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사업자에겐 ‘족쇄’가, 경쟁사에겐 ‘견제장치’가, 소비자에겐 ‘물음표(?)’가 된 통신요금 인가제가 25년 만에 폐지될 확률이 높아졌다. 정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1991년 도입한 통신요금 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사전적 규제를 풀어 무한경쟁체제를 강화하고 가계통신비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것. 이론대로라면 폐지 시 인가를 받는 데 소요된 시간과 비용을 줄여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정부의 개정안에 반발하는 이들은 ‘의도적 장치’가 없는 한 통신비 인가제 폐지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란 지적을 서슴지 않는다. 인가제 폐지안은 가계살림에 플러스가 될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조성봉 기자
◆인가제→신고제, 11월 분수령
정부가 지난달 20일 의결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간통신사업자가 이용요금 등의 이용약관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의 ‘인가’를 받도록 하던 것(인가제)을 다른 기간통신사업자와 같이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신고하는 것(신고제)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시장점유율이 높은 이동통신사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신규요금제를 출시할 때(요금인하 예외-신고제) 미래부의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가능토록 제도를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무선전화시장에서는 SK텔레콤, 유선전화시장에서는 KT가 요금인상 혹은 신규요금제 출시 때 정부의 허가를 받아왔다.
인가제는 지난 1991년 후발사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정부는 인가제가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할뿐더러 최근 결합상품이 증가한 통신시장에서 1위사업자가 시장지배력을 남용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판단에 따라 인가제 폐지를 결정했다. 정부는 “통신사업의 효율적인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공정한 경쟁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절차 및 기준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개정 이유를 밝혔다.
단, 정부는 자유경쟁에 앞서 선제조건을 달았다. 통신서비스 요금이나 이용조건이 이용자의 이익이나 공정한 경쟁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신고를 반려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더해 공정한 경쟁을 위해 통신시장에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경쟁상황평가'의 주기를 기존 1년 1회에서 수시로 바꾸기로 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만들어지거나 제도 보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가제 폐지 여부는 이달 국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상임위의 소수 의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국회 밖에서도 제도 존폐에 대한 찬반 여론이 거세다.
◆“경쟁보다 담합, 문제 반복될 것”
신고제에 반기를 드는 이들은 국내 통신시장이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존재하는 ‘과점 시장’인 만큼 자유경쟁보다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든 인가제에서도 통신요금이 지속적으로 오른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관계자는 “지금까지 1위사업자가 가격을 인상해 인가받으면 후발사업자들이 따라가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인가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1위사업자의 부당한 요금인상과 이에 발맞춘 후발사업자의 요금인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요금인가제 폐지가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것과 관계가 없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경실련 관계자는 “두 사안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면서 “가계통신비 부담의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행정실패에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사전에 규제가 가능한 요금인가제를 운용하면서도 1위사업자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탓에 통신요금 인상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
경실련은 보완장치가 없는 인가제 폐지 정책 외에도 지난해 10월 정부가 지원금 불평등을 막고자 도입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등 정부의 현 통신정책을 보면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업자를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1위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을 키울 것이란 우려도 반대이유 중 하나다. 또다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관계자는 “SK텔레콤이 다양한 결합상품으로 통신사업의 다른 분야까지 침투해 점유율을 강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신비 경감, 기본료 폐지가 먼저"
인가제 폐지가 큰 변화(가격경쟁)를 불러올 것이란 기대도 적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요금인가제를 폐지한다 하더라도 현 체제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가받는 현 체제에서도 요금을 내릴 경우에는 ‘신고’만으로도 가능했다. 신고제로 바뀐 뒤에 요금인하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통사의 가입자당 평균매출(ARPU) 수준이 비슷한 상황에서 요금을 갖고 마케팅경쟁을 벌이는 것은 효과보다는 위험이 커진 상황”이라며 “인가제 폐지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가 요금인가제 폐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폐지 시에는 반드시 ‘제도적 보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위사업자가 이끄는 현재의 통신시장을 고려했을 때 ▲이동통신사의 통신요금 담합 규제와 ▲1위사업자의 가격 남용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진정한 통신요금 인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가제 폐지보다는 1만1000원인 기본요금제의 폐지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더 큰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시민단체가 요금인가제 폐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폐지 시에는 반드시 ‘제도적 보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위사업자가 이끄는 현재의 통신시장을 고려했을 때 ▲이동통신사의 통신요금 담합 규제와 ▲1위사업자의 가격 남용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진정한 통신요금 인하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가제 폐지보다는 1만1000원인 기본요금제의 폐지가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에 더 큰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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