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증권 여의도 본사. /자료사진=머니투데이DB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증권사 횡령 피해. 최근 증권사에서 또 고객의 돈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해 금융감독원이 긴급 현장점검에 나섰다. 점검대상이 된 한국투자증권과 대신증권에서 발생한 총 피해 추산 규모만 100억원에 달한다.◆어제 오늘 일 아닌 증권사 횡령사건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달 23일 대신증권을 시작으로 최근 고객 자금 횡령사건이 발생한 증권사 5~6곳에 대해 긴급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지난달 28일에는 NH투자증권, 지난달 29일에는 한국투자증권을 현장점검했다.
금감원은 이번 점검에서 각 증권사의 시스템 리스크가 없었는지, 예방노력은 충분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현장점검 형태를 띠지만 상당한 비위가 발각될 경우 검사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증권사에 제재조치가 내려질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횡령사건이 발생한 증권사 위주로 해당 사안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해당 증권사 전반에 대한 검사는 아니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에서는 고객 돈 49억원을 횡령한 지점 직원이 지난해 적발돼 지난 3월 1심에서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대신증권 직원은 고객 돈 10억원을 받고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이처럼 증권사 횡령사건은 심심찮게, 생각보다 자주 발생했다. 거의 매년 되풀이되는 상황에 일각에서는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를 거론한다.
◆직원 횡령, 개인보다 증권사의 문제
금감원이 증권사에서 발생한 횡령사건을 한 직원의 문제로 보지 않고 현장점검에 나선 것은 해당 회사의 대응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투자증권 강서지점에서 발생한 횡령사건의 경우 피의자 A차장이 2014년부터 최근까지 고객과 지인에게 "25%의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수십억원의 돈을 받은 뒤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 금감원에 신고된 피해규모만 20억원에 달한다.
규모가 커진 이유는 한국투자증권의 늑장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내부감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5월11일이었고 A차장을 '특정경제가중사기죄'로 고발한 것도 지난달 16일이다. 고객들이 한국투자증권에 민원을 넣고 검찰에 고소하자 A차장은 이미 연락을 끊고 도주한 후였다.
대신증권 부천지점에서도 최근 개인계좌를 활용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지점 직원은 지인과 동료들로부터 자신의 은행계좌로 17억원을 투자받은 후 돌려주지 않아 고소를 당했다.
B증권사 관계자는 "직원 개인의 은행계좌를 통한 금융 거래는 사실상 적발하기 쉽지 않다"며 "피해자들도 처음에는 아니라고 했다가 뒤늦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증권사 직원의 횡령금액 규모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한국투자증권의 사례를 비롯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증권사에서 발생한 횡령 누적금액은 100억원을 넘는다.
C증권사 관계자는 "불황으로 증권업 성과보수가 적어진 게 요인"이라며 "또 개인의 은행계좌를 활용해 횡령하다 보니 증권사 입장에서도 상시로 감시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횡령 막으려면 정상적인 시스템 활용해야
증권사들은 내부감시 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사건 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투자자의 피해규모가 갈수록 커져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의 안일한 대응이 문제라는 얘기다.
매년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지만 해당 증권사들은 문제를 감추는 데 급급한 나머지 문제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횡령금을 거의 회수해서 굳이 금융감독원이나 투자자에게 관련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증권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단순히 투자자들의 금전적 손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증권업계 전반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어 투자자와의 신뢰관계가 중요한 금융투자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증권사 자체적으로 감시와 확인을 꼼꼼히 할 수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지 않을 경우 유사한 사고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증권사 횡령의 원인이 대박을 쫓는 투자자의 '투기심'이라고 지적하며 고객들이 현혹되지 않아야 횡령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D증권사 관계자는 "저금리로 적금과 정기예금 이자가 얼마 안된다"며 "높은 수익을 올리고 싶은 고객들이 주식쪽으로 많이 몰리면서 증권사 횡령이 늘어나는 배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고객의 투자금이 증권사 계좌로 입금되면 주식 거래를 한 뒤 주식 실물은 예탁결제원에, 남은 현금은 전액 증권금융에 예치한다. 이 같은 시스템에서는 개인이 맡긴 투자금은 증권사 밖의 공인기관에 100% 예치돼 직원 개인이 투자금을 빼돌릴 수 없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증권사 계좌가 아닌 직원의 은행계좌로 입금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는 말에 속아 투자방식이나 규모, 투자대상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투자에 나선 게 결국 화근이 된 셈이다.
E증권사 관계자는 "사기 사건에 연루되는 투자자 대부분이 투자보다는 투기에 가깝게 돈을 맡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처럼 외부 은행계좌를 통해 이뤄지는 거래의 경우 정상적인 감사활동으로는 도저히 걸러낼 수 없다"며 "고객들이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거래를 해야 횡령을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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