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등반도
◆ 가거도의 대표 그림, 섬등반도
이곳은 한마디로 폭풍의 언덕이다. 보이는 바다는 저렇게 고요한데 얼굴을 때리는 바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띄엄띄엄 보이는 집을 다 합쳐도 30여 가구, 거친 바람 앞에서 조금이라도 기댈 만한 곳에 의지해 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산이자 섬인 마을 언덕은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게 바로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촬영지가 된 이유일 것이다. 방송 ‘1박2일’을 통해 유명세를 탔고 민박을 운영하는 이장님 부부는 ‘인간극장’에 출연하기도 했다.
가거도에서도 항리마을, 그중에서도 섬등반도는 필수코스로 꼽힌다. 섬으로부터 1㎞ 정도 쭉 뻗어 나온 산줄기인데 구불구불한 모양새가 공룡의 척추 같다고도 하고, 용꼬리 같다고도 한다. 우선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능선조망대에서 전체를 본다. 바다로 뚝 떨어지는 절벽인 데다 파도까지 무섭게 치면 이 자체로 카리스마가 넘쳐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과 감탄이 교차한다.
항리마을 몽돌해수욕장 선착장
이제 신발끈을 꽉 묶고 섬등반도 위를 걸어본다. 작은 초소가 띄엄띄엄 있어 길을 알려준다. 펜스와 데크 길이지만 조금 험하다 느껴지는 것은 그 너머가 100m 낭떠러지기 때문이다. 눈을 돌려 오른쪽을 보면 바다 쪽으로 푹 파이듯 들어간 곳에 민박집이 있고, 더 멀리 보면 작은 섬 구굴도와 검은여 등 낚시꾼들이 좋아하는 포인트가 보인다. 그리고 아예 뒤돌아 서면 독실산 봉우리가 있다. 지그재그로 선명하게 난 길은 대리마을로 향한다. 길을 따라 늘어선 전봇대가 이곳과 저 너머를 연결한다.
섬등반도 시작점 부근에는 가파른 계단길이 있다. 계단 하나의 높이가 30cm쯤 되는 150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해변이 나온다. 길이 100m 정도의 아늑한 해수욕장으로 몽돌이 깔려 있어 파도가 칠 때마다 ‘차르르~’ 하는 소리가 좋다.
한편 항리마을 입구에는 빨간 우체통이 하나 있다. 크기가 1.49m×0.88m×3.12m나 된다. 이름은 ‘바다제비송년우체통’. 여기에 편지를 넣으면 돌아오는 새해에 주소지로 보내준다. 국토의 최서남단에서 소망 담은 편지를 미리 써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혹시 기회를 놓쳤다면 가거도에 머무는 동안 어디서든 편지를 쓰고 민박집이나 출장소에 마련된 미니 송년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가거도 송년 우체통
◆ 신안군 최고의 산, 독실산
가거도 독실산은 해발 639m로 신안군에서 가장 높다. 국토 최서남단에 높은 봉우리가 딱 지키고 있으니 모양새도 좋고 군사적으로 유용하다. 600여m 높이의 산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거도라는 땅 면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높다. 섬에는 넓은 평지가 없고 가파른 오르막만 이어진다. 섬에 있는 산중에서는 제주도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 다음으로 높은 산이기도 하다.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비교적 뜸하기 때문에 700여종의 생물이 난대 원시림을 이뤘다. 2012년에는 산림청이 주관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로 낚시꾼이 많이 오지만 등산가들도 적지 않은 이유다.
독실산 정상에 오르는 방법은 4가지가 있다. 대리마을에서 시작한다면 샛개재나 김부연하늘공원 쪽으로 올라와 방공호를 거점으로 삼거리, 독실산까지 오르는 길이 있고 항리마을에서 시작한다면 약 2㎞ 정도 길을 따라 오르는 가장 짧은 구간도 있다. 가거도 등대와 연결된 길은 약 3㎞로 원시림을 누비는 여정이고, 대풍리를 경유하는 코스는 바다로 시작해 숲을 보며 삼거리까지 와서 이로부터 독실산에 오르는 길이다.
