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쟁의 판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갖춰라.”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사석에서나 공석에서 부하직원을 만날 때 자주 하는 이야기다.

요즘처럼 치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 선도자) 혹은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시대의 풍조나 유행 등을 이끄는 자)가 돼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권 부회장의 말은 이상적이지만 이루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권 부회장은 자신이 뱉은 말을 가시적인 성과로 보여줬다.


◆사령탑의 역량, 이를 증명하는 보수

삼성전자는 올 2분기 매출 50조원, 영업이익 8조1000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 절반 이상을 IM(IT모바일)부문이 차지한 가운데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도 실적호조를 이끈 공신으로 떠올랐다. 경쟁사보다 앞선 초격차 기술을 바탕으로 2조7900억원의 견조한 실적을 올린 것. DS부문 중 반도체사업은 2조6500억원, 디스플레이패널은 14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디스플레이패널의 실적이다. 사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초 TV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생산라인에 새로운 공정을 도입했다가 불량률이 급격히 높아지는 바람에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대규모 손실을 봐야 했다.


삼성전자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삼성전자 내 최고 ‘사령탑’이자 ‘능력자’인 권 부회장을 지난 4월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전자 DS(부품)부문 사장과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자리에 올리며 상황을 수습해 줄 것을 당부했다. 결과는 대성공. 권 부회장은 삼성디스플레이의 구원투수로 나선 지 100일 만에 흑자를 이뤄내며 자신의 경영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스1 DB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권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급여 10억700만원, 상여금 18억8600만원, 기타 근로소득 700만원 등 총 29억원을 받았다. 삼성전자 DS부문 D램과 낸드플래시, 비메모리반도체(LSI)의 호실적에 힘입은 결과다. 왜 그가 삼성그룹 내 등기임원 중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지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DS부문의 호실적은 좋지 않은 시장상황에서 수율을 안정화시키고 미세공정 전환을 빨리 마친 영향이 컸다. 상반기 D램 거래가격은 지속적인 하락세로 전년 동기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분기 평균 환율도 지난 1분기보다 낮아 매출을 끌어올리기 힘들었지만 모바일 D램시장 확대가 숨통을 틔웠다.

특히 3세대 V낸드를 앞세운 낸드플래시 수요 증가는 대량 양산 체제를 갖춘 삼성전자 DS부문의 호실적을 이끌었다. 더불어 디스플레이 패널의 흑자전환과 시스템LSI의 예상외 흑자도 3분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반도체전문가의 ‘선택과 집중’

업계에서는 권 부회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DS부문의 실적 안정화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한다. 자타공인 ‘반도체 전문가’로 불리는 권 부회장은 2011년 DS부문 총괄을 맡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권 부회장에게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LSI, LCD사업을 모두 맡겼다. 부품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권 부회장이 DS총괄을 맡은 이후 D램 메모리 반도체는 공정을 개선해 시장점유율 1위를 굳건히 유지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개발된 3세대 V낸드플래시는 2013년 이후 삼성전자의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V낸드는 기존 낸드 제품에 비해 수명을 최대 10배 늘리지만 전력 소모량이나 유지비, 공간 소모 등은 모두 절반 이하로 떨어트린다.

권 부회장은 잘할 수 있는 부문의 역량은 강화하고 못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접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LCD사업 축소다.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좁혀지자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시켰고 일부는 중단이 예정됐다. 대신 권 부회장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사업을 확대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애플과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OLED를 채택해 이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권 부회장이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선택한 OLED가 삼성전자의 ‘실적효자’로 부상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자동차사업으로 ‘새 판 짜기’

DS부문 성장세와 더불어 권 부회장은 지난해 말 자동차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새 판’을 짰다. 권 부회장 직속으로 신설된 ‘전장사업팀’이 그 중심. 전장사업팀은 전기차 관련 조직을 모은 부서로 계열사간 협력을 강화해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업계에 따르면 권 부회장이 조직의 수장을 맡아 전장부품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전기자동차와 스마트폰용 부품을 생산하는 중국 BYD 지분에 투자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세계 1위 전기차업체인 BYD와 파트너십을 통해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전기차용 반도체사업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이탈리아 FCA그룹 계열 전장부품사 ‘마그네티 마렐리’를 인수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권 회장을 필두로 한 삼성전자가 글로벌 자동차업체들과 협력을 통해 전장사업 초석 다지기에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권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는 인수와 제휴로 사업적 역량을 빠른 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평가다. 특히 삼성전자가 신성장사업으로 설정한 자동차 전장부품에서 본격적인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풀이된다. 권 부회장의 ‘새로운 경쟁의 판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된다.


프로필

▲1952년 서울출생 ▲서울대학교 전기공학 학사 ▲카이스트 전기공학 석사 ▲스탠포드대학교 전기공학 박사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연구원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이사 ▲삼성전자 메모리본부 상무이사 ▲삼성전자 시스템LSI본부 부사장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 ▲삼성전자 DS총괄 사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