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무 공연은 안성 여행의 알짜배기다. 흔히 볼 수 없는 우리 전통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칠장사에도 소설 같은 인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조금 알고 가면 너무 재미있는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태평무전수관 전시실.

◆태평무전수관과 강선영, 한성준
말로만 듣던 ‘태평무’를 본다. 이 춤은 이름 그대로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왕과 왕비의 춤이다. 의상은 화려하고 무대는 나라의 안녕을 비는 몸짓으로 충만하다. 특히 당의를 입은 여인들이 치마를 살짝 들어올리고 발짓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겹겹이 차려 입은 겉치마와 속치마 사이로 꼭꼭 감췄다가 드러나는 버선발이 상당히 고혹적으로 느껴진다. 화려하면서도 오묘한 매력을 지녔다.

태평무는 여러장이 합쳐진 무용극이라 전체를 보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이곳 태평무 전시관 상설공연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어지는 무대는 손가락에 작은 타악기를 끼고 춤추는 ‘향발무’다. 박자를 맞추거나 엇맞추기 때문에 의외성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여자를 보는 듯한 춤이다. 기생한테 빠져 조강지처 귀한 줄 모르는 ‘한량춤’은 아침드라마 한편을 보는 것 같고, ‘무당춤’에서는 신명나는 굿 한판이 벌어진다. ‘부채춤’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해 그 흐름을 대충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함의 극치다. ‘북춤’은 느린 장단으로 시작해 점점 빠르게 흘러가는데, 허리를 꺾고 팔을 뒤로 뻗어 북소리를 딱딱 맞추는 모습을 보자니 이게 바로 걸그룹 칼군무의 시조가 아닌가 싶다.


공연 중간중간 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주므로 이해하고 즐기기도 좋다. 어느새 흥이 제대로 올라 공연이 다 끝나도 박수가 멈추지 않는다. 전수자들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화려한 무대다. 관람료를 많이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귀한 걸 그냥 볼 수 있는지 고마울 따름이다.

태평무는 주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매주 토요일마다 태평무전수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춤을 추는 한국무용예술단은 고 강선영 선생이 창단한 무용단이다. 태평무전수관에는 한성준(1875~1941) 선생의 동상과 함께 춤비가 있다. 전수관을 세운 강선영 선생이 스승을 기려 세운 것이다. 한성준 선생은 대원군과 고종 앞에서 춤을 춰 참봉이라는 작위를 받을 정도로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선생은 ‘내가 죽으면 태평무 의상으로 수의를 해 달라’고 할 정도로 태평무 사랑이 지극했다. 우리나라 근대춤의 아버지라 불릴 만 하다.

한성준 선생의 손녀였던 한영숙도 선생의 제자였다. 두 제자는 한성준 선생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걸을 때도 박자를 맞춰가며 걸었는데, 이것이 태평무 발짓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강선영은 태평무의 왕비 역할을, 한영숙은 왕 역할을 전수받았다. 강선영 선생은 태평무와 함께 한량무, 승무, 즉흥무 등을 배워 전승시켰다. 한량무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5호로, 경기검무는 경기도 문화재 53호로 지정됐다. 강 선생은 170여개국에서 1500회가 넘는 공연을 하는 대기록을 세웠고, 국립무용단을 이끌면서 ‘원효대사’, ‘황진이’, ‘수로부인’ 등 수많은 무용극을 창작했다. 2013년에는 국립극장에서 제자들과 함께 80년 춤 인생을 기념하는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16년 92세로 별세하기 3년 전, 우리 나이로 89세 때의 일이다.

 

칠장사 대웅전.

