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9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 화제가 됐다. 밀리언셀러에 오른 이 책의 제목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2016년을 사는 우리에게 세계는 더 이상 넓지 않기 때문이다.

IT와 인터넷, 교통·물류수단 등의 발달로 전세계는 이제 국경이 없어졌으며 간접생활권에 접어들었다. 자연스레 국가간 경제교류가 이어지면서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지금은 외형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시기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나라 다수의 기업이 ‘국경 없는’ 경제영토에서 경쟁하다 패하거나 경쟁대열에 제대로 끼지도 못하고 있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저성장 기조, 내수경기침체,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는 국내무대를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에 치명타가 됐다.

해법은 뭘까. 치열한 경제영토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묘수는 결국 해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하며 삼성그룹 핵심경영진 200여명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남겼다.

“국제화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그로부터 22년이 흐른 지금 삼성그룹은 글로벌기업으로 우뚝 섰다.


<머니위크>는 혁신적인 전략으로 글로벌시장에 우뚝 선 기업의 모범사례를 통해 경제영토전쟁이 한창인 세계시장에서 한국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울산 현대차 수출 부두.

◆ 현대차그룹, 한걸음씩 탄탄하게
지난 1967년 12월29일 설립된 현대자동차. 그로부터 9년 뒤인 1976년 현대차는 우리나라 최초의 모델 ‘포니’ 6대를 처음으로 에콰도르에 수출했다. 이를 계기로 1985년 ‘엑셀’을 미국에 수출하며 본격적인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고 2016년 1월 현재 전세계 각지에 17개 판매법인, 7개 생산법인, 7개 지역본부를 두고 거의 모든 국가에 진출했다.

해외진출 초기에는 현지 소비자의 소구점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현지의 어려운 환경을 기회로 삼으며 소구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것이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 미국 현지에서 진행한 '현대 어슈어런스 프로그램'(Hyundai Assurance Program)이다.

현대차를 구매한 고객이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일종의 보험프로그램을 진행해 미국 소비자의 머릿속에 현대차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 현대차는 단순 차량판매가 아닌 브랜드를 판다는 생각으로 해외시장 전략을 새로 짰다. 기존 ‘Drive your way’라는 슬로건을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로 변경한 후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이는 당시 해외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부분의 기업이 상품중심의 광고를 진행할 때 현대차의 ‘브랜드를 판다’는 마케팅은 현지소비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김충호 현대차 사장은 “올해가 해외에 진출한 지 꼬박 40년이 되는 해”라며 “불모지였던 신시장에 초석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오다 보니 어느덧 지금의 현대차그룹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 이랜드그룹, '한우물+비즈니스파트너'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국내기업은 어디일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일까, 아니면 현대차일까. 정답은 둘 다 아니다. 바로 이랜드그룹이다. 사실 이랜드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에서 더 유명하다. 중국 249개 도시에 1070개 백화점과 쇼핑몰 등 총 7300여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인 이랜드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유통공룡이다.

하지만 이랜드그룹의 해외진출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지난 1994년 글로벌시장 진출을 비전으로 삼고 상하이에 첫 생산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96년 첫 브랜드를 론칭했다. 물론 초창기 IMF 외환위기 등 대외적인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랜드그룹은 계속해서 중국시장 진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체계적인 현지화전략을 시행했다. 중국에 파견나간 한국인 직원이 중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파견 전 중국관련 서적을 100권씩 독파하게 하거나 현지에서 6개월간 200개의 도시를 순회토록 한 일화는 유명하다.

또 중국정부는 물론 현지소비자와의 신뢰구축을 위해 정직함과 지속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중국정부와 신뢰를 쌓은 덕분에 상하이시 토지를 현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제공받기도 했다.

나아가 이랜드는 중국 내 브랜드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100% 직영체제’라는 혁신적인 유통구조를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랜드의 7300여개 중국매장은 100% 직영체제로 운영되며 프리미엄브랜드의 위상을 갖춰 백화점 내에만 입점시키는 고급화전략에 성공했다.

최종양 중국 이랜드 사장은 “어려운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한 것이 지금의 이랜드를 만들었다”며 “앞으로도 외형만 키우는 식의 매장확장에 집중하지 않고 검증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파빌리온 몰에서 그랜드오픈 행사를 가진 이랜드그룹. /사진제공 이랜드그룹

◆ CJ대한통운, 폭 넓은 해외거점 구축
해외진출에 두각을 나타낸 기업으로는 CJ대한통운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1위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은 지난 1966년 베트남 다낭지역의 항만하역사업을 진행하며 글로벌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도쿄사무소(1972년), 미국법인(1974년)을 설립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베트남 개방에 따른 진출(1996년), 캄보디아 진출(1996년), 유럽시장 개척(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에 앞장섰다.

이후 CJ대한통운은 2005년 중국 상하이법인 개설을 시작으로 현지법인을 텐진, 베이징, 선양, 충칭, 선전, 광저우, 둥관, 홍콩 등으로 확대했고 2008년에는 국내기업 최초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내륙운송사업을 개시했다.

또 동남아를 중심으로 글로벌네트워크를 확장, 현재 베트남 북부와 중국 대륙 및 인도차이나 지역을 잇는 동남아 물류벨트를 구축했으며 지속적인 글로벌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현재 22개국에서 총 78개 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CJ대한통운 역시 해외진출 초기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운송사업 특성상 유독 심한 단속에 걸리거나 주차된 차량에서 부품이나 철제구조물을 절취해가는 문제에 시달렸다.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CJ대한통운은 국내 우수 물류전문가를 집중육성해 각 해외거점에 파견,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을 적용했다.

박근태 CJ대한통운 공동대표는 “현지 물류기업의 저가공세, 글로벌 물류기업의 규모에 의한 경쟁력에 맞서기 위해 특화된 물류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