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살 안팎쯤 됐을까. 스무명 남짓한 아이들이 낯선 손님의 등장에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어수룩한 말투와 몸짓을 보니 한눈에도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임을 알 수 있었지만 눈빛이 맑고 순수했다.

서울 동대문구 망우로에 자리 잡은 서울그린정신건강의학과 마음사랑학교. 이곳은 교내 집단따돌림이나 가정폭력, 학대 등을 당한 청소년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치료하고 교육하는 시설이다. 학업중단의 위기에 놓인 중고등학생이 정규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서울특별시교육청 허가 대안학교인 동시에 정신의학과 치료기관이다.

우나영 서울그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사진제공=서울그린정신건강의학과

지난해 1월 문을 연 마음사랑학교는 현재 40명의 학생이 기숙생활과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우나영 서울그린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겸 마음사랑학교 교장(39)은 2012년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로 청소년병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국내 대다수의 정신과나 대안학교가 성인과 청소년,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격리 없이 치료를 진행하면서 2차·3차 피해의 위험에 노출돼있기 때문이다.
◆연극·동물치료로 대인관계 배우는 아이들


“국내에는 아동병원을 따로 둔 곳이 드물어요. 많은 청소년 대안학교 역시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한데 모아 가르치기 때문에 똑같은 폭력사건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학대와 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대부분 성인이나 가해학생과 함께 있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죠.”

우 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를 하며 느낀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마음사랑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평소 학생과의 1대1 면담뿐 아니라 산책, 운동, 캠프, 봉사활동 등에 참여한다. 마음사랑학교에서는 하루에 단 한시간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고 국어·영어·수학 등 일반교육보다 연극치료나 음악·미술치료, 동물매개치료 등을 집중적으로 시행한다. 왕따를 시킨 친구,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엄마의 역할을 맡으며 ‘왜 그랬을까,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물론 모든 학생이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화도 내고 기숙생활이 불편하다며 뛰쳐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교사들이 학생 한명한명의 행동을 관찰하고 잘못된 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주면 결국은 수긍하며 스스로 변한다.


“친구들이 저를 싫어해요. 저도 친구가 싫어요. 그냥 평생 게임만 하다가 죽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은 너를 좋아해. 아까 네게 빵을 줬잖아. 그런데 너는 먼저 친구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 적이 한번도 없어. 네가 먼저 빵을 주면 어떻게 될까?”

이곳 아이들은 평범한 학생이라면 당연히 배웠을 예의나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기술이 서툰 경우가 많다. 14~19세의 청소년임에도 마치 세상에 갓 나온 어린아이처럼 먹을 것을 두고 다투거나 분노조절을 못한다. 심지어 높임말을 쓰는 방법을 모르기도 한다.

우 원장은 “이건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가정교육의 문제나 불행한 환경으로 인한 결과”라고 말했다.

“부모에게 맞거나 학대를 당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지만 학교생활에서의 고민을 털어놓지 못해 속으로 끙끙 앓다가 병을 키우는 아이들이 많아요. 요즘은 맞벌이부모가 많다 보니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데다 형제자매 없이 혼자 집에서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되기도 하거든요.”

우 원장은 “집에서 부모가 가르쳐야 했던 것, 사람을 대하는 법을 다시 교육함으로써 공동체생활의 배려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사랑학교는 기본적으로 가해학생의 수용을 배제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피해경험이 있었는지 심사하는 절차를 거쳐 수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알고 보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거나 더 어린 시절 피해를 경험한 사례 등이다.

/사진제공=서울그린정신건강의학과

◆안정된 직장보다 ‘아이들 희망’
“정신과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마음이 괴롭고 다른 사람과 이질감을 느끼며 혼란스러웠고 학교에선 밝게 지냈지만 집에 오면 외로웠죠. 그러던 어느날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읽었는데 ‘아, 이런 마음은 나만 갖는 게 아니구나’ 깨달아 큰 위안을 얻었어요.”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어렵게 정신과 전문의의 꿈을 이뤘지만 한동안 일의 보람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급여와 복지가 안정적인 삼성전자 사내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보람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그때보다 경제적으로 불안하고 일도 힘들지만 행복해요. 적성에 딱 맞고 사명감도 생겨요. 한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부모에게도 학대받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자기비하가 심각한 데다 피해의식도 컸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웃고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였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사회에서 분리된 이들이 다시 희망을 찾는 데는 누구보다 부모의 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자신조차 병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치료를 방임한다. 우 원장은 “아이들의 노력만으로는 안된다”며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먼저 달라져야 아이들도 회복되지만 아이가 변하면서 부모가 뒤따라 변화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