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7시. 1년여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 그리고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서울 대학로. 불과 1년이 흘렀을 뿐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무척이나 낯설다. 1년 전 찾았던 식당과 술집은 사라지고 다른 간판을 단 식당과 술집이 자리를 대신했다.

분위기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한껏 흥이 오른 연말 주말을 맞아 거리를 가득 메워야 할 사람들의 숫자가 지난해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대학로 상권이 죽었나라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두리번거리자 친구 한명이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기존에 알던 대학로길이 아니다. 대형상가가 즐비한 길을 지나 뒤편에 위치한 명륜동 골목으로 들어가자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함께 갖가지 음식점, 술집, 카페 등 수많은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골목은 20~30대 젊은 친구들로 넘쳐났다.


부암동 주택가에 들어선 이색 가게. /사진=차완용 기자
경복궁역 골목에 형성된 골목상권. /사진=차완용 기자

◆ 비싼 임대료에 밀려 뒷골목 상권 형성
이곳에 이런 상권이 형성되다니…. 기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기자가 이곳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1층 양옥집은 뼈대만 그대로인 채 외관이 바뀌어 고깃집으로 변했고 골목길 모퉁이에 있던 조그만 구멍가게는 칼국수가게로 옷을 갈아입었다.

동네친구들이 살던 집들도 지금은 술집과 커피숍, 식당 등이 영업 중이고 아직 남아있는 집 역시 상가로 바뀌는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학로 대로변이나 동숭동에 위치해야 할 소극장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자본’ 때문이다. 문화공연을 기반으로 한 서울의 대표적 위락상권이던 대학로의 기존 상권 임대료가 치솟으며 소자본으로 운영하던 소상공인과 소극장들이 결국 뒷골목으로 밀려나는 ‘엑소더스’(exodus)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서울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홍대의 경우 지난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시작됐다. 홍대상권에 둥지를 틀었던 음악가와 미술가들은 홍대상권의 팽창으로 점점 자본위주의 위락상권으로 변모했고 음악가와 미술가들은 홍대 엑소더스를 통해 철재단지 문래동, 서울화력발전소 인근 상수동 외곽, 주택가였던 망원동으로 둥지를 옮겼다.

지난 2004년 서교동에 자리 잡았던 이리카페가 5년여 만에 세배 가까이 치솟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상수동으로 둥지를 옮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 무렵 5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 홍대 일대의 미술작업실과 음악연습실은 현재 80여개로 크게 줄었다.

반면 문래동에는 전시공연시설 40여개, 작업실 300여개가 형성됐고 망원동과 상수동 화력발전소 인근에도 각각 200개가량의 작업실이 생기면서 상수동 일대에 예술가들이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들 지역에 문화·예술적 분위기가 형성되자 도심의 중상류층들이 유입되는 인구 이동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시작되면서 카페거리가 형성되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됐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새로운 상권의 공통점은 주택을 개조하거나 1층을 임대해 소규모의 카페나 음식점 등으로 꾸민다는 점이다. 즉, ‘특색+소자본’이 핵심이다. 실제로 상수동 일대에는 주택을 개조한 카페들이 들어선 이후 특색 있는 음식점이 뒤를 이었고 최근에는 액세서리숍과 의류가게, 북카페 등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

이에 대해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자본주의에 밀려나는 엑소더스 현상과 새로운 인구 이동이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현재 서울에서 복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들 상권 형성의 초기 공신은 대부분 소상공인들로, 주택이 밀집한 곳에 자리를 틀고 ‘골목상권’이라는 이슈를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 이슈·돈 흐름 따라 형성되는 새 상권

그런가 하면 최근 서울에서는 전혀 뜻밖의 지역에 상권이 형성되는 현상도 일어난다. 대표적인 곳이 종로구 부암동. 이곳은 지하철역에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열악한 교통여건이지만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낙후된 주택가였지만 드라마 <커피프린스>가 인기를 끌면서 촬영지였던 이곳에는 전문적이고 특색 있는 커피숍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기존에 있던 조그만 치킨집은 한 파워블로거의 극찬 덕에 문전성시를 이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부암동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몰려들며 업종도 다양화됐다. 주로 20~30대 젊은이들이 데이트 코스로 찾는다는 특성에 따라 파스타전문점, 쭈꾸미집, 식사가 가능한 카페 등이 생겨났고 지금도 여러 가게가 오픈을 위해 공사 중이다.

이외에도 서울에는 기존에 없었던 상권이 새로 생기고 있다. 이들 상권은 대부분 낮은 임대료와 경쟁이 덜 치열한 곳을 찾아 초기에 형성됐다가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발달하는 상권들이다.

용산-수색 구간 철로가 인접한 서교동쪽 주차장 골목이 대표적인데 이곳은 일대가 삼겹살·통돼지·갈비 등의 간판으로 뒤덮였다. 5~6년 전부터 신촌 일대에 몰려 있던 고깃집들이 하나둘 옮겨오는가 싶더니 지난해 ‘걷고 싶은 거리’ 사업지로 지정돼 길 정비가 시작되자 기존 상인들에 더해 새로 들어온 업주까지 잇따라 개업했다. ‘돼지마을’로 둔갑한 것이다. ‘걷고 싶은 길’이 본의 아니게 ‘굽고 싶은 길’이 돼버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곳 역시도 가게의 권리금이 많게는 1억원 가까이 형성되면서 상업화가 급물살을 탔다. 기존 메인거리에 있던 상인들은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판 후 약간 떨어진 인근지역에 다시 가게를 차리면서 지금의 거대상권이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2년간 서교동 일대에 들어선 식당·술집·카페 등은 215곳이나 되는 반면 구청에 폐업신고를 낸 곳은 34곳에 불과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