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신세계, 화장발 누가 더 잘 받을까
한낮 기온이 30도까지 치솟는 요즘, 재계에 부는 여풍이 날씨만큼이나 핫하다. 일명 ‘다이아 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계 딸들이 경영 일선에서 뜨거운 활약을 하고 있어서다. 이들이 종종 맞부딪치는 경우도 많다. 과거 호텔·빵사업이 그랬다면 최근에는 이제 막 개장한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을 두고 승부전이 치열하다.
‘딸들의 전쟁’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주도한다. 삼성가의 딸들로 고종사촌 지간이기도 한 두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업 영역에서 숙명의 맞대결을 펼쳤다. 이번 전쟁터는 ‘화장품’ 시장이다.
◆ 삼성가 딸들 '화장품 매치' 승자는?
신세계인터내셔날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 사장은 ‘뷰티산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삼고 지난 17일 경기 오산시 가정산업단지 내 화장품 제조공장 착공에 들어가면서 이미 화장품사업을 벌인 이 사장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인 오산공장은 총 5층 4000여평 규모. 1층부터 3층까지는 생산공장, 4층엔 연구개발(R&D)센터, 5층엔 지원시설이 들어선다. 이르면 내년 1월부터 공장이 가동되며 스킨케어와 색조제품 등 약 1500톤, 수량으로는 약 5000만개를 연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신세계가 화장품제조업에 야심차게 뛰어든 배경은 정 사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됐다는 평이다. 정 사장은 K뷰티 확장 흐름을 타고 제조공장부터 유통망까지 갖춰 신세계표 화장품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시장에 내놓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2020년까지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에 맞서는 이 사장의 화장품 열정도 만만치 않다. 이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는 2011년부터 한국 화장품 멀티브랜드숍 ‘스위트메이’(Sweet May)를 운영 중이다. 스위트메이는 중소기업 화장품브랜드를 한곳에 모아놓은 한국 화장품 중심 편집매장으로 현재 마카오 3곳과 홍콩 5곳 등 쇼핑 중심가에 8개 매장이 있다.
주요 타깃은 화교권과 20~30대 여성고객. 당시 국내 화장품 전체 수출 중 과반수인 60%가 중국에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해 스위트메이를 설립했다는 게 호텔신라 측 설명이다. 이 사장 역시 스위트메이를 통해 국내 경쟁력 있는 화장품을 제공함과 동시에 해외 판로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유통과 마케팅 노하우를 공유하겠다는 전략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호텔에 이어 명품, 베이커리사업 등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온 두 사람이 이제 뷰티산업에서 한판 승부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면서 “K뷰티 성장과 더불어 여성 오너의 자존심을 누가 지키게 될지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 ‘초라한 성적’ 굴욕… 성공에는 물음표
하지만 두 사람의 야심찬 계획과 달리 이들의 화장품사업 성공에 물음표를 찍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 이 사장의 스위트메이는 수년째 지지부진한 실적을 이어왔다. 마카오점의 경우 2014년 간신히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홍콩법인은 매년 적자를 거듭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에 따르면 호텔신라 홍콩법인은 최근 3년간(2013~2015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매출액은 107억5547만원이며 당기손실액은 8억3587만원을 기록했다. 2013년 흑자 전환한 마카오법인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호텔신라 마카오법인은 지난해 기준 매출액 163억228만원을 기록했지만 당기손익은 29억5995만원에 불과하다.
정 사장이 2012년 60억원에 인수한 색조화장품업체 비디비치코스메틱도 마찬가지다. 인수 후 3년간 적자를 면치 못하다 지난 1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흡수합병됐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비디비치의 독립경영을 위해 총 110억원을 추가 투자했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매출은 2013년 132억원, 2014년 105억원으로 매년 줄었고 당기순손실도 2013년 43억원, 2014년 67억원 등으로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이어지면서 정 사장의 ‘뷰티 실패작’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뷰티업계 한 관계자는 “뷰티가 주목받는 효자산업인 데다 고속성장 중인 것은 맞지만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전체 시장의 60%를 독식하는 치명적인 난관이 있다”면서 “이 틈에서 경쟁력을 갖기란 아무리 대기업 딸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스위트메이의 실패도 아모레퍼시픽이 홍콩사업 강화에 나선 상태에서 이 사장 측이 스위트메이 내 설화수와 라네즈브랜드 제품 판매 금지를 내리면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면서 “정 사장은 비디비치로 쓴맛을 봤지만 뷰티산업의 성장가능성을 높게 보고 되레 규모를 키워 정면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우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또 다른 성과 낼까, 아픈 손가락 될까
재계 여성 경영인을 대표하는 이 사장과 정 사장. 두 사람에 대한 업계 평은 긍정이 주를 이룬다. 이 사장은 탁월한 위기관리능력과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호텔신라를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시내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하며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 사장도 조선호텔과 신세계 본점 식품관 리뉴얼을 이끌면서 럭셔리 신세계를 주도한 인물로 ‘혁신 리더’라는 별칭을 얻었다. 정 사장의 경영능력 시험대로 평가받는 시내면세점사업도 일부 명품 유치에 성공하면서 최근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이런 그들이 아직 넘지 못한 화장품사업. 두 사람이 주목하는 화장품이 아픈 손가락으로 남게될지 아니면 또 다른 성과로 평가될지 재계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