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3세 경영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OOO의 아들’에서 벗어나 현장 곳곳을 누비며 굵직굵직한 현안을 직접 챙기고 있는 것. 이들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일부 그룹에선 지배구조 재편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새롭게 출발할 이들의 앞길은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세습 재벌'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게 급선무다. 2세 경영 체제에서 실패한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시 짜야 한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많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막오른 3세 경영시대,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 삼성-현대 오너家 3세 경영 활발

재계에 따르면 현재 2세에서 3세로 지분승계가 종료됐거나 진행 중인 그룹은 삼성, 현대백화점, 신세계, 두산, GS 등이다. 이 중 삼성·신세계 등은 지분과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고, 두산과 GS는 4세로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SK·롯데·CJ 등 3세의 나이가 어린 기업 역시 마찬가지. 머지않은 미래에 이들도 경영권과 지분을 넘겨 받게 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재벌사 특성상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오너 일가 내에서 승계를 이어가고 있다”며 “아직까지 전문경영인보단 ‘대주주=경영자’ 공식이 성립돼 있고 최근 3세 경영인들의 행보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3세 경영체제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삼성부터 들여다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운 이후 현장 경영을 강화하면서 굵직한 현안들을 직접 챙기고 있다. 한화그룹에 이어 롯데그룹으로 화학 계열사를 매각하는 ‘빅딜’을 이끌었다.

특히 지난 9월1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만난 통합 삼성물산이 출범하면서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 16.5%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곳.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 셈이다.

최근에는 실적이 부진한 삼성중공업과 삼성증권을 차례로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등 현장 경영을 강조하고 나섰다.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1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삼성중공업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증권 역시 지난해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다. 이 부회장의 방문은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지속한 현장 경영의 일환이라는 해석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삼성의 행보를 두고 이 부회장 표 ‘젊은 삼성’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을 내놓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오른쪽).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현대가 3세들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우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지난 11월10일 현대차 주식 184만6150주(지분 0.84%)를 추가 매입해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 9월에는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316만4550주를 사들인 상태. 이로써 그가 가진 현대차 지분은 총 501만7145주(2.28%)로 늘어났다.
지분 매입과 맞물려 대외 활동도 눈에 띈다. 정 부회장은 지난 4일 제네시스브랜드 론칭을 발표하며 6년 만에 국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계에서는 정 부회장이 제네시스를 통해 차기 경영승계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한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장남인 정기선 상무도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11일 현대중공업과 사우디 석유회사 아람코와의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 체결을 주도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그가 TF를 꾸리고 수차례 사우디를 방문해 실무협상을 지휘하는 등 전과정을 직접 챙겼다는 후문이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왼쪽)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오른쪽). /사진제공=현대중공업, 신세계그룹

같은 달 14일 ‘서울 시내면세점 대전’에서 승리한 신세계 역시 3세의 경영능력이 빛을 발했다는 분석이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 이어 3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올해 들어 자신만의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나섰다.
시내면세점 입찰뿐 아니라 수제맥주브랜드·한식뷔페브랜드 론칭 등 그룹의 새 먹거리 발굴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특히 상반기 실패 후 재수에 나섰던 시내면세점 2차 대전은 신청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일선에서 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 아버지 잇는 경영능력 변수로

하지만 이들의 항해가 앞으로도 순항일지는 미지수다. 과거 사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창업주가 물러나고 오너 2~3세가 경영권을 물려받은 재벌가는 대부분 홍역을 겪었다.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2000년)과 ‘시숙의 난’(2006년), 금호그룹의 ‘왕자의 난’(2009년),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2005) 등은 대표적인 경영권 분쟁 사례로 꼽힌다. 가까운 예로는 롯데그룹이 있다. ‘피보다 진한 경영권’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 같은 권력다툼을 차치하고라도 전문가들은 3세들의 검증되지 않은 경영능력이 자칫 조직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1세들이 어렵게 마련한 경영기반 위에서 2세대가 이룬 도약의 역사를 3세대가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올해 초 경제개혁연구소가 민간 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오너 3·4세 인사들의 경영능력을 검증한 결과 대다수가 독자적인 경영능력에서 여전히 의문부호를 갖게 했고 경영권 승계 작업에서도 불공정한 과정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계 관계자는 “부모세대와 달리 현 재계 3세대는 이미 갖춰진 기반 위에서 기업 가치를 글로벌로 높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다”며 “경영능력도 의문이지만 경영권을 원활하게 물려받기 위해서는 족벌경영의 폐해뿐 아니라 순환출자 해소, 일감몰아주기, 상속세 납부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