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업체들과 수입차 오너들이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1일부터 시행한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개정안’이 헌법 제10조 계약의 자유, 제23조 제1항 재산권, 제15조 직업의 자유, 제11조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청구인들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바른은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별표2> 대물배상 지급기준 제3항 대차료의 인정기준액 중 동급의 대여자동차 중 최저요금의 대여자동차를 빌리는 데 소요되는 통상의 요금과 인정기간 중 ‘수리를 위해 자동차정비업자에게 인도해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의 소요된 기간으로서 보험개발원이 산출한 수리기간(통상의 수리기간)’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해석했다.
◆금융당국·보험업계 “문제 바로잡았을 뿐”
손해보험협회는 ‘자업자득’이라는 입장이다. 비싼 수리비와 렌트비 때문에 손해율이 높아졌지만 보험료를 올릴 수 없어 수익이 나빠지는 등 여러 문제가 제기돼 금융당국이 과감한 결정을 했고 보험업계는 이에 따랐을 뿐이란 것.
하지만 한국렌터카사업조합연합회는 “보험업계가 책임질 부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키웠다. 권리를 누리지 못하든 보험료가 오르든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입는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이번 결정으로 100여개의 렌터카업체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볼멘소리도 늘어놨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4월 자동차보험료 합리화방안을 발표한 이후 공청회를 열며 다각도로 조율을 시도했다. 약관을 고치기 전엔 납득하기 어려운 부당한 청구가 많았고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까닭에 합리화방안을 내놨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금융위는 비용이 늘어난 배경 중 하나로 수입차업계의 성장을 꼽았다. 매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값이 많이 비싼’ 자동차도 판매가 덩달아 늘었고 결국 수리비와 렌트비 증가로 이어졌다고 본 것이다. 또 자동차보험 가입 시 서민들의 대물보상한도가 낮아 고가차 수리비를 물어주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를 막고자 대물보상한도를 높이면 또 다른 비용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판단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일부 고가차 오너들의 비양심적 행동이 보험사 적자폭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보험사들은 의무보험으로 정해진 탓에 보험료를 무작정 올릴 수 없지만 고가차 오너들이 경미한 사고에도 보상을 요구하는 등 일부 소비자의 도덕적 해이가 사회적비용 증가로 이어졌다고 봤다. 이를 감안해 금융당국이 보험업계 손을 들어줬다는 게 관련업계의 시각이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10월 펴낸 ‘고가차 관련 자동차보험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대물손해보험금지급액이 사고당 평균보험료 증가로 이어졌다. 특히 사고발생률은 2010년 25%(자차보험기준)에서 2014년 15% 이하로 점차 낮아진 반면 사고당 평균 보험금은 105만9000원에서 134만8000원으로 크게 치솟았다.
◆‘탈 것’이냐 ‘재산’이냐 해석차
보험업계는 그동안 피해차의 연식과 무관하게 렌트가 가능한 차 중 모델과 배기량이 동일한 동종의 차를 기준으로 렌트비를 지급했다. 특히 노후 고가차는 시장가치가 크게 하락했어도 동종의 신차를 지급받아 도덕적 해이를 유발했고 보험금이 줄줄 샌 요인이라고 봤다.
이에 금융당국은 렌터카 제공기준을 피해차와 배기량, 연식이 유사한 동급 렌터카 중 최저요금의 렌터카로 기준을 바꿨다. 운행연한 초과로 동급 렌터카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엔 동일 규모(경형·소형·중형·대형)의 렌터카를 제공하도록 했다.
렌트기간도 피해차가 자동차 정비업자에게 인도된 시점으로 정했다. 소비자보호 등을 고려해 렌터카 제공기간은 최대 30일 이내에서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소요된 기간으로 정했다. 또 부당하게 수리를 지연하거나 출고를 지연하는 등의 사유로 ‘통상 수리기간’을 초과하는 렌트기간은 보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통상 수리기간은 보험개발원이 과거 3년간 렌트기간과 수리작업시간 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산출한 기간(범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쟁점이 생긴다. '배기량과 연식을 고려해 성격이 유사한 동급차종'으로 정의한 렌터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차이가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사용가치’에 중점을 두고 이동수단으로서 바라봤지만 수입차 오너와 렌터카업계는 ‘저장가치’에 무게를 뒀다. 이동수단으로 보느냐 재산으로 보느냐의 차이인 셈이다. 렌터카업계와 수입차 오너가 헌법소원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배기량은 1600cc급이지만 7인승 승합차인 수입차를 동급 국산차로 대체할 때 마땅한 차종이 없다. 이 경우 소비자와 보험사가 이견을 보일 수 있어 ‘자동차의 운행목적’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금융위는 조언했다. 금융위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유사한’ 동급 차종이라는 점을 들어 해석을 달리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목적을 ‘사용가치’에 둔 만큼 소비자가 억울한 경우를 최소화할 장치라는 것.
이와 관련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배기량 1600cc라면 현대 아반떼 등 준중형차로 볼 수밖에 없지만 최근엔 1500cc급의 국산 중형차들이 출시되는 만큼 절충안이 생긴 셈”이라고 전했다.
렌트비와 보험료를 강제할 수 없다는 점도 싸움을 부추겼다. 강제할 경우 공정거래법을 위반하게 돼 제재를 받는다. 문제의 본질은 ‘가격’이지만 이는 시장논리에 맡길 수밖에 없어 조절이 어렵다는 것. 그야말로 이해관계가 꼬이고 꼬인 독특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승자는 보험업계 아닌 국산차업계?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산차업계는 이번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다. 특히 현대차는 ‘제네시스’라는 프리미엄브랜드를 론칭했고 라인업을 보강하고 있어 내심 기대가 크다. 당장 독일 고급차를 능가하긴 어렵지만 장기적으론 충분히 관심을 끌 만하다고 본 것.
현대차 관계자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 등 고급차 오너들이 렌터카로 제네시스 차종을 체험할 수 있게 돼 우리에겐 좋은 기회”라며 “수년 내 일부 고급차 수요를 흡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국산차를 한수 아래로 보는 소비자들의 시각이다. 보험료합리화방안의 벤치마킹 사례인 독일이나 일본은 외제차들이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시장이어서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다. 국민들도 외산브랜드들의 품질보다 자국브랜드가 우수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외제차 오너들이 국산차 품질을 신뢰하지 않아 불만이 터졌고 결국 헌법소원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의 해석과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