◆칠장사와 소설 같은 인물들
칠장사하면 몇명의 인물이 떠오른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어사 박문수다. 전설, 즉 허구의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박문수는 분명히 실존했던 인물이다. 다만 구전설화로 전해지는 암행어사 박문수의 활약상과는 달리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파견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접하면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든다. 물론 어사로 활동한 일은 있지만 ‘암행’하며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줬다든가, 악의 무리를 일망타진한 일은 없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안동, 예천, 상주 등지를 순행하며 도내 명망 있는 인사들과 공개 회동을 가졌다는 기록만 남아있다. 이처럼 박문수의 ‘실화’는 어른마저 ‘동심파괴’의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칠장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사실과 허구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박문수가 과거를 치르러 가다가 칠장사에 머물렀는데, 나한전에 유과를 올리고 불공을 드린 후 잠을 잤다고 한다. 그날 밤 꿈에 나한님이 나타나 과거 시제 8개의 답안 중 7개를 알려줬고, 과연 과거시험에 나한님이 가르쳐 준 문제가 나와 박문수는 장원급제했다고 한다. 박문수는 이미 두번 낙방한 경험이 있는 삼수생이어서 8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덕분에 칠장사 나한전은 수험생 학부모의 성지가 됐다. 칠장사에는 박문수 합격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 산으로 올라가면 어사 박문수길이 이어진다. 산까지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합격다리까지는 건너 볼 만하다.

극락전 안에는 꺽정불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임꺽정이 봉안한 불상이라고 한다. 임꺽정 역시 소설 속 인물처럼 보이지만 ‘임거정’(林巨正)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임꺽정은 칠장사에서 스승인 병해대사(갖바치스님)를 만났다고 한다. 갖바치는 이곳에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가죽신 깁는 법을 가르친 스님이다. 안성의 특산물이 유기와 함께 가죽신이 된 것은 병해대사의 공이 크다. 임꺽정은 이곳에서 이봉학 등과 의형제를 맺었고, 난을 일으켰을 때는 관군을 피해 머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궁예가 10세까지 활쏘기를 하면서 유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이름이 ‘칠장사’가 된 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혜소국사가 이 절에 머물던 고려 광종시절의 일이었다. 일곱명의 도적이 있어 종종 절에 못된 짓을 했는데, 어느 날 도적 하나가 절의 약수를 먹다가 바가지가 황금인 것을 보고 이것을 훔쳐 소굴로 돌아왔다. 그런데 와서 보니 그저 평범한 표주박이었다. 알고 보니 혜소국사가 도적들을 시험한 것이었다. 7명의 도적이 똑같은 일을 다 당하고 나서야 잘못을 뉘우치고 혜소국사의 제자가 됐다. 이들은 열심히 수행해 아라한의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때부터 절 뒷산의 이름을 칠현산, 절 이름을 칠장사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도적들이 원래는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해서 혜소국사와 7나한의 불단에 초콜릿, 과자를 올리는 불자들이 많다.

칠장사에 이야기가 많은 만큼 이야기꾼도 있다. 윤민용 선생은 칠장사의 터줏대감이다. 대학시절에는 계몽운동을 하고 젊은 시절 호텔리어였던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년 후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됐다. 선생은 칠장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어사 박문수를 공부하면서 그의 생가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죽산에서 안성까지를 샅샅이 뒤지고, 각종 문헌을 찾아 추론해 마침내 천안 입장면에서 박문수 생가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어사 박문수 이야기를 비롯해 선생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사찰 구석구석으로 여행자를 이끈다.

국보 제296호인 오불회괘불탱화, 보물 제1256호인 삼불회괘불탱화, 보물 제1627호인 인목왕후어필칠언시 등 진귀한 보물 이야기도 듣고, 거북바위에서 사진도 찍고,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도 건너고 나면 칠장사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짧은 여행이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조선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간여행이 길었다.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태평무전수관: 안성종합버스터미널에서 50-1,50-2, 50-3, 50-7번 버스 승차 후 사곡동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태평무전수관: 검색어 ‘태평무전수관’ / 경기도 안성시 태평무길 42
칠장사: 검색어 ‘칠장사’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태평무전수관
문의: 031-676-0141
http://taepyungmu.net
토요 전통무용 상설무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30분 (7~8월 휴관)

칠장사
문의: 031-673-0776
http://www.chiljangsa.org/

음식
태평관: 안성 향토음식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곳으로 안성쌀을 사용해 밥맛도 좋다. 매콤한 해물전복찜과 산낙지 한마리가 들어가는 갈락탕이 대표 메뉴다.
031-676-3007 / 경기도 안성시 태평무길 31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7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