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아파트 1층에 산다. 12층에 사는 지인이 “1층에 사는 것도 좋겠다”고 말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유사시 밖으로 쉽게 탈출할 수 있어서란다. 지인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전날 밤 집에서 애완견 짖는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강아지가 현관문 앞에서 끙끙거렸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문을 열었더니 복도와 계단이 연기로 자욱했다고. 아래층에서 불이 나 위로 화염이 올라오고 있었던 것. 아내가 당황해 잠옷 바람으로 나가려는 것을 말리고 우선 지갑만 챙겨든 채 어떻게 할지 궁리하던 중 다행히 소방차가 와서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고 한다.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필자의 부모님이 살던 집 마당에서 불이 난 적이 있다. 아버지가 당황해 지푸라기로 만든 방석을 불 있는 곳에 던지려 하자 어머니가 이를 말리고 부엌에 있는 큰 솥뚜껑으로 불을 덮어서 껐다고 한다. 화재 발생 시 사람이 놀라면 당황해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힘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 개포주공 7단지 주민들이 화재대비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강남구

지난해 전국적으로 4만4432건의 화재가 발생해 재산피해가 전년 대비 5.5% 증가한 4420억원을 기록했다. 화재 발생 건수는 다소 줄었지만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는 더 커졌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 수는 지난 한해 동안 전국적으로 253명에 달했다. 아파트를 포함해 주거용 건물에서의 사망률이 비주거용 건물에 비해 5.6배나 높았다.


화재가 나면 재산손실이 제한적이더라도 유독성 가스 등으로 사람이 질식사하는 경우가 많은 점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누구든 자신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평소 화재를 막기 위한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화재 발생 시 올바른 대응방법도 반드시 숙지하자.

◆화재 가장 많이 발생하는 봄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계절은 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소방방재청의 2013년 화재통계에 따르면 봄에 발생한 화재가 1만2007건으로 겨울의 1만1262건을 앞질렀다. 가을과 여름은 각각 8968건, 8695건이다. 월별로는 3월(4805건)이 가장 많았고 1월(3990건), 2월(3823건), 4월(3793건) 순이다.


겨울에는 전기히터, 전기장판, 전기스토브 등 전기를 사용하는 난방용품에 의한 화재가 빈번하다. 그중 전기장판·매트가 화재원인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장판 열이 축적돼 내부 온도가 과열되는 경우와 장판이 접히거나 무거운 물체에 눌려 내부전선의 피복이 손상되는 경우 불이 날 수 있다.

봄철에는 습도가 낮아 건조해진 상태에서 작은 불씨나 스파크가 불로 번지는 경우도 흔하다. 무엇보다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가장 많다. 서울에서 5년간(2010~2014년) 발생한 화재의 원인 중 49.9%가 ‘부주의’였다. 전기적 요인은 29.0%, 방화가 6.2%, 기계적 요인이 5.2%다. 원인 미상으로 끝나는 경우도 7.5%나 된다.

전기적 요인은 1729건에서 1418건으로, 방화는 524건에서 227건으로 줄어든 반면 부주의에 의한 화재는 2222건에서 3278건으로 크게 늘었다. 안전의식이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해이해진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화재발생장소는 주거시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동주택(19.4%)이 1위이고 단독주택(15.1%), 음식점(11.0%), 차량·철도(9.7%), 일반업무시설(6.5%), 일반서비스시설(5.4%) 등의 순이다. 이달 들어 발생한 화재도 여러건이다. 지난 13일 전북 무주의 한 주택에서 보일러 과열로 추측되는 화재가 발생해 970만여원의 재산피해를 냈고 군산시 산복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가스레인지 취급 부주의로 불이 나 460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 전북 임실의 한 주택에서도 아궁이 불씨에 의한 화재로 990만여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가전제품이 원인이 된 화재도 흔하다. 주방가전 중에서는 냉장고 및 김치냉장고가 발화원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세탁기가 뒤를 이었다. 냉장고에 먼지가 쌓이거나 음식물이 가득 차 성에가 많아지면 냉기 흐름이 방해된다. 이 경우 적정온도를 유지하려고 팬이 과열될 정도로 돌다가 불이 나기도 한다. 따라서 아랫부분에 쌓인 먼지를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음식물은 가득 채우지 않는 것이 좋다.

세탁기에 너무 많은 빨래를 넣어 돌릴 경우 모터에 무리가 오기도 한다. 탈수 시 소음이 나면 교체하는 것이 좋다. 습한 장소에 놓인 세탁기 내부 먼지와 습기에 의해 전기가 합선되기도 한다. 여름에는 냉방기에 의한 화재가 많으므로 냉방기 사용 시 실외기의 안전한 관리법을 숙지해야 한다. 더운 날 에어컨과 선풍기를 과열될 정도로 사용해 불이 나기도 한다.

제습기,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전기밥솥, 냉온수기, 식기건조기, 다리미, 토스터기, 전기전자그릴, 튀김기, 가스오븐, 음향기기, 텔레비전, 비데, 청소기 등 대부분의 가정용품이 발화기기가 될 수 있다. 전기용품 사용 시 발생하는 화재원인 중 대부분은 사용자의 부주의나 전기용품 사용에 대한 지식 부족이다. 지나치게 많은 제품을 하나의 전원에 연결해 사용하면 과부하가 걸려 과열되고 전선의 절연체가 녹을 수도 있다.

전기기구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스위치를 끄고 플러그를 뽑는 것이 좋다. 특히 플러그는 선이 아닌 몸체를 잡고 뽑아야 하며 두꺼비집으로 부르는 개폐기에는 과전류 차단장치가 제대로 설치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휴대폰 배터리 폭발 유의해야

휴대폰시대가 된 이후로 새로운 유형인 휴대폰 배터리에 의한 화재가 국내외에서 발생했다. 경남 거창에서는 여중생이 소유한 휴대폰에서 불이 났는데 휴대폰 액세서리가 원인이 됐다. 액세서리의 금속 끈이 배터리의 충전단자 양쪽에 닿으면서 합선을 일으킨 것.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애완견이 스마트폰 배터리를 물어 배터리가 폭발한 화재사고가 발생했는데 이후로도 이와 유사한 사고가 이어졌다.

태국에서는 고압선 전봇대 옆에서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린 직후 배터리가 폭발했다. 고압선 근처에서는 휴대폰으로부터 방전되는 전자기파가 불꽃을 일으켜 전봇대에서 휴대전화 쪽으로 전기가 흐를 수 있다. 극성이 바뀐 상태로 충전되면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거나 폭발할 수 있고 전해액이 새거나 열이 발생해도 위험하다.

리튬이온전지 속 리튬은 수분에 노출되면 폭발하는 특성이 있으며 전해액은 휘발유보다 잘 타므로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폭발할 수 있다. 휴대폰이 물에 빠졌을 때는 배터리를 제거하고 물기를 닦은 후 수리를 맡기는 게 좋다. 물에 젖은 휴대폰의 전원을 켤 때 합선으로 사고가 날 수 있어서다. 기계적인 충격으로 배터리 내부 보호장치가 손상되면 이상전류나 전압으로 배터리 내부에서 이상 화학반응이 일어나 배터리가 발열, 파열, 발화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화가 나더라도 배터리를 던지지 말아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