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사계절 푸르다. 전국이 울긋불긋한 가을을 자랑할 때 슬며시 꼬리를 내리는 곳이 제주다. 산에 단풍과 낙엽이 있긴 하지만 ‘제주=절경’이라는 명성에 비해 미미한 것이다.

그렇다면 11월의 제주는 어떤일까. 억새와 귤이 있는 제주로 떠나보자.

따라비오름

◆ 가을 여왕, 따라비오름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능선 때문일까. 흔히 따라비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300개가 넘는 오름 왕국에서 여왕 자리를 꽤 찼으니 그 아름다움이 어떨지 기대가 크다. 특히 여왕의 자태가 가장 빛나는 계절은 가을이다. 이곳에서 억새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따라비오름은 ‘쫄븐갑마장길’을 따라 가면 입구에 닿는다. ‘갑마’(甲馬)는 최고의 말을 뜻하는 것으로 한양 왕실에 진상하는 말을 키우던 곳이다. 그러니까 따라비오름 가는 길에는 왕실 인증, 마방지가 있다.
한 15분 정도 오르면 커다란 S자, 혹은 말발굽 모양의 능선이 펼쳐진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사실 오름에서 어디가 꼭대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입구에서 올라와 양쪽으로 보이는 두개의 봉우리가 전망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만큼은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비오름은 3개의 굼부리, 즉 분화구 세개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따라비’라는 이름의 이야기를 잠깐 해야겠다. 우선 고구려어 ‘다라비’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다라’는 높다는 뜻이고 여기에 제주의 산 이름에 쓰는 ‘비’가 붙은 것이다. 다른 설로는 땅하래비 즉, 땅할아버지에서 왔다고 한다. 그런데 오름의 ‘여왕’에게 땅할아버지라니? 어쨌든 두 이름 모두 무언가를 아우른다는 속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오름이 몇개의 작은 오름 위에 위치하며 다른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오름들을 품고 있으니 엄청 클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높이 342m, 둘레 2633m로 넉넉히 1시간30분이면 오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따라비오름 전망

어쨌든 오르는 수고에 비해 얻는 것이 많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넓은 조망이 그렇다. 북동쪽으로는 못지오름, 북서쪽으로는 큰사슴이오름과 족은사슴이오름, 남동쪽으로는 설오름, 남서쪽에는 번널오름과 병곶오름을 볼 수 있다. 특히 큰사슴이오름 사이의 평지에는 수십개의 하얀 풍차가 멋진 그림을 만든다. 한라산과 제주 바다는 기본이다. 멀리 향했던 눈을 따라비오름으로 돌리면 은빛 억새가 뒤덮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흔들리는 억새가 햇빛을 받아 색을 바꾸고 하늘빛 아래 베이지색 물결이 풍요롭다. 비탈에는 소나무와 삼나무가 여전히 푸르고 잠시 눈감으면 억새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자연의 음악을 선사한다.
◆ 지금부터 봄까지 온통 억새, 새별오름


새별오름은 찾기가 쉽다. 다른 오름들은 입구를 찾아야 하거나 길을 잘못 드는 경우가 많은 반면 새별오름은 평화로를 달리다보면 떡 하니 커다란 게시판이 보인다. 멀리서 보는 오름의 모양은 심플하고 단호하다. 평평한 벌판에 삼각형으로 우뚝 솟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름도 생소한 제주방언이 아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새별’. ‘초저녁에 외롭게 떠 있는 샛별 같다’해서 붙여졌다. 높이는 519m로 코스가 어렵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경사를 올라야 하기 때문에 약간은 등산하는 기분이 든다.

새별오름
새별오름

‘새별오름’이라는 표지석이 보이면 얼추 정상이다. 멀리서 볼 때 하나의 덩어리로 보였지만 올라 보면 이 또한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주요 봉우리도 다섯개로 이름처럼 별모양 표창 같다. 이제 한 숨 고르며 풍경을 만끽해 본다. 동쪽으로는 한라산이 보이고 아래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들판이 있다. 고려시대에 이곳에서 최영장군과 몽골군이 격전을 치렀다고 한다. 서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제주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비양도까지 보인다. 서쪽으로 바다가 보이니 일몰이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새별오름은 온통 억새다. 이 억새는 정월대보름 전날인 음력 2월14일과 15일에 불을 놓아 모두 태운다. 그 유명한 제주의 들불축제다. 오름 전체를 붉게 태우는 것이니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장관이 연출된다.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전통의 축제라면 제물이 있기 마련인데, 새별오름에서는 이 억새들이 바로 그 제물이 되는 게 아닐까.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운다더니 새별오름의 억새는 한순간 태워지기 위해 가을과 겨울을 난다. 어쨌든 당장의 억새는 모자람 없이 아름답다. 바람 따라 은빛이었다가 금빛이었다가 하얗게 빛을 날린다.

