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가 지난 1일(현지시간)부터 4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다. 월가를 비롯한 전세계 금융계 거물은 물론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정부 고위 관료,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등 전세계 55개국에서 총 3500여 명이 참석했다.

19번째를 맞는 올해 밀컨 콘퍼런스는 ‘인간의 미래’(The Future of Humankind)를 주제로 총 200개 세션이 진행됐다. 강연자로 나선 700여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떤 투자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인지 저마다의 해법을 내놨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 등이 바꿔놓을 미래를 전망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심도 깊게 논의됐다.


(왼쪽부터) 제이 훌리스테이트 스트리트 회장,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 토마스 핀케 밥슨 캐피탈 매니지먼트 회장, 사니 베치로스 록크리크그룹 CEO, 스티브 타낸바움 골든트리 에셋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사진제공=밀켄 연구소

◆저성장 뉴노멀 시대 '변동성' 대비해야
콘퍼런스 참석자들은 세계 경제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과거의 경제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서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와 ‘돈 풀기’ 같은 전통적인 정책 수단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은 “세계 경제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며 “일본이나 유럽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원자재를 수출하고 제품을 만들어 선진국에 공급하는 신흥국 모델은 점점 더 발전하기 힘든 모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조셉 훌리 스테이트 스트리트 최고경영자(CEO) 역시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미국의 기준금리는 제로에 가깝고 많은 선진국은 마이너스까지 떨어지면서 중앙은행이 다음 경기 침체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란 확신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정책 수단을 다 써버린 상황이어서 경기 침체가 다시 발생하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다.


세계 경제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세계화’로 대변되는 연결성이다. 각 나라의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다 보니 선진국의 경기 침체가 개발도상국가로 전염되고 반대로 개발도상국가의 위기도 선진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스티브 타낸바움 골든트리 에셋 매니지먼트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 여름 중국 금융시장 급변에서 경험했듯이 신흥시장과 선진시장의 연결성이 높아졌다”며 신흥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면 결국 선진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흥국 위기의 진앙지는 ‘관광객 투자자’ 때문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해외 투자자들은 잡지에 나와 있는 휴양지를 가보고 싶어 하고 그곳에서 휴가를 즐기고 싶어 하지만 조금만 불안한 징후가 보이면 바로 공항으로 달려간다. 경제가 성장하면 고수익을 찾아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핫머니’가 몰려들지만 경제가 악화되는 징후가 포착되면 곧바로 짐을 싸기 때문에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 발생하는 셈이다.

사니 베치로스 록 크리크 그룹 설립자 겸 CEO는 “신흥시장에 자본이 유입되면 (신흥국의) 자산 가치가 크게 높아지고 반대로 자본이 빠져 나가면 자산 가치가 폭락한다”고 설명했다. 신흥시장의 자산 가치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이 급변하는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설립자, 투자비결은

밀컨 콘퍼런스에는 월가의 ‘큰 손’들도 대거 참석해 자신의 투자 스토리를 들려줬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설립자인 레이 달리오 회장은 자신의 성공 비법을 ‘실패’와 ‘반대’로 요약했다.

달리오 회장은 “지금까지 내가 내린 투자 결정의 3분의 1은 틀렸다”며 자신을 ‘실패 전문가’라고 정의했다. 그가 실수를 성공으로 바꿔놓은 비법은 '기록'에 있었다.

그는 “실수할 때마다 내가 내린 결정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했다”며 나중에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최대 실수는 1982년을 주식시장의 저점으로 본 것이라고 털어놨다. 당시 멕시코는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는 남미 국가들의 부채 만기가 연장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오판으로 판명나면서 큰 손해를 입었다.

달리오 회장의 또 다른 비법은 ‘컬트(종교적 광신)적으로 반대하는 기업문화’를 꼽았다. 그는 “홀로 생각하면 잘못된 결정을 하지는 않을까 우려했고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며 “사람들은 잘못된 판단을 확신하고 행동하는 바람에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불필요한 비극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유럽으로 눈 돌리는 '행동주의 투자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반대, 편의점업계의 '시조'로 불리는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 사임.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작품이라는 것.

밀컨 콘퍼런스에 모인 기업 사냥꾼들은 이처럼 아시아와 유럽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 먹잇감을 더 이상 발견하기 어려워지면서 해외, 특히 유럽과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기업을 향한 이들의 공격도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

로빈 랜킨 크레딧 스위스 그룹의 글로벌 인수합병(M&A) 부문 공동 대표는 "올 들어 행동주의 투자자의 해외 활동은 30% 증가했다"며 “전통적인 행동주의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스트앤영 스티브 크로우스코스 부회장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과거 헤지 펀드들보다 더 주주들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미 유럽 기업 투자자들은 공개적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가치를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니퍼 네이슨 JP모건 체이스의 IT 투자 부문 대표는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행동주의 투자자들은 강력한 메시지와 큰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표면적으로는 변화를 요구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지분 가치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주목받는 CEO나 유명한 기업을 목표로 정한다"고 지적했다.

◆빠지지 않는 화두 중국, 증시 거품 우려

월가 거물들은 중국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지만 중국 경제 전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중국 증시에 대해서는 ‘거품’(버블)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은 “(중국 정부 관료들은) 주식시장의 접근성을 높이면 개혁의 과실을 더 많은 국민들이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너무 과도하면 버블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중국 금융시장이 연착륙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중국이 과거 우리가 주택시장이 좋으면 사회 전체에도 이득이 되고 이 때문에 주택을 소유하도록 유도했다”며 “이 과정에서 거대한 버블이 발생했고 지금 중국은 우리가 15년 전에 했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국 전문가인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는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며 일각의 중국 경제 붕괴 위기론을 반박했다. 그는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역임했다.

로치 교수는 “중국은 과거 30년간 세계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거대한 소비시장으로 변신했다”며 “세계 2위 규모의 경제가 구조변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 정부는 수출과 내수 간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필요한 정책적 대응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월 말 이후 중국 경제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잦아들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해소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니 베치로스 록 크리크 그룹 설립자 겸 CEO도 “중국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수출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과거 20~30년간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예외적인 성장세를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