독실산 정상과 대리마을 가는 길
독실산 트레킹
가장 쉬운 방법은 차량 이용이다. 트레킹을 즐기지 않는다면 독실산 초소 앞까지 차를 타고 올라올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놓고 나무 계단 몇개를 오르면 독실산 정상이다. 다만 이곳은 군사지역이기 때문에 방문자는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간단히 연락처와 이름을 작성해야 하고 신분증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상에서는 사진촬영에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여행자들은 표지석을 찍는 정도만 허용된다. 큰 기대를 하고 와서 ‘남는 게 사진’이라며 카메라를 꺼내지만 제한이 많다.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늘 안개가 자욱해 조망이 좋은 편도 아니다. 따라서 차로 올라와 좋은 사진을 기대했다면 차비가 아깝다고 실망만 하고 돌아갈 수도 있겠다. 정상에 서는 기쁨도 좋지만 오르는 과정에서 보는 길, 바다, 원시림에 비중을 둔다면 후회 없이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 선경아, 이 시를 어떻게 쓴 거야?
바다가 요동을 쳐도
옷깃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이곳
하도 멀어서
저 수평선 너머에
감쪽같이 몸 사린
환장하게 생긴 이곳
얼마나 고귀하기에
뿌연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독실산이 솟아있는 이곳
이곳은 가거도
- <이곳> 고선경
식당에서 벽에 걸린 시 한편을 발견했다. 이 집 딸 선경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쓴 시라는데 첫 연부터 카운트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바다가 요동을 쳐도… 흐트러짐이 없는…’ 과연 가거도는 그랬다. 며칠 동안 풍랑으로 배가 들어오지 못해도 바다는 평화롭게만 보였다. “이건 여기 와 본 사람만 알 수 있지….” 시 한 구절을 대충 읇으며 붙이는 선경이 어머니의 해석에서 딸에 대한 자랑과 사랑이 느껴진다. 이밖에도 식당에는 <우산>, <그대> 같은 선경이의 작품이 아버지가 찍은 사진과 함께 시화로 걸려 있었다.
“어떻게 이런 시를 썼어?”라고 물어보자 “그냥… 숙제라서 썼는데….”
숙제로 쓴 시가 놀랍기만 하다. 가거도의 산과 바다와 하늘이 말만 해도 노래가 되고 펜만 들어도 시가 되는 감성을 가르쳤나 보다.
중학교까지 이곳에서 마친 선경이는 이제 뭍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딸아이를 일찌감치 객지로 보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불안할까. 매일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어르고 달래는 ‘엄마’에게 "날 믿어!"라고 짧게 말하는 선경이의 한마디가 이상하게 든든하고 고마운 건, 부디 그러하길 바라는 걱정과 애정, 믿음, 염원이 아닐까 싶다.
항리마을
[여행 정보]
가거도 가는 법
목포여객선에서 오전 8시 10분 쾌속선 승선 - 12시 20분 도착
운임: 6만1300원
남해고속훼리와 동양고속훼리 두 회사가 짝수일과 홀수일로 나누어 운항한다.
남해고속훼리: 061-244-9915 / http://www.namhaegosok.co.kr
동양고속훼리: 061-243-2111 / http://www.ihongdo.co.kr
가거도
문의: 061-275-9300
신안문화관광
문의: 061-271-1004 / http://tour.shinan.go.kr
항리마을 캠핑, 숙박 시 주의할 점
가끔 캠퍼들이 섬등반도에 텐트를 치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이 심한 겨울철에는 삼가는 것이 좋다. 겨울에는 추운 바람 때문에 마을 주민들조차도 항리마을에서 떠나 지내기도 한다. 여행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각자의 안전 또한 각자의 몫이다.
주요 시설 연락처
목포선박운항관리실(풍랑 정보, 쾌속선 운행 여부 체크) 061-240-6031
목포여객선터미널 1666-0910
신안군가거도출장소 061-240-8620
대리마을~독실산 차량 운임: 6만원
대리마을~항리마을 차량 운임: 4만원
● 숙박과 음식
항리마을에서 숙박을 하면 가거도항에서 항리마을까지의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 숙소에서 차를 가지고 나와 픽업해 주기 때문이다. 다만 겨울에는 항리마을에 바람이 심해 숙소 주인 조차도 대리마을에 나와 생활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별다른 대안이 없다. 대리마을에서 숙박하며 항리마을에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미리 연락해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다희네민박 061-246-5513
섬누리민박 010-8663-3392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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