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사들여 헐값에 나눠주고 ‘부채늪’에 빠지는 LH


# 지난달 10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인터넷 청약센터. 경기 부천시 소재의 상가주택용지 추첨청약에 2만7000명 이상이 몰리자 전산이 마비됐다. LH는 신청마감시간을 하루 더 늦춰 다음날로 연기했다.

# 같은달 23일 LH 서울지역본부가 경기 남양주시 별내지구의 아파트용지를 추첨분양하는데 716개 업체가 뛰어들었다. 이 부지는 아파트 585가구를 지을 수 있는 면적. 건설사들이 입찰에 참여하려고 낸 예약금은 2조원을 넘었다.


LH 진주사옥. /사진=머니투데이 DB

LH가 분양하는 상가주택용지는 수익형부동산 중 베스트셀러다. 1층을 상가 임대하고 위층에 주인이 거주하는 형태로 올해 수도권 신도시의 청약경쟁률이 높게는 수천대1을 기록했다. 당첨 뒤 웃돈을 받고 파는 사례도 많다. 아파트용지를 둘러싼 건설사들의 경쟁도 치열해 청약신청에 계열사와 협력업체, 심지어 페이퍼컴퍼니가 동원된다.
이처럼 LH 주택용지의 인기가 높은 비결은 무엇일까.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이다. LH 주택용지는 추첨방식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데 시세보다 싼값에 매입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가기관이 공공성을 이용해 땅을 헐값 매각하고 일부 개인이나 건설사의 이익을 불려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자기 땅이면 그렇게 팔까?

LH의 주택용지는 ‘택지개발촉진법’에 준거해 개발된 땅이다. 1980년 정부가 도시에 주택공급량을 늘리고 주거난을 해소하자는 목적에서 제정한 법이다. 공공택지는 저소득층에 임대주택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농지나 건물 주인에게 시가 대신 공시지가에 따라 금액을 보상한 후 취득한 땅인 셈이다. LH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보유 중인 미착공 부지는 약 45만호분이다.


문제는 공공택지를 추첨방식으로 분양해 특정인이나 기업에 이익을 준다는 점이다. 정부정책상 공시지가로 분양하고 무이자할부 등 비용절감 효과가 반영돼 매각가는 시세대비 85% 수준이다. 따라서 가격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택수요가 공급대비 많아서 땅을 강제수용해 공공택지를 조성하고 건설사에 땅과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주택건설을 촉진했으나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프로세스로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와 LH는 공공택지를 시세나 감정가에 따라 매각하면 분양가에 영향을 준다는 입장을 보인다. 경쟁입찰 시 원가 인상분이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고 분양자에게 전가된다는 주장이다. 국토부와 LH 관계자는 “경쟁입찰하면 부채감축과 수익성에는 도움이 되지만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이나 분양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도 사실은 힘을 얻지 못한다. 임대주택의 경우 일부 분양전환 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분양가상한제는 표준건축비에 택지비를 더해 분양가를 산정하는 제도인데 임대주택의 경우 예외를 허용한다. 설령 임대주택이 아닌 일반아파트를 짓고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해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강훈 법무법인덕수 변호사는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해 일반아파트로 짓더라도 건설사의 개발이익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건설사들은 인기 높은 공공택지를 사려고 많게는 20~30곳의 계열사나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공공택지의 경우 주택사업 등록업자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고 추첨으로 낙찰자를 뽑다 보니 계열사나 페이퍼컴퍼니를 많이 동원할수록 당첨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국토부에 따르면 계열사와 모회사 간 택지거래가 자주 발생해 지난 2008년 이후 공공택지 252필지가 매각된 가운데 100필지가 1년 안에 전매됐다. 정부가 전매를 제한하지만 계열사나 페이퍼컴퍼니가 시행사로서 모회사에 시공을 맡기고 규제를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계열사를 동원해 부지를 매입하고 모회사와 공사도급을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매를 금지해도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의 LH아파트 조감도. /사진=머니투데이 DB

◆사유재산 빼앗아 건설사 배불리기?
한편으로는 LH의 택지개발사업이 건설사에 과도한 이익을 주는 반면 이에 따른 손실은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와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국감에서는 LH가 내년까지 공공택지를 매각해 주택수요 5만호를 해소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건설사의 이익을 배려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매각 예정인 수도권 5개 지구(화성동탄 2곳, 인천가정 2곳, 하남감일) 4883세대의 부지를 매입한 건설사의 추정이익은 약 2500억원이다.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공공택지는 국가 책임 아래 강제성을 가지고 만든 땅을 공익의 명분으로 공시지가에 매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2014년 감사원은 LH의 택지사업으로 4조원대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인근 공급물량이 과잉에 이르렀음에도 무책임하게 공사를 강행해 미분양 사태를 일으켰고 부채의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 LH가 택지사업으로 회수하지 못한 돈은 46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부지를 매각하고 대금을 못받아 연체된 금액은 2조8797억원에 달했다.

이강훈 변호사는 “택지사업은 거주민의 희생을 요구하며 사유재산을 강제수용하고 경제적 손실을 가했음에도 현재의 정부정책은 기업임대주택(뉴스테이), 부동산투자회사(리츠) 등 대형건설사를 지원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김상희 의원도 “국토부가 추진하는 뉴스테이는 건설사의 수익률 5%를 채워주기 위해 각종 특혜로 가득한 사업이다. 거주민들로부터 강제수용한 땅을 건설사 수익에 제공하는 것이 공익인가”라고 되물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