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가수. 얼핏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의사와 노래로 생명을 살리는 가수가 만났다면? 지난 21일 인천 송도 트라이볼 야외무대서 펼쳐진 ‘생명존중 콘서트’가 그 역사적인 현장이다. 주인공은 가수 김재희와 김영모 인하대병원장.
‘사랑할수록’을 부르며 90년대 부활을 최고 그룹으로 이끌었던 김재희는 6년 전부터 자살 예방과 아동학대 방지를 외치며 무대가 아닌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생명존중을 내건 자선콘서트를 연 것.

그러나 기업이나 지자체의 든든한 후원없이 혈혈단신으로 콘서트를 열다 보니 노래연습부터 장소선정, 진행, 게스트 섭외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자선콘서트여서 공연 수익금도 전무했다. 


그런 그에게 인하대병원이 손을 내밀었다. 개원 20주년 기념행사를 생명존중 콘서트로 대체하면서다. 인천의 대표병원으로 자리매김한 인하대병원으로서는 20주년에 걸맞은 큰 행사를 치를 법도 했을 터. 하지만 수소문을 통해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가 자선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에 기꺼이 그의 손을 잡았다. 


“지금껏 개원 기념일은 병원 내부행사로 진행해왔죠. 그런데 올해는 20주년을 맞았고 뭔가 뜻깊은 기념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생명존중 콘서트를 여는 김재희씨를 알게 됐어요. 좋은 취지에 공감했고 지역사회에도 보람된 일인 것 같아 기념식에 들어갈 예산을 기꺼이 콘서트를 여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김영모 병원장의 선택은 옳았다. 생명존중 콘서트는 병원 임직원들의 공감을 얻었고 인천시민과 송도를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에 인간존엄의 소중함을 새기게 했다. 거대한 20돌 기념식은 없었지만 자살, 아동학대 등 생명 경시풍조로 신음하는 우리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사실 김재희에게 생명존중 콘서트는 가슴아픈 사연을 품고 있다. 앨범 100만장이 팔린 ‘사랑할수록’은 처음엔 그의 형 김재기가 불렀던 노래. 불의의 교통사고로 형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이 형을 대신해 그 노래를 불렀고 가수가 됐다. 하지만 형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절친이던 배우 겸 가수 최진영과 그의 누나 최진실, 그리고 ‘투투’로 활동하던 가수 김지훈까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김재희의 곁을 떠났다. 

“주위에 자살한 사람이 많다 보니 죽음의 고통 속에서 늘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등산을 시작했죠. 어느날 히말라야를 올라가는데 너무 힘들어서 ‘살려줘’라고 소리쳤지 뭡니까? 그때 느꼈어요. 너무 힘들면 오히려 삶의 욕망이 더 생긴다는 것을…. 그 깨달음 이후 죽음에 가까이 가고자 한 사람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21일 인천 송도 트라이볼 야외무대서 펼쳐진 ‘생명존중 콘서트’. 이 콘서트는 부활의 전 보컬 김재희가 주관한 자선행사. 인하대병원이 개원 20주년을 맞아 콘서트를 후원했다. /사진제공=인하대병원
생명존중 콘서트는 초기 ‘자살예방 콘서트’로 불렸다. 그도 그럴 게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친구들을 자살로 떠나보내야 했던 김재희는 그 아픔을 지난 3년 동안 총 33회에 걸친 생명존중 콘서트로 달래왔다. 송도 콘서트는 그 서른네번째 울림이다.
이번 콘서트를 하면서 크게 바뀐 게 있다면 인하대병원의 전폭적인 지원 외에 동료가수와 뮤지컬배우, 합창단 등 생명존중을 함께 외치겠다는 ‘친구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자살예방의 메시지를 담은 자작곡을 처음 소개한 것도 김재희로선 가슴벅찬 일.


'너와 내가 놓치면 떨어진다. 끈을 계속 갖고 가야 한다. 시작은 대화다'.

그가 가슴으로 쓴 자작곡 ‘끈’에 나오는 가사다. 부활의 4대 보컬로 이름을 날렸던 김재희. 생명존중을 향한 그의 노래는 이제 우리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소중한 끈이 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