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방영된 드라마 <용팔이>에서 재벌 상속녀 김태희는 반대파를 피하기 위해 남자친구인 외과의사 주원과 함께 시골로 도망친다. 남녀주인공은 반대파에게 쫓기는 긴박한 상황에서 은신처를 찾기 위해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직방'을 켰다. 여기서 드라마 화면이 갑자기 CF로 전환된 듯 한참동안 남녀주인공이 부동산 앱을 사용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시청자의 드라마 몰입도가 뚝 떨어진 대표적인 PPL(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 장면으로 현재까지도 회자된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대부분 전쟁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시청자의 심기를 방해하는 PPL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들이 서울로 넘어왔을 때부터 PPL의 향연이 펼쳐졌다.
남녀주인공 송중기-송혜교 커플은 현대자동차 매장에서 한참동안 자동차의 성능을 이야기하며 차를 골랐고, 조연인 진구-김지원 커플은 현대차 제네시스의 자율주행 모드를 켜놓고 키스신을 펼쳤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과도한 PPL로 시청자의 드라마 몰입을 방해했다며 행정 지도상 권고가 내려진 바 있다.
올 초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도 PPL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와 기억상실증 저승사자, 현실세계의 재벌2세 등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들은 주로 샌드위치로 식사를 해결하고 숙취해소 음료로 속을 달랜다.
미디어오늘은 도깨비 1회부터 16회까지 모두 270개의 PPL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시청자들은 한회당 약 17건의 PPL에 노출된 것이다. 5회의 경우 무려 33번의 PPL이 등장했을 정도다. 방송가에 따르면 <도깨비>의 PPL 수익은 7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드라마시장이 커지면서 PPL시장은 상상 이상으로 성장했다. PPL이란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의 줄임말이다. 특정기업의 협찬을 대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당 기업의 상품 이미지나 브랜드를 끼워 넣는 광고기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상품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인지될 수 있고 방송사는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다.
PPL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2010년 지상파방송에 협찬이 허용됐고 2011년부터 외주제작사의 PPL이 가능해졌다. PPL 시장규모는 2010년 60억원에서 2014년 833억원으로 10배 이상 커졌다.
PPL은 이제 드라마, 영화 등 각종 콘텐츠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됐다. 하지만 시청자가 <도깨비>를 보면서 몇번이나 PPL을 인지했는 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또 PPL노출이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이어져 실제 소비로 얼마나 이뤄졌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PPL, 퀘백시티, 그리고 여행주
경제평론가 입장에서 늘어나는 드라마 PPL광고를 투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봤다. <도깨비>를 통한 간접광고의 최종 승자를 제품이나 브랜드로 특정할 순 없다. <도깨비>에서 브랜드 가치를 가장 크게 높인 곳은 바로 캐나다 퀘벡시티이지 않을까.
<도깨비> 첫회에 나온 퀘벡시티의 이국적인 풍경은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첫 방송 이후 캐나다 퀘벡에 대한 문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 그 방증이다. 여기에는 캐나다 국적항공사인 에어캐나다와 퀘벡관광청의 각종 협찬도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관광청은 드라마의 인기를 기반으로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드라마 방영이 캐나다 건국 150주년을 맞아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시기와 맞아떨어졌다. 캐나다관광청이 직접 운영하는 온라인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접속하면 공유-김고은의 동선과 퀘벡의 관광명소를 살펴볼 수 있다.
퀘벡시티는 '작은 프랑스'로 불릴 만큼 유럽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198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도시 전체가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퀘벡시티는 직항 비행기가 없고 영어권이 아닌 불어가 사용되는 지역이라 교민도 많지 않다. 이 같은 제약조건에도 인터넷 상에는 퀘벡 관련 포스팅이 급증했다. 한국 여행사들의 캐나다 제휴사인 푸른투어 관계자에 따르면 <도깨비> 방영 이후 캐나다 여행상품 예약이 70% 이상 증가했다.
뉴욕타임즈가 지난 1월 올해 여행할 만한 지역 52개를 발표했는데 캐나다가 당당히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광활한 자연과 대도시의 문화를 모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여타 지역이 대부분 특정국가의 도시이 것과 달리 캐나다는 국가 자체가 선정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투자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캐나다여행이 증가했으니 항공주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국내 항공주에 투자하는 것은 애매하다. 저비용항공사의 취항이 계속 증가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환율변동도 불안요소다. 미국에서는 워런 버핏이 20년 만에 항공주 투자를 재개할 정도로 항공업황이 개선됐지만 국내의 분위기는 차갑기만 하다.
국내 주식 중에는 항공주보다는 하나투어 등 여행주에 관심을 가져보자. 항공사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제선 비행기값 부담이 적어지는 데다 원화강세로 여행비용 부담도 줄어 해외로 여행을 가는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투어의 경우 면세점사업이 부담이지만 비용절감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긍정적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