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의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우리나라 수출 대동맥이 끊겼다는 우려가 깊다. 국내 수출입 화물의 99% 이상을 담당하는 해운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수출경쟁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남은 국내 원양선사들은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고 한국 해운업의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초대형화 되는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한국 해운업이 예전의 위상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미주항로 되찾기 시동
한진해운 파산 후 ‘한국 해운업 부활’이란 사명감을 짊어진 현대상선과 SM상선은 주력노선인 미주노선을 중심으로 세를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과거 한진해운의 미주노선 점유율은 7.4% 수준이었는데 현재 대부분 외국 선사에 뺏긴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세계 최대 얼라이언스 2M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단독 운영하는 미주 서안 항로를 기존 2개에서 3개로 늘리고 화주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삼성과 LG, 현대글로비스 등 대형화주와 계약을 체결했고 미국에서는 월마트 등 글로벌 대형 화주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다. 월마트는 연간 해운 물동량 중 10% 가량을 옛 한진해운에 맡겼다. 운임료만 연 3000만달러 규모다. 하지만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이 물량을 중국 및 홍콩계 선사로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이 물량을 가져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못할 것도 없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화주와 계약을 따내기 위해선 신뢰도가 필수”라며 “현대상선이 2M과 전략적 협력을 맺고 꾸준히 화물을 운송해온 점을 감안하면 한진해운 파산으로 떨어진 한국 선사에 대한 신뢰도가 어느정도 회복됐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의 인력과 무형자산을 이어받아 설립된 SM상선도 법인설립 4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아주노선을 안정화시키고 미주 서안노선 운항을 시작해 제2의 국적원양선사로 도약하며 새 희망을 써나간다.
SM상선은 최근 6500TEU 규모 컨테이너선 5척을 투입해 중국닝보-상하이-한국 광양-부산-미국LA 롱비치터미널을 오가는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해운동맹에 가입하지 못해 해외 주요 선사들보다 화물 확보가 어렵지만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운송기간 단축’이란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SM상선은 평균 11~12일 걸리던 부산-롱비치터미널의 운송기간을 9일로 단축해 서비스를 차별화했다.
이 전략은 일단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당초 해운동맹에도 가입되지 않은 SM상선의 미주노선 진출에 우려가 많았지만 첫번째 항차에서 예약률 80%를 기록하고, 두번째는 만선에 가까운 예약률을 보이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SM상선은 SM그룹 내 별도 용대선 사업부에서 선박을 용선해 사용한다. SM그룹은 현재까지 총 30척의 선박을 확보했는데, 이를 100척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선적예약이 가파르게 늘어나며 신조 컨테이너 장비 2만TEU를 주문하기도 했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는 SM상선의 이런 행보에 “컨테이너 해운업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상선회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M상선은 앞으로 미주 동안과 남미 노선은 물론 중동, 홍해, 호주 등 전세계로 해상 영토를 넓히는 것이 목표다. SM그룹 관계자는 “SM그룹 해운부문의 올 매출은 40억달러가 예상되며 2020년 매출 70억달러 달성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를 위해서는 현재 20% 미만에 불과한 국내화주의 국적선사 이용률이 높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진제공=SM상선
◆ 규모화되는 해운업계, 한국해운 부활은 장기전
하지만 재편된 세계 해운동맹에 정식 포함되지 못한 두 국적선사가 목표만큼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글로벌 해운업계가 M&A를 통해 초대형 선사 위주로 재편되는 가운데 혈혈단신에 규모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한국 선사들이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재 규모화를 이루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며 해운업계에서는 M&A(인수합병) 붐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선사인 코스코(COSCO)는 지난해 3월 차이나시핑(CSCL)과 합병하면서 세계 4위 선사로 급부상했고 세계3위 해운사인 프랑스 CMA-CGM은 싱가포르의 NOL을 흡수합병했다. 일본의 3대 해운사는 오는 7월 컨테이너 부문을 합병한다.
여기에 세계 8위 선사인 대만 양밍해운이 최근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세계 5위의 선사인 대만 에버그린과의 M&A를 통해 구조조정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 코스코가 홍콩 OOCL까지 인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렇게 되면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은 1위 머스크로부터 7위인 일본 3사의 통합법인까지 7대 선사가 전세계 바닷길의 70%를 장악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북미항로는 80%, 유럽항로는 90%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적선사인 현대상선과 SM상선의 선복량을 합쳐도 7위인 일본 3사 통합법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급과잉이 심각한 해운업황을 고려할 때 신조발주를 통한 규모 확장도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꾸준히 해운업을 지원하는 것만이 한국 해운의 부활을 도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전형진 KMI 해운시장분석센터장은 “국적선사들은 먼저 내실을 키우고 점차 외연을 확장하는 전략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며 “이를 위해 국적 화주와의 협력관계를 강화해 집화능력을 키우고 외국 화주로 영업력을 확대하는 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도 단기 성과에 매달리기보다 장기적으로 꾸준히 국적선사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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