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마을들은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른다. 대한석탄공사가 구조조정을 하는 등 우리나라 석탄 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광 전성기를 간직한 지붕 없는 박물관, 철암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시간을 기약할 수 없는 시간여행, 철암으로 떠나보자.


철암 옛모습.

◆철암탄광역사촌
철암 우체국이 폐쇄 위기다. 하루 우편물이 10개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은행도 문을 닫으려고 한다. 기관이 철수하면 주민이탈도 가속화 될 것이다. 그러면 탄광역사촌은 어떻게 될까. 아직은 누구도 존폐를 예측할 수 없다. 탄을 사가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들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줄을 서야 했던 이곳, 도시의 발전 속도를 건축이 따라가지 못해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던 곳, 광부들은 매일 선술집에서 술과 고기를 먹었고, 그 시절에 컬러TV를 놓고 살았던 사람들…. 바쁘고 활기찼던 날들이 재기발랄한 간판에서 느껴진다. 산울림, 페리카나, 붐비네, 젊음의 양지, 골뱅이 PC방, 진주성, 봉화식당…. 옛날 간판 그대로, 건물 역시 그대로다. 하지만 지금은 치킨을 먹거나 차를 마실 수는 없다. 박물관으로 기능을 바꿨기 때문이다.

화살표를 따라 들어가는 건물이 모두 박물관이다. 페리카나는 현재 종합안내소다. 2층은 기획전시실로 주로 옛 자료들이 전시됐다. 장부, 학생들의 성적표, 계약서 그리고 광부들이 매일 마셨을 소주(삼호소주) 병도 보인다. 한 전시관에서는 태백과 철암의 유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광부들의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게 선술집이나 가정집, 마을 골목을 재현했는데 부엌과 난방시설에 빠지지 않고 연탄과 조개탄이 등장한다. 1980년대 석탄 산업이 융성했던 시절에는 광부의 가족들은 비교적 윤택한 삶을 살았다. 동네 개들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은 탄광촌마다 듣는 유명한 일화다. 그렇지만 가장은 늘 생사를 오가는 삶이었으니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은 생활이었다.


건물들은 증축의 흔적을 남겼다. 지금은 실내로 들어와 있던 벽간판이 원래는 옥상 벽이었다. 이것이 그대로 남아 3층 실내벽에 예식장 간판이 선명하다. ‘안으로 들어와 있는’ 외벽을 지나 전망대에 올라 본다. 전망대에서는 철암역 쪽으로 철암역두선탄시설이 보이고 반대편으로는 지금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산동네가 보인다. 아래로는 철암천이 흐른다.


철암탄광역사촌.
탄광역사촌 전시실.

유명한 ‘까치발’을 보려면 전시실에서 나와 산동네로 향햐는 신설교에 서야 한다. 갑자기 사람이 많아진 탄촌에서 건물을 지을 시간조차 없자 원래 있던 건물을 증축하고 조금이라도 넓게 만들기 위해 철암천 쪽으로 공간을 확장했다. 여기에 넓어진 건물을 지지하기 위해 까치발처럼 기둥을 만들어 받쳤다. 아슬아슬 위태롭다. 한층 위에 한층, 그 위에 또 한층을 올렸기 때문에 어떤 건물은 1,2,3 층의 자재도 다르고 창문이나 스타일도 조금씩 다르다. 철암역 건너편은 건물 없이 흔적만 남은 것으로 보아 이미 여러 건물은 철거됐고 지금 보이는 몇 개 건물만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깥에서 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건물 스스로 탄광의 번영과 몰락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철암역두선탄시설

철암역 쪽으로 철암역두선탄시설이 있다. 산은 검은데 그 아래 건물은 하얗다. 그 때문인지 더 크고 웅장하게 느껴진다. 자세히 보면 유리창이 없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궁금해지는 건물이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채굴된 무연탄을 용도에 맞게 선별하고 가공 처리해 기차로 운반하기 쉽도록 고안된 시설이다. 건물 아래 쪽에 뚫려있는 9개의 구멍이 선별된 탄을 화물칸에 직접 쏟아 붓는 출구다. 그러니까 건물 아래로 기차가 정차하면 칸마다 정해진 규격의 탄이 쏟아져 내려온다. 용도를 알고 보니 이 건물의 하얀 칠이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안쪽은 분명 탄과 먼지로 검은 세상일 텐데 외벽이 하얀색이니 탄이 쏟아질 때는 확실히 구별되는 효과가 있겠다. 검은 산, 하얗고 투박한 건물, 그 아래 기찻길과 화물칸들이 매우 거칠고 약간은 스산하게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안성기·박중훈 주연의 ‘인정사정 볼것없다’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것이다. 석탄 산업 자체가 일제의 전쟁욕심으로 가속화됐으니 그에 따른 시설도 그들에 의해 지어졌다. 수탈의 흔적이다. 어쨌든 이것은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로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상징적인 시설로 평가 받는다. 2002년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철암역두선탄시설.

