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규모만 6000억원대로 추정되는 육류담보사기대출에 휘말린 금융사들이 육류업체 냉장창고를 조사한 결과 남은 담보물이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나마 남아 있는 담보물조차 대부분 중복대출이 이뤄진 상황이어서 선순위채권 자격을 두고 금융사간 치열한 법적 다툼이 벌어질 조짐이다. 담보 소유권을 두고 법적 분쟁이 본격화되면 그 여파로 수입 소고기 유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악순환이 예상된다.

경기도 광주 육류냉동창고. /사진=머니투데이 DB

◆워너기업 중심으로 얽힌 사기대출
지난달 동양생명, HK저축은행, 효성캐피탈 등 금융사들이 검찰에 육류유통업자와 냉동창고업자 등을 육류담보대출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사기혐의를 받는 업체는 육류물량을 담보로 동양생명 등 10여개 금융사에서 중복대출을 받았다. 등기가 안돼 있어 담보 여부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동양생명(3803억원)을 비롯해 화인파트너스(676억원), HK저축은행(354억원), 효성캐피탈(268억원), 한화저축은행(179억원), 신한캐피탈(170억원), 한국캐피탈(113억원), 조은저축은행(61억원), 세람저축은행(22억원) 등 14개 금융사의 육류담보대출 취급규모는 6000억원에 이른다.


각 금융사들이 자사 채무자인 점을 들어 밝히기 꺼려해 사기업체의 리스트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들 금융사의 말을 종합해보면 워너기업과 프로핏인터내셔널이 여러 업체와 공모해 사기대출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워너기업을 중심으로 사기대출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서울시 마장동에 위치한 워너기업을 찾아갔지만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사무실을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워너기업과 워너기업 관련 업체들의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며 “이번 육류담보대출 사기사건에 여러 업체가 연루된 것도 워너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이 이뤄져 복잡하게 꼬였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동양생명이 워너기업에 대출해준 금액은 146억3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워너기업을 비롯해 워너기업과 지분이 얽혀 있는 다그린, 미트리치 등의 업체들이 동양생명으로부터 받은 대출액까지 합치면 1100억원을 넘는다. 이 금액은 동양생명이 연체됐다고 밝힌 2837억원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여기에 육류 유통중개업체인 프로핏인터내셔널이 냉장업체인 선화CS, 키스톤냉장, 우일산업 등과 짜고 여러 금융사에 중복대출을 받으면서 피해를 키웠다.

◆텅텅 빈 창고… 담보물 바닥 

피해를 입은 금융사로 이뤄진 채권단이 회계법인을 통해 경기도 광주에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담보물이 대부분 바닥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조사는 총 5056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선화CS, 키스톤냉장, 우일산업, 신우냉동 등 냉동창고 4곳에서 이뤄졌다. 남아있는 담보물은 금융사들이 받아야 하는 물량의 약 16%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출금 회수는커녕 담보물조차 받기 어려워지면서 피해 금융사들은 창고에 보관된 고기에 우선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법적 근거가 되는 등기를 하지 않은 데다 대출 선후관계도 명확하지 않아 선순위 채권자격을 가리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금융사들은 저마다 담보의 주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피해규모가 가장 큰 동양생명은 가장 먼저 담보설정을 했기 때문에 우선권이 있다는 입장이다. 소송 법정대리인으로 김앤장을 선정하기도 했다. 반면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등기가 없으면 대출이 먼저 실행됐더라도 법적으론 선순위 채권자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결국 소송에서 가려야 할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담보물이 예상보다 더 적어 곤란한 상황”이라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지만 회수하지 못할 경우에는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관건은 선순위채권을 어떤 근거로 인정받을지 여부다.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양도담보계약 체결날짜’다. 2004년 12월 대법원은 동산담보대출과 관련해 이중 중복대출이 이뤄진 경우 먼저 담보권을 설정한 측이 배타적으로 담보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동양생명은 이 판례를 근거로 선순위채권 자격을 획득하는 데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앞서 구한서 사장은 “육류담보대출과 관련해 동양생명이 가장 먼저 담보를 설정한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우리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판례의 경우 육류담보사기대출 사례와 별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국 법원에서 고기 담보의 주인을 가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동양생명 전경. /사진제공=동양생명

◆법적 분쟁 여파로 유통대란 우려 
문제는 담보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소송전에 들어가면 판결이 나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유통업계에서는 육류담보대출 때문에 수입 소고기 유통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아직 육류유통에 큰 피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모습이다. 법적 공방이 길어지면 창고에 들어오는 물량까지 출고가 늦어져 유통시장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현재도 사기업체의 창고에 담보로 잡힌 물량 출고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육류도매업체 한 관계자는 “조류독감(AI)으로 소고기, 돼지고기로 소비가 몰린 상황인데 수입육이 출고되지 못하면 고깃값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사기를 친 육류업체가 아닌 ‘선의의 피해자’도 나올 수 있다”고 호소했다.

금융사에 이어 유통업계도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예견되면서 시장의 이목이 이번 사기대출사건에 더욱 집중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