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기에 빠진 조선업의 구조조정 대책으로 강력한 자구책을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의 반응이 엇갈린다. 앞서 정부 주도의 조선소 통폐합 가능성이 열리면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조선주로부터 등을 돌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한국 조선업이 항로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충분히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일부 투자자들이 조선주를 지속적으로 주시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위기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하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선업종 구조조정 대응 현안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수정 기자

◆정부 통폐합 “가능성 낮아”
한국 조선업의 구조조정이 화두다. 조선소를 줄이는 통폐합 전략이 부각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켰다. 전세계 조선소 수가 260여개인데 한국 조선소를 2~3개 줄인다고 선박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룰 리 없다는 지적이 난무한다.


한국 조선소 통폐합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곳은 중국 조선업이라는 우려도 거세다. 해외 선주사들까지 나서서 구조조정을 빌미로 선가 인하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시장의 결론은 단순한 통폐합 전략이 한국의 조선업 경쟁력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쪽으로 쏠린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의 상황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찾는다면 분명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또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으로 빅딜 없는 자구책 마련 방침을 확정했다. 정부 주도의 조선소 통폐합 가능성이 낮아진 셈이다.

다만 정부는 채권단 주도로 각 조선사별 인력감축과 비용절감 등 자구계획을 추가 요구할 계획이다. 이를 놓고 조선업계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최소한 회사가 강제로 분할되거나 통폐합될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슈로 조선업종의 주가가 소폭 상승했다. 지난달 25일 10만9000원이던 현대중공업 주가는 금융위원회의 발표가 있었던 26일 11만2500원, 27일 11만5000원으로 올랐다. 대우조선해양도 지난달 25일 5080원에서 26일 5150원, 27일 5320원으로 뛰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25일 1만700원에 거래됐지만 26일과 27일 각각 1만800원, 1만950원으로 상승했다.



◆한국 조선업 “위기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투자자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이 그동안 잘못 평가됐다는 반증으로 투자자들의 심리를 풀어낼 수 있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잘못된 조선업 평가방법이 조선소들을 무리한 수주경쟁에 몰아넣었다”며 “조선업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주실적이 아닌 인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 리먼사태 이후 한국 조선소들은 선박수주량 감소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해양플랜트시장에서 수주를 늘렸다. 하지만 한국 조선업은 선박분야와 달리 해양플랜트분야에서 원천설계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해양플랜트 수주 늘리기에만 몰두하면서 조선업을 위기로 몰아간 셈이다.

반대로 선박 수주시황은 2010년부터 다시 회복세를 나타냈다. 2013년 한국의 에코십(Eco-Ship)이 검증되면서 대규모 선박 수주실적을 보였다. 최근 3년간 한국 조선소들의 수주잔고에서 해양플랜트 비중이 높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적자를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이는 한국 조선업의 선박건조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했더라면 지금의 위기와 마주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박무현 애널리스트는 “단위 시간당 인도량을 늘려야 도크 효율성이 높아지고 현금흐름이 좋아진다”며 “수주실적은 가격을 낮추고 조건을 포기하면 연간 수주목표를 한달 안에도 전부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역사적으로 수주량이 줄어서 망한 조선소는 없었다”며 “건조지연에 따른 인도량 감소가 현금자산의 유출을 불러와 수많은 조선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중국 추격론 “근거 없어”

일각에서는 중국의 한국 조선업 추격론이 흘러나오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다. 실제 2014년 중국 민영조선소인 룡셩조선이 매출액 38억위안 감소에 부딪히며 무너졌다. 원인은 엄청난 인도지연이다. 중국 조선업은 기본설계능력이 없어 선박건조 지연이 심각하다. 이로 인한 선박계약 해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본설계능력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중국 조선업은 한국과 달리 10여개에 달하는 설계외주센터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설계인력이 100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설계능력도 초보자 수준이다. 생산성 또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현재 중국 최대 민영조선소로 꼽히는 양쯔장조선은 선박건조 1척에 900명의 인력이 달라붙는다. 한국의 현대미포조선은 선박건조 1척에 130명이 투입된다.

중국이 건조한 선박의 품질도 매우 낮아 선박의 가치훼손이 심하다. 진하이조선이 2014년에 인도한 79K급 벌크선 뉴엑설런스(New Excellence)호는 선박 인도와 동시에 52.9% 하락한 중고선 가격으로 매매됐다. 동일한 시기에 현대미포조선의 베트남 자회사인 현대비나신조선이 2012년에 인도한 56K급 벌크선은 신조선가 대비 13.8% 할인돼 거래됐다.

또 중국 조선소가 건조한 선박은 해운업 경쟁의 핵심인 연비 경쟁력이 낮은 단점이 있다. 양쯔장조선이 건조한 벌크선들은 업계 평균과 비교해 동일속도에서 연료소모량이 10~20% 더 많다. 연비가 좋지 못한 중국 선박에 대한 수요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 조선업에 선박을 발주하려는 선주도 사실상 없다. 중국 조선업은 자가 발주로 수주잔고를 부풀린다. 중국 조선업은 올해 1분기에도 인도량이 줄었다. 인도가 지연된 만큼 선주들에게 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 박무현 애널리스트는 “중국 조선업은 붕괴되고 있다”며 “이 같은 이유로 한국 조선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차츰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최근 원화강세와 철강가격 상승은 한국 조선업 수주전망을 긍정적으로 이끌 것”이라며 “조선업 주가가 다시 상승 반전하고 구조조정 이슈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나금융투자는 업종 내 최선호 종목으로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을 제시했다. 목표주가로는 각각 15만원과 10만원을 내놨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