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터의 문을 열자마자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뛰어와 안겼다. 이름은 ‘아라’. 올해 세살이다. 큼직한 눈망울로 꼬리를 흔드는 아라에게 기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러 왔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새삼 이런 조건 없는 환대를 받았던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라가 지내는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는 주인에게 버려진 유기견을 거둬 도우미견으로 키우는 곳이다. 도우미견은 시각·청각 장애인의 생활을 돕거나 신체적·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동물매개 치료를 하는 강아지다. 아라도 이곳에서 기본훈련을 받으며 지내는 55마리의 유기견 중 하나다. 이 강아지들이 어떤 훈련을 받고 도우미견으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 ‘유기견들의 아버지’ 여운창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팀장(55)에게 들어봤다.
여운창 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장. /사진=장효원 기자
◆ 경쟁률 높은 ‘도우미견’ 선발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이 센터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안락사당하는 유기견을 조금이라도 살리자는 취지에서 2013년 3월 문을 열었다. 이후 이곳은 유기견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을 주는 ‘도우미견’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동물과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셈이다. 이곳에는 경기도 23곳의 보호소에서 도우미견으로 성장할 자질이 보이는 강아지가 선발돼 모인다.
“경기도에서만 매년 1만5000마리의 유기견이 발생하고 이 중 약 5000마리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안락사됩니다. 어떻게 하면 유기견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도우미견 나눔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분명 이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도우미견으로 성장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센터에 모인 강아지 사이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지녀야 선발이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일반 반려견까지 모두 178마리가 분양됐는데 그중 불과 3마리만 도우미견으로 성장했다.
“처음부터 유기견보호소에서 심하게 짖거나 물지 않는 3~5세의 강아지를 데려옵니다. 도우미견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람과의 친화력이거든요. 이렇게 선발된 강아지들은 모두 1~3개월간 기본적인 배변훈련과 복종훈련을 받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일반인에게 분양되는데 여기서 한번 더 도우미견으로 성장할 반려견을 뽑습니다.”
도우미견으로 훈련받는 강아지는 재능에 따라서 길이 갈린다. 가령 소리에 예민한 강아지는 청각장애인도우미견으로, 물품에 욕심이 있는 강아지는 지체장애치료를 위한 강아지로 훈련받는다. 치열한 과정을 거쳐 뽑힌 강아지들은 일반적으로 2년여간 더 훈련받는다. 행동의 기복없이 자체 판단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훈련받은 강아지들은 보건복지부에서 등록번호가 나온다. 현재 이곳을 졸업한 강아지 중 두마리가 동물매개치료견으로서 경기도 내 복지관에서 활동 중이다. 한마리는 최근 훈련을 마치고 입양대상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진제공=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다
어렵게 훈련한 반려견인 만큼 입양절차도 까다롭다. 입양신청서 항목만 16가지나 된다. 서류를 제출하면 심사과정을 거쳐 입양대상자를 선정한다. 여기까지는 모든 반려견 분양과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다만 도우미견은 장애가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의 사람에게만 분양한다. 여운창 팀장은 많은 반려견을 분양하다 보니 서류와 주인 얼굴만 봐도 강아지에 대한 애정도가 어떤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입양신청서에는 월수입이 얼만지, 집이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등 민감한 부분을 적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꼼꼼하게 작성한 후 면담을 거치면 이 사람이 강아지를 잘 키울지 느낌이 옵니다. 그럼에도 10명 중 1명은 다시 파양하더군요. 안타까운 일이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가 분양 후 1년간 전화하고 방문하는 등 사후관리를 하기 때문에 강아지가 다시 버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여 팀장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도우미견이 더 널리 퍼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서로 도우며 교감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유기견을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사람을 치료하는 분야를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동물매개치료가 우울증이나 노인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또 제가 직접 느낀 바로는 반려동물이 주변인들과 마음의 벽을 허물게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예전에 반려견 사후관리차 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평소 대화가 없던 집이 반려견 덕분에 화목해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반려견이 가족간 대화의 매개체가 된 거죠. 이렇게 동물도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함부로 버리는 일은 줄어들지 않겠어요?”
호야 훈련하는 모습. /사진제공=경기도 도우미견 나눔센터
동물매개치료견 ‘호야’의 일기
안녕하세요? 저는 호야예요. 도우미견 나눔센터에서 훈련을 마치고 지난해 안양수리장애인복지관으로 왔어요. 이곳에서 2년째 치료견 일을 하고 있어요. 주로 자폐증이나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찾아와서 심리치료를 받아요. 제 역할은 상담사님 옆에서 아이들과 함께 줄넘기나 공놀이를 하면서 놀아주는 거예요.
물론 아이들과 친해지기는 힘들었어요. 절 처음 본 아이들은 제가 반가워서 뛰어가면 무서운지 엄마 뒤에 숨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무서워하는 아이 옆에 가만히 누워서 눈빛으로 얘기해요. ‘나는 정말 네가 좋아.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러면 아이들도 서서히 저를 쓰다듬어 주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열더라고요. 이렇게 사귄 친구들이 벌써 16명이나 돼요. 대단하죠? 앞으로도 더 많은 친구들과 교감하며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제 활약, 기대해주세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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