◆산동네와 철암연립상가
다리를 지나 언덕에는 산동네가 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몇 가지 조형물이 시선을 잡는다. 일 나가는 광부 아버지가 도시락을 들고 시냇물 건너편 까치발 건물을 향해 손을 흔든다. 건너편 건물에서는 아이를 업은 엄마는 가장을 향해 손을 흔든다. 박물관 구경할 때 보았던 여자의 뒷모습은 이쪽 편에서 남자의 모습과 봐야 완성되는 이야기였다. 꾸며진 실내 박물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함과 감동이 있다. 가장은 막장으로 향하고 아내는 아이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매일 이별하고 매일 재회한다. 이들은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서로를 향해 웃어준다. 절실함이 일상이었던 그들의 생활이 전해진다.


산동네에 오르면 탄광역사촌의 까치발 건물과 선탄시설, 철암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이 많이 빠져나가 폐가가 많고 남은 주민들은 폐가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기도 한다. 쇠락한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고자 했는지 벽화도 그려져 있고 꽃을 키우는 집도 있지만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철암역 옆, 철암연립상가는 그 시절 최고의 ‘멘션’이었을 것이다. 연탄보일러가 들어오는 아파트로 까치발집이나 산동네보다 ‘현대적’인 느낌이다. 그러나 이 또한 세월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최신의 난방 시스템이었던 연탄 보일러는 이제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한 연료가 됐다. 쌓아놓은 연탄으로 건물 벽이 검게 얼룩졌고 건물 옆 작은 골목의 LPG가스통이 오히려 속 편해 보인다. 여기서 연립상가의 벽화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광부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한 작품들이다. 매우 사실적이고 진한 여운이 있다. 여행자들이 탄광역사촌 까치발 건물만 보고 이쪽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지붕 없는 박물관의 일부이니 한번 둘러보면 좋겠다.

동네를 둘러보고 탄광역사촌 앞에 있는 표지석을 다시 생각한다. '남겨야 하나, 부수어야 하나 논쟁하는 사이, 한국 근현대사의 유구들이 무수히 사라져 갔다…' 로 시작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2013년에 남기기로 결정했다. 그 말 그대로 변함없이 남겨지기를 바라며 발길을 돌린다.


[여행 정보]

철암역 가는 법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가곡로 - 오궁교차로에서 ‘제천’ 방면으로 좌회전 - 북부로 - 목계대교 - 하영고가교 - 다릿재터널 - 박달재터널 - ‘영월, 단양, 한방엑스포공원’ 방면으로 우측방향 - 신동교차로에서 ‘단양, 영월, 남제천IC’ 방면으로 우측방향 - 고명지하차도 - 동막교차로에서 ‘영월, 쌍용’ 방면으로 우측방향 - 느릎재터널 - 강원남로 - 각한터널 - 방절터널 - 영월1, 2터널 - 봉래터널 - 반송터널 - 석항1,2터널 - 석항교차로에서 ‘상동’ 방면으로 우측방향 - 영월로 - 연상삼거리에서 ‘태백, 상동’ 방면으로 좌회전 - 석항삼거리에서 ‘상동’ 방면으로 우회전 - 태백산로 - 수라리터널 진입 후 31번 국도 - 이목터널 - 태백산로 - 녹전터널 - 상동삼거리에서 ‘동해, 태백’ 방면으로 우회전 - 태백산로 - 상장삼거리에서 ‘봉화, 장성동, 구문소’ 방면으로 우회전 - 태백로 - 장성터널 - 동점터널 - ‘구문소, 철암, 동해’ 방면으로 좌회전 - 동태백로 - 구문소삼거리에서 ‘동해, 철암동’ 방면으로 우회전

[대중교통]
영동선 철암역
태백시티투어버스 이용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철암탄광역사촌: 검색어 ‘철암탄광역사촌’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철암역: 검색어 ‘철암역’ / 강원도 태백시 동태백로 389
철암역두선탄시설: 검색어 ‘철암역두선탄시설’ / 강원도 태백시 소두동 166

철암탄광역사촌
문의: 033-550-2828 (태백시 관광안내소)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휴관: 매월 2,4주 월요일)

태백시티투어버스
문의: 033-550-2828 / http://tour.taebaek.go.kr
운행요금: 어른 6000원 / 초·중·고생 3000원 / 7세 이하 무료
운행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30분
운행코스: 태백역 - 태백역 - 철암역 - 철암탄광역사촌 - 황지자유시장 - 검룡소 - 용연동굴 - 태백역 - 철암역
통리5일장코스(5일, 15일, 25일): 태백역 - 검룡소 - 통리5일장 - 드라마촬영장 - 철암탄광역사촌 - 365세이프타운 - 구문소 - 태백역

● 숙박
태백오투리조트
: 해발 1100m 고원에 있는 종합리조트로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전망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스키, 다른 계절에는 골프를 즐기는 투숙객이 많다.
예약문의: 033-580-7000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