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한 시민이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글을 남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DB
최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공중 화장실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사건’에 대한 논쟁이 가시질 않고 있다. 특히 사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면서 남녀 간 비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지난 21일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집회가 열린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붙여진 메모지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남녀 간 논쟁은 계속됐다.
수 천 개가 넘는 메모지 안에는 추모와 사과의 뜻을 전한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곳곳에 있는 또 다른 메모에서는 남년 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쟁도 엿보였다.
한 시민은 A4 사이즈 남짓한 분홍색 용지에 ‘여자라서 죽은 게 아니고 운이 안 좋아 피해를 입은 겁니다. 그런데 스티커로 남자혐오를 붙여놓고 댓글로 남자들을 싸잡아 욕하는 행동은 여자들의 미개함을 스스로…’라는 내용을 적어 길바닥에 붙였다.
그러자 해당 용지 옆에는 위 메시지를 가리키며 ‘이분은 지금 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여성혐오가 원인이라 지적받는 게 불편하다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이분은 지금 죽은 여성을 추모하는 건 좋지만 날 불쾌하게 하는 건 싫다라고 말하고 계십니다’라는 비판적 겨냥 글들이 꼬리를 물었다.
여기에 ‘범인이 정신병자니까 여혐범죄 아니라는 당신이 바로 여혐종자’, ‘칼보다 포스트잇이 무서운 그대들…당신들이 만든 여혐사회에서 범인이 탄생했습니다’ 등의 신랄한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여성들의 분노 가득한 메모지 사이에는 남성들의 사과글도 눈에 띄었다.
자신을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21세기 남자’라고 표현한 시민은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들이 평소에 겪는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던 골목길, 타던 택시를 그들은 마음 놓고 다니고 탈 수 없었다는 것을’이라며 ‘지금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는 살인마가 아니다 라는 선 긋기가 아니다. 이러한 차별적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다’라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모물결이 자신도 범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했다. 그러면서 범행을 ‘여성 혐오’로 단정 짓고 성별 간 대결을 조장하는 추모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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