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해서 성공한 사례가 적다 보니 선순환구조를 만들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창업해서 큰돈을 번 사례가 많이 생긴다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그들은 왜 성공한 퍼스트 무버가 되었나>의 공동저자 이장균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 기업이 늘어나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국가차원의 ‘선순환구조’를 꼽았다. 좋은 사례가 있어야 더 많이 도전하고 성공확률도 높아지는 만큼 사회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이장균 연구위원과 인터뷰를 통해 퍼스트무버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

◆시장의 '성공 가능성'에 집중


그동안 우리나라기업들은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전략으로 경쟁하며 성장해왔다. 1970년대 이전부터 일본업체들이 주로 쓰던 전략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먼저 만들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 진출한 시장을 빠르게 쫓아가는 데 집중했다. 새로운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이 적고 투자대비 수익성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스트무버가 되려면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야 해서 긴 안목을 갖고 고통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패스트팔로어가 늘어나며 경쟁이 치열해졌고 따라하기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시장을 혼자 차지할 수 있는 달콤한 매력 때문에 퍼스트무버에 도전하는 업체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사진제공=이장균 연구위원

“퍼스트무버 전략은 기존에 없던 수요를 일으켜야 하고 시장을 만들었다고 해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도 큽니다. 결국 중요한 건 시간인데요, 업계에선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을 3년에서 5년쯤으로 보고 있어요. 회사가 자리 잡는 시간과도 비슷하죠. 개발하려는 제품과 기술수준 성숙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당장 성과를 내기보다 길게 내다보고 시장을 개발해야 하는 점이 업체들에겐 숙제가 될 겁니다.”
기업에게 시간은 돈이다. 눈앞의 수익보다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면 그만큼 기업의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그동안 우리나라 중소업체들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데 주력해왔고 시간이 흐르면서 경쟁력을 잃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기존방식으론 대기업에 납품하는 데 그칠 겁니다. 내수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을 거고요. 힘들겠지만 그런 시각을 버려야 성공할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미국의 구글을 보면 납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장을 개척했기에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구글이 키워놓은 시장을 기존 전통업체들이 활용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여러 업체들이 큰 효과를 누린다고 봅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패스트팔로어 전략이 최선으로 꼽혀온 거죠.”

아울러 그는 “퍼스트무버가 되려는 업체들이 가장 집중해서 살펴야 할 건 시장 성공 가능성”이라고 전했다. 과거엔 선두업체를 쫒아가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성공 가능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시장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특히 그는 앞으로 글로벌시장에 대응하는 역량이 중요해질 거라고 내다봤다.


“글로벌화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업체들도 마찬가지로 중요해요. 예전처럼 제품을 만들어 파는 시장이 내수에 머문다면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은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해외에 거점을 두고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글로벌기업들이 강세를 보이는 시대거든요. 특히 벤처기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장점인 빠른 속도감을 앞세운다면 오히려 대형업체보다 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시장이 있고 기술력이 있고 글로벌 사업전개까지 더해지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선순환체제로 '벤처정신' 살려야

“앞으로 10년 동안 업계 전반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기존의 제품과 기술을 응용하던 것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개념도 생겨나는 추세니까요. 최근엔 IoT(사물인터넷)서비스가 등장했고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처럼 앞으로는 다양한 아이디어 싸움이 본격화되리라 전망합니다.”


이 연구위원은 조심스레 앞으로의 상황을 내다봤다. 그리고 그는 벤처기업들의 도전정신이 퍼스트무버로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거라 평하며 말을 이어갔다.

“ICT강국이라는 것 하나로 앞서갈 수 있고 우수한 인력과 시장도 충분하기에 이런 환경적 요소를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큰 회사들이 사내벤처를 육성하고 있지만 이미 사업을 하던 업체들은 기존 흐름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대기업이 선도업체를 인수해서 오히려 시장에서 도태된 사례가 적지 않아요. 따라서 이런 노력은 벤처기업들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정부도 중요성을 느껴 벤처캐피탈이나 창업자금지원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잖아요.”

결국 새로운 흐름에 맞춰 벤처기업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벤처기업 창업 성공사례를 만들고 선순환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퍼스트무버로 도약할 기업들이 늘어날 거란 게 그의 설명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