 이달 안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대우조선이 앞서 인적구조조정 단행을 예고한 상황이라 삼성중공업도 자구안에 인력감축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삼성중공업보다 앞선 지난해 이미 3조2000억원대의 해양플랜트 부실을 털어냈다. 그 뒤 올해까지 대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권오갑 사장은 지난 6월에야 “더 이상의 인적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대중공업도 2분기 실적 발표 직후 임원진을 대거 교체했다. 현대중공업은 세대교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실적부진에 따른 문책인사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분기 1710억원대 적자를 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임단협에서도 양보없는 노사
구조조정을 두고 노사간 갈등이 예견되는 가운데 임금협상에서도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구조조정 반대투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과 거제 등지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8월 들어 휴가와 대체휴일(14일) 등으로 잠시 중단됐던 임단협은 지난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재개됐지만 노사 입장차가 여전한 데다 그 사이 수면 위로 올라온 구조조정 이슈까지 겹쳐져 난항이 예상된다.

핵심 쟁점은 역시 기본급이다. 조선 3사 모두 어려운 시기임을 감안해 ‘기본급 동결’을 호소하고 있지만 3사 노조 측도 일제히 ‘기본급 12만원대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양플랜트 손실을 미리 털어내고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끝마친 현대중공업도 임단협에 있어서는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노조는 지난달 23일 이미 파업을 가결한 상태에서 회사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현재 기본급 12만7560원 인상 및 직무환경수당 100% 상향조정, 고정성과급 250%+α 등을 요구 중이다. 반면 사측은 기본급 동결과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 안전 목표달성 격려금 100만원, 상여금 지급시기 변경 등을 제시했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측도 지난달까지 실시된 임단협에서 회사 제안을 모두 거부했다. 노동자협의회측은 기본급 12만4900원 인상과 임금삭감 없는 정년연장, 생산성 격려금 고정급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을 두고 의견대립이 이어지자 협상결렬을 선언한 상태다. 사측이 임금동결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임금 12만5000원 인상, 사내복지기금 50억원 출연, 하계휴가비 150만원 인상, 통상임금 소급분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조 측이 임금협상에서 한발 양보하고 구조조정을 피하는 방법으로 일단락되지 않겠냐는 희망섞인 전망도 나오지만, 현재 사태를 바라보는 사측과 노측의 시각차가 커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존폐위기에 놓였다고까지 평가받는 회사의 상황에 대해 노동자들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파업으로까지 치닫게 되면 조선업은 정말로 돌이킬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노동계 관계자는 “이번 해양플랜트와 관련한 적자는 경영진의 책임인 것이 분명함에도 사측은 근로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언론을 통해 국가경제 위기 등의 프레임으로 몰고가려 한다”고 상반된 시각을 보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