새별오름 일몰

◆ 가을·겨울이 싱그러운 색
비타민에 색깔이 있다면? 제주에서만큼은 오렌지색이 아니다. 귤색이다. 제주귤은 10월의 조생귤을 시작으로 11월과 12월이 절정이다. 짙은 초록과 귤색의 조화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의 가을색이다. 주로 서귀포 쪽에서 맛 좋은 귤이 생산되는데 남원리, 위미리, 예래리 등이 대표적이고 감귤따기 체험농장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귤따기 체험은 권할 만하다. ‘마트에서 사먹으면 될 것을 뭐 하러 사서 고생인가’ 싶겠지만 모든 식물이 그렇듯 방금 나무로부터 분리된 열매는 상상 이상의 싱그러움이 있다. 톡 터지는 과즙과 자연의 단맛 앞에서는 취향도 비싼 가격도 의미를 잃는다. 귤 체험은 농장에 따라 운영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대부분이 지역을 정해주고 수확량에 대한 제한이 있다. 귤 따는 요령도 잘 익혀야 한다. 이후의 손님을 배려하는 이유도 있지만 귤나무를 보호하고 체험한 귤도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함이다. 귤을 많이 따서 가져갈 일이 걱정이라면 집으로 택배를 보내면 된다. 집에 돌아가 직접 딴 귤을 받아보는 기쁨도 있겠지만 나무 아래에서 직접 따 먹은 귤 맛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제주는 동백이 피기 시작했다. 메마른 날씨로 쓸쓸하다면 제주로 향할 것! 은빛 물결의 억새와 싱그러운 귤빛, 고혹적인 동백이 여전한 초록과 어울려 마음은 풍요로워 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를 것이다.

[여행 정보]

제주공항에서 따라비오름 가는 법
용문로 - 월성사거리에서 ‘시청, 종합경기장’ 방면으로 우회전 - 월성로 - 오라로 - 오라로 16길 - 연삼로 - ‘정부합동청사’ 방면으로 우회전 - 도남로16길 - 연북로 - ‘표선, 봉개동’ 방면으로 우회전 - 번영로 - 성읍교차로에서 ‘제주’ 방면으로 우회전 - 중산간동로

[대중교통]
제주국제공항에서 36번 버스 승차 - 이도주공아파트 제주지방법원 정류장 하차 - 720-1번 버스 승차 - 가시리 정류장 하차 - 쫄븐갑마장길을 따라 도보이동
제주국제공항에서 100번 버스 승차 - 제주 시외버스터미널 하차 - 720-1번 버스 승차 - 가시리 정류장 하차 - 쫄븐갑마장길을 따라 도보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따라비오름: 검색어 ‘따라비오름’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2
새별오름: 검색어 ‘새별오름’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59-8

제주 놀멍쉬멍
제주관광안내: 1330 / 제주안내: 120번 콜센터 / http://www.jejutour.go.kr

따라비오름
문의: 064-710-6043

새별오름
문의: 064-728-2752

귤따기 체험
http://jejuvill.net/jejutown
예래생태마을: 064-738-6613
남원2리: 064-764-0187

● 음식
나목도식당: 지역사람들에게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이었지만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최근 신관 공사를 마쳤다. 소박한 멋이 있던 예전의 모습은 잃었지만 고기맛은 여전하다.
갈비 1만원 / 삼겹살 9000원 / 순대국수 3000원
064-787-1202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로 613번길 60

나목도식당

명문사거리식당: 제주흑돼지삼겹살 뿐 아니라 제주 지역음식인 몸국, 보말국 등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해장국 먹기에도 좋은 식당이다.
보말국 8000원 / 몸국 6000원 / 순대국 5000원 / 흑돼지삼겹살(100g) 7000원
064-787-1121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동로 5218

명문사거리식당 몸국

● 숙박
타시텔레게스트하우스: 따라비오름에 가기 좋은 가시리에 위치하고 있고, 성읍민속마을과도 가깝다. 티벳풍의 인테리어가 독특하며 길에서 안쪽으로 들어와 있어 조용하게 머물러 가고 싶은 여행자에게 적당하다.
예약문의: 010-3785-1070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로